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知고.

724. 남해. 애국지사 윤병호선생.

한유 2025. 6. 6. 21:44

724.

*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노량공원.)

 

 

앞에 보이는 바다가 노량 앞바다이다.

이순신 장군의 부대가 침략자인 일본 군인들을 을반 죽여버린 대승의 바다이다.

임진과 정유왜란으로 식급잔치를 하고도 정신 못차리기는 조선도 마찬가지이다.

왜란은 1592년이다 한일병합은 1910년이다

318년의 차이가 있지만 그동안 왜구라는 이름으로 해안선을 침범하여 노략질하는 비적들을 

그냥 두고 보아온 선조 이후의 왕과 정권의 책임이 크다.

자비는 자비를 받을가치가 있을때 받는것이다

보통의 인간관계에서도 찝쩍거리는 놈을 두세번 그냥 모런척 하면 그냥 호구로 안다는 것이다.

네번쩨에는 분명한 응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응징을 하더라도 대충하면 아니되고

평생의 뇌리에 남도록 확실하고 단호하고 잔인하게 해야만 다시는 뎀비지 못한다.

탄성의 한계를 넘겨 버리도록 반응을 보여 주어야만 상대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야만 하는데 그놈의 자비심과 사랑심리로 ( 그리하지 말거라) 타일러기만 했기에

결국은 일본늠들이 일을 저질렀다.

구 한말의 매국노와 손잡고 집권자들의 무능함을 짓밟고 1919년 조선을 삼켜 버렸다

삼킨 왜놈의 뱃속에서 조선은 개고생을 했고 그 개고생 중에 수많은 비극이 있었다.

한마디로 암울한 시대는 36년이나 계속 되었고 그 36년동안 일부의 애국자들은 그나마 반항을 

이어 나갔지만 친일 매국놈들은 호의 호식하고 같은 동족의 피를 빨았다.

 

여기는 이순신장군이 왜구들을 몰살에 가까운 패배를 안겨준 노량이다

윤병호선생을 기리는 비가 있다. 그냥 지나치면 비를 세운 국가 보훈부까지 개무시하는것이 된다.

36년이나 조선을 일본놈들이 삼키고 있었지만 일본놈들 뱃속에서 이런분들이  소화불량을 일어켜서

1945년 팔월에도 15일날 급기야 토해내고 말았더라.

윤병호 선생께서는 조선어연구학회에서도  활약하신분이라는 설명이다.

창씨개명을 하면서까지 조선어를 말살하려 한 일본놈에 대항하여 우리글과 우리말을 살려내신 분이라 적혀 있다

1921년에 주시경의 문하생이었던 최두선, 임경재, 권덕규, 장지영 등이 모여 국어의 연구와 발전을 목적으로 

창립된 민간 학술 단체. 1931년 조선어 연구회를 고친 이름이며 뒤에 한글 학회로 이름이 바뀌었다.

윤병호 애국지사는 아마 백산상회 안희재 선생과의 연관성이 더 많은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윤병호 선생은 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이며 호는 창남이다

남해 설천면 문의리 출생이며 1908년 보성전문학교(고려대학전신)에 입학하여 항일 투쟁을 하였고

1911년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일본에 유학하여 와세다대학 정치경제과 전문부를

졸업하신걸로 보아  대단한 수재가 아닌가 싶다

1919년 안희제 선생과 관련있는 백산상회가 주식회사로 전환할 때

500주를 출자하고 지배인을 맡아 운영에 참가하였으며 인재양성에도 많은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1929년 10월 조선어연구회가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하자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사전 편찬 작업에 참여하였다.

이로 인해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함경남도 홍원경찰서와 함흥경찰서에서 고문을 당하였으며

1943년 9월 18일 기소 유예로 석방되었다.

해방 후 경상남도 농상부장을 지냈고 1954년 제3대 국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4년 7월 13일 86세로 세상을 운명하셨으며  묘소는 문의리에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긴 하지만 윤병호 선생님같은 분들이 어디 한 둘이랴.

이봉창. 윤봉길선생은 한방으로 뼈 때리는 애국을 하셨다면 윤병호 선생같은분은  은근하게

나라를 위하고 줄기차게 민족을 위해서 활동하신것이다.

당시 큰사전 편찬작업을 하고 있던 조선어학회를 해체시키기 위하여 일본늠들이

1942년 함흥 영생여고 학생들이 기차안에서 우리말로 대화한다고  트집을 잡아서 

이상한 방향으로 조작하여 조선어학회원과 그 사업에 협조한 사람들을 체포하였다.
여학생들에게 민족주의 의식을 교육한 교사 정태진선생을 체포하였으며, 그가 관여하던 조선어학회가

독립운동을 하였다고  33명의 조선어학회원을 체포하고 조선어학회를 해산시켰다.

기소된 사람은 함흥형무소에 수감되었는데 이윤재와 한징선생이 형무소에서 옥사(獄死)하는등 수난을 겪으며

세종께서 백성을 편안케 하고자 한 우리글을 연구하고 보존하신분들이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감옥소 생활을 하신분들이 출옥하는 날 일본놈들의 모진 고문으로

재대로 걸어서 나온 분이 없었다 잖아.

 

1945년 해방 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복역하던 분들이주축이 되어 생긴 한글학회가 이승만이의

한글간소화훈령으로 삐리리한 모양이다

미국에서 영어로 생활하다가 한글을 할려니 혀가 잘 안 돌아간 대통령 이승만이가

본인이 요즘말을 쓰기 어렵다는 이유로 간소화 하자 했다니 믄 개소리인가 싶다

이승만은 1949년에 당시의 철자법을 폐지하고 구한말 시대의 철자법으로 돌아가자는 담화를 발표했다.

1953년에 국무총리령이 발표되어 이 건을 밀어붙이지만 국어학자들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혔고,

문교부장관이 연달아 사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승만은 1954년에 “3개월 이내에 현행 맞춤법을 버리고, 구한국 말엽의 성경 맞춤법에 돌아가라고 오지랖을 떨어서

당시 문교부장관이 일단 간소화안을 발표하고 무작정 국무회의를 통과시키니

더욱더 각지의 반발과 비난 난무하니 혀 짧은 이승만은 결국 1955년에 이 방안을 취소했다.

그 따위 짓꺼리 하다가 결국 하와이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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