보고知고.

725. 남해. 이락사

한유 2025. 6. 6. 21:48

725.

* 경남 남해군 고현면 차면리 107

 

보물섬이라는 남해의 여행발길이다

이락사(李落祠)에 닿았다.

일본은 1597년 정유년에 다시 대대적인 침략을 개시했다. 이유는 명나라의 심유경과 일본의

고니시 유기나가간의 협상결여 때문이다.

당사자인 조선이 빠지고  명과 일본이 서로 전쟁을 협상하는것은 젤렌스키를 빼고 러시아

볼라드미러 푸친하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간 회담하는 격이다.

정유재란으로 재침한 왜구는  바다에서는 거제 칠천량(7월15일)에서 원균의 조선 수군을 대파하고,

육지에서는 남원(8월15일), 전주(8월19일)를 잇달아 함락했다.
그대로 쭈욱 기세를 몰아 북상하던 일본군은 충청도 직산(9월7일)에서 명군에 저지당하고,

바다에서는 명량(9월16일)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대패하면서 보급품이 제공되지 않는지라

왜는 후퇴해남해안 울산. 사천. 순천에다 왜성을 쌓고 방어에 주력했다.
1598년 1월 조명연합군은 가토 기요마사가 주둔한 울산왜성을 공격했으나 함락에 실패했다.

이어 사천왜성에서도 크게 패하면서 처참한 실패로 이어진다

1598년 9월19일 중로군이 3만에 달하는 병력으로 1만여 병력이 포진한 사천왜성을 공격했지만,

전투 도중에 갑자기 명군의 진영에서 화약고가 폭발하는 혼란으로

 우왕좌왕한 명군은 수많은 전사자를 내면서 패배한다

신진리성에 있는 조명전사자의 묘가 바로  '조명군총'이다.

이처럼 울산의 동로군이 울산왜성의 공격실패. 중로군은 사천성에서 실패한다.

그냥 포위만 하고 견벽청야(堅壁淸野)전술로 시간을 보내고만 있어도 이길것을.......

손자의 병법을 잊었더란 말인가.?

이처럼 동로군과 중로군의 공격이 연이어 실패로 돌아가고나니 순천왜성을 포위한 서로군은

공격의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개기고 있는것은 같은 일본군의 도움을 받아 도망가려는 계책인 것이다

 

1598년 8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합쳐 7년간 끌어왔던 조선과 일본의 전쟁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면서 내린 철수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순천왜성에는 1만5000여 명의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군이 포위돼 있었는데

이들 병력을 구출하기 위해 사천을 비롯해 고성, 하동 등 남해안 곳곳에 포진해 있던 일본군의 병력이 결집하게 된다.
노량해전에 투입된 핵심 부대는 사천왜성에서 중로군을 대파한 시마즈 요시히로의 부대였는데

시마즈의 부대는 본국에서 철수 명령이 떨어졌지만, 집결지인 부산으로 이동하지 않고

300여 척의 함대를 꾸려 순천왜성으로 향한것은 고니시 군을 도우기 위해서이다.

사천 신진리성에서의 승리도 자신감을 가지게 했을 것이다

노량해전은 철수하려는 일본군과 이를 막아선 조명연합군이 충돌한 7년 전쟁의 마침표를 찍는 최대의 전투였다.

이락사란 이름은 이순신장군께서 돌아가신곳이라 하여 李落에서 사당 祠를 붙혀 이락사라 한다.

살아남은 왜놈들은 이 앞으로 도망질을 했을 것이다.

그냥 일본으로 도주하게 한다는것은  장군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은것이다.

칠천량 전투에서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죽어나간 수많은 영혼들을 위로하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었기에

장군은 이곳 노량에서 관음포에 이러는 전장에서의 죽음은 초개와 같은거라고 생각해 버린것이다.

노량에서 피터지게 싸우다가 일본은 조명 연합군의 공격에 밀리다가 명나라 진영의 진린을 포위하면서

퇴로를 연다는것이 하필이면 육지로 막혀 있는 관음포쪽이었다

이순신 장군을 진린을 구하기 위하여 대장선을 이끌고 진린을 구해 내지만 유탄을 맞고 만다.

이 한마디를 남기고 1598년 양력 12월 16일 노량해전에서 사망한 직후에 같은 날 이순신장군을 천거하고

뒤를 돌봐준 류성룡 선생도 반대파에 의해 탄핵되어 파직된다

목숨 바쳐 나라를 위해 고군분투한 이들의 말로가 너무나 씁쓸하다.

류성룡이 사망한 지 정확히 3개월 후에 선조도 지겹도록 왕질을 해먹은 41년의 재위를 끝내고 죽는다

첨망대까지는 답사하지 못했다

그곳까지 다녀올 만큼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음이 그 원인이다.

 

선조가 권력유지를 위해서 이순신장군을 전쟁의 와중에 전사라는 방법으로

자살을 유도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또한 선조는 엄청난 지식인들을 기축옥사로 숙청해버린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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