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0.
*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노량대교.
어떤 녀석이 왜 전화를 잘 받지 않느냐고 따지고 들었다.
녀석의 잔소리를 듣자 듣자하니 별안간 화가 치밀어서 냅다 소리를 질러 버렸다.
( 내 전화기로 내가 전화를 받든지 말던지는 내가 알아서 하는것이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내것을 내마음대로 못한대서야 어찌 내것이겠나.?
사소한것에 진리를 찾아 내기도 바쁜데 그리고 곰곰히 생각하기도 바쁜 순간. ......
순간과 늘어지게 사유하기도 한가롭지 않은 시간에
판단을 흐리게 하는 늠은 영혼을 자유롭게 만드는 찰라를 방해하는 것이다.
더위가 주는 질량에 무게를 느끼는것도 버겁다
디오게네스.......는 분명 아니지만 오감(五感)만 만족하면 잘 사는 것이지 더 무었이 필요하냐 말이다.
내가 묻는 말에 네가 대답할 의무가 없듯이 내가 그 무었을 어떻게 판단하든 네게서 재판받을 이유가 없다.
이제 겨우 외로움에 익숙해지고 있고 그리움이 사그라들고 있다.
점점 그 믄가가 가볍게 정리되고 있다.
세속의 풍습에서 멀어지니 비속 비선의 경계인가 싶다만 아직 영혼까지는 자유롭지는 않다
그럴때는 지체없이 떠난다.
영혼이 자유롭지 않아서 마음이라도 자유 스럽자고 노량까지도 갔다.
몸이 따라주니 감사하다. 지탱하게 해주는 그 모든것에 감사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무었인가가 고프다.





듣자하니..............
소금냄새와 생선 선비린내가 나는 바다에서 그토록 위험한 싸움을 하였단다.
인물 됨됨이나 전략이나 전술. 전투력이 타의 추종을 불어한다는 명장이면서 지구상 고금을 다 찾아 보아도
감히 견줄만한 사람 없는 인물로 이순신이라는 분인데. 조선중기 선조라는 임금의 체제에서
참으로 어렵게 살아낸 사람이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승리를 남기고 전사라는 방식으로 생을 마감한것이다.
역사에는 1592년(선조 25)의 1차 침입에 이어 1597년에 다시 침략하여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군은
9월 명량해전에서 크게 패배하였으며, 지상전에서도 점점 조·명 연합군의 반격에 밀려
고전하고 있었는데 뒈질 때가 되었는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죽으니
(조선에서 철군하라)
유언을 받잡은 왜놈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순신이라는 장군은 은 명나라 진린과 함께
고금도를 떠나서 노량 앞바다에 이르런다.
이유는 단하나.
겁대가리 없이 남의 땅에 침범하여 백성들을 살육하고 괴롭힌 댓가를 지불하기 위해서 이다.
올때는 마음대로 왔지만 갈때는 마음대로 못간다는 의미이다.
당시의 상황을 똘똘한 다음백과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순신께서는 왜교(倭橋)에 진을 치고 있던 고니시 유기나가小의 부대를 전멸시키고자 했다.
그 결과 고니시는 수륙양면으로 곤경에 처하게 되어 진린에게 뇌물을 주고는
후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협잡한다
듕국의 장수인 진린은 이를 받아들여 고니시가 마지막으로 애원하는 통신선 1척을 빠져나가도록
방조하고는 이 사실을 이순신에게 통보했다.
이에 이순신은 적을 너무 쉽게 놓아주었음을 보고 노하여 연합군 장수이지만 진린을 꾸짖고는
전작권을 회수하고 조·명 연합함대의 진영을 재정비하여 쳐들어올 왜군에 대비했다.
11월 18일 500여 척의 왜선이 노량수로와 왜교 등지에 집결하여 후퇴를 위한 공격자세를 갖춘
적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전투태세에 들어갈 것을 명령했다. 싸움이 시작되자
이순신은 곧 적선 50여 척을 격파하고 200여 명을 죽이니, 적들은적장인 이순신을 포위하려 하니
비로소 진린의 명군이 와서 왜적을 공격했다.
이 전투에서 200여 척의 일본수군이 격파되고 패잔선 50여 척만이 관음포 방면으로 겨우 달아났다.
궁지에 몰린 왜늠들이 관음포로 마지막 도주하는 일본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적을 격파하다가
멍청하게 왜군에게 포위되었던 진린을 구해내며 분투했지만. 왜적의 흉탄에 맞고는 한 시대의 거인은 쓰러지고 만다.
전쟁의 승패에 미칠것을 염려하여 운명직전에도
( 완아.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당부하고 전사하고 만다
한산. 명량. 노량. 영화의 제목이기도 전에 이미 이순신께서 세상에 널리 알린 지명이었다.












내 몸을 내 의지대로 움직일수 있다는 현실에 감사하며 위대한 죽음을 모신 사당으로 발길 옮겼다.
그 어떤 고픔이 하나 줄어드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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