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1.
*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350
많은 피해를 입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히데요시는 정유재란을 일어키지만
판세를 완전히 뒤집은 해전으로서 이 승리로 일본군에게 빼앗긴 제해권을 되찾았으며
선조란 작자의 도망질로 망국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3대 해전으로 알려진 노량해전은 아시아를 넘어 넘어 세계 해전사에서도
길이 빛날 대첩으로 평가된다.
장군의 출생일은 음력으로는 3월 19일이고 양력으로는 4월 28일이 되는고로 양력으로 기념하기로 하면서 하여
환산한 4월 28일로 정했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조또 모르는 왕과 윤두수 일파의 명령으로 칠천량에서 처참히 대패하여 조선 수군은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자 놀래 자빠진 임금은 장군에게 삼군 수군통재사라는 계급을 내린다
원균의 꼬라지나 선조의 아둔함을 익히 알고 미리 칠천량 전투에서 탈영한 비겁한 인물인 배설이 있었기에
그 배신이 참으로 우연챃게도 나라에 도움이 되어서 배설의 수하들과 함께 12척을 기반으로 장군은
해군을 다시 재건하게 된다.
웃기는 이 배신이 반전되어서 배설이 남긴 판옥선 12척에다 신임 전라 우수사 김억추의 배 한척을 보태어
장군은 그 13척의 판옥선으로 명량해전에서 승리하게 된다
역사는 배설장군을 욕하겠지만 이때에 배설장군의 현명한 탈영이 없었다면 과연 그 위대한 전투인 명량이 있을까 하는 것이다.이때 장군은 유명한 한마디를 선조에게 말한마디를 남긴다.
今臣戰船, 尙有十二, 臣若不死, 則賊亦不敢侮我矣。
번역하면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이 12척이 남아있으니
신이 죽지않은 한 적도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탈영이 다시 살아나는 기회를 만들었지만 우리는 해평윤씨 윤두서와 윤근수라는 인물의 세상보는 시야를 질책하지 않을수가 없다.선조시절 서인의 일원으로 해평윤씨 오음공파의 중시조가 되는 윤두서는 임진왜란 드라마등에서 이순신장군을 못잡아 먹어서 안달하는 역으로 자주 나오는 인물이다.족보상 대충 흝어 보면 윤두서의
손자 윤신지(尹新之)는 선조의 배다른 딸인 정혜옹주와 결혼하고
윤신지와 정혜 옹주의 손녀인 해평 윤씨는 김만기와 서포 김만중의 형제를 낳게 된다
청상과부인 해평윤씨는 큰아들의 여식. 즉 손녀가 왕비(숙종비)가 되고 둘쩨아들 만중은
소설가가되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윤치호. 윤치영. 윤보선이 윤두서의 직게 후손이라 한다.
알만한 삶들은 다 아는 야그로 윤두서는 임진왜란 7년전쟁에 일반적으로 선조, 원균과 함께 세트로 간신이면서
무능한 정치가로 이름을 남긴것이다
조선조 최악의 소인배인 선조의 꼬봉으로 칠천량 해전에서 명을 다한 원균과 함께이순신 장군에게는 더 할수 없는 악연의 인물은 틀림이 없는 듯 하다.그리고 선조라는 작자는
칠천량 해전 이후 대안이 이순신뿐임을 알았지만, 이순신을 싫어한 터라
그의 복직을 내켜하지 않았다. 선조는 이순신이 언급되자 불쾌하게 여기며 대답 없이 그 자리를 나가버린걸로
옹졸하고 졸렬하고 소인배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꼬라지를 내어 보인것이다.
이런 머저리를 왕이라고 불렀으니 조선은 최악의 시나리오속에 있었다는 것이다.
칠천량 패전이 보고된 이후 조선 조정에서는 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 문제로 떠들썩했지만
결국 유일한 적임자는 이순신이었다. 하지만
결국 남아 있던 대신들인 백사 이항복. 이원익. 유성룡등 유능한 인물들이 복직을 결정했다고 한다
나라가 절단날 상황에서도 선조는 이순신을 경계하고 싫어하며 질투하기를 끝내 버리지 못했다니
이 얼마나 덜 떨어진 인간이란 말인가.



로랑바다는리충모공전사하데라여귀에충렬사를세우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관음포에서 전사한 후 시신을 잠시 모셨던 충렬사




1598년 11월 19일 돌아가신 충무공의 유해는 충렬사 자리에 안치되어 있다.
우암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쓴 이충무공묘비와 사우 그리고 충무공비와 충민공비,
내삼문, 외삼문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청해루와 장군의 가묘가 잘 정리되어 있다.

충민공비
나라에서 충무공이라는 시호가 내리기전에 백성들이 먼저 부른 이름이 충민공이다
현령인 이정건이라는 분이 충민공이라는 비석을 세웠다
나라에서 충무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지고나서는 땅에 묻혔지만 忠愍공이란 글자중에 愍은 근심할 민으로
슬퍼하다 근심하다란 의미로 이순신장군을 얼마나 백성들이 의지하였나를 보여주는 이름이라 하겠다.


박정희 전대통령 기념식수.


이순신 장군의 후대인인 이태상의 비이다
5대조 후손으로 얼마나 선조를 자랑스러워 했을까하는것은 눈에 선한 광경이다.


戰方急, 愼勿言我死。
이 한문 한어절을 해석할줄만 알아도 그분이 누구인지를 한국인이면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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