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9.
경북 청도군 화양읍 도평1리 (백곡1길 1-5)
지난날(2025년 8월15일) 찾았던 탁영생가를 돌아본다.
1464년 음력으로 정월 초 칠일날 태어나서 1498년 7월 27일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조선조 성종. 연산군때의 인물 김일손 선생의 생가이다.
이 분을 두고. 시인. 문신관료이며 직책은 사관이었다고 한다
본관은 김해김씨 삼현공파이고 자는 계운. 호가 탁영이며 임금이 내린 시호로는 문민(文愍)이다.
호(號) 탁영(濯纓)은 ‘갓끈을 씻는 사람’이란 뜻으로 초나라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 중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에서 따온 것이라니.
믄 글을 따와도 중국꺼를 가지고 유식한 티를 낸 것이 훤히 보인다.
사대주의 까지는 유추할수는 없지만 요즘세상에 영어를 섞어 말하는 것과 유사하다

백곡리 입구에 있는 정자 나무이다.
伊西國 城址라고 알려주는 표석이 있는거로 봐서 이 일대는 유규한 역사를 간직한 지역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이 정자나무는 팔월의 더위를 식혀주고 쉼을 허락해 주었다.
정자나무를 심은 사람은 후인에게 그늘을 남겼고
유등연지를 만든 고성이씨 입향조 이육 어른은 후대에 나도 찾는 관광지를 남겼다.
그 이름도 유명한 탁영선생은 무얼 남겨 지금의 현대 사람들이 찾고 기려야 하는 당위성이 있을까.?
역사를 보는 관점이 약간 삐딱한것을 비판받을수 있어서 출입을 거부 당할수도 있다.





마을로 접어들자 보이는 탁영종택 안내표지이다.


사불천위는 문중에서 지정한 천위이고 공불천위는 국가에서 지정한 천위로서
부조묘사당에 모셔지고 대대천손 제사를 모신다는 의미이다.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였고 역사에 남길 훌륭한 업적을 남겼기에 불천위 대접을 받는것일까.?

후손이 거주하는듯 했고 개방이 안된 관계로 겨우 담 넘어로 몆장을 찍었더라
사진 몆장 찍었다고 선비집안에서 도둑으로 몰기야 하겄나 싶다









잠겨진 문이라 건질수 있는만큼 사진을 찍고 마을 입구 정자나무아래에서
마을 한켠을 바라보며 탁영 김일손 선생에 대해서 검색해 본다.

탁영 김일손.>>>>>>>>>>
시차를 달리하여 본다면 양력으로 보면 8월14일에 탁영선생은 타계하였고
나는 하루지난 15일에 탁영고택을 찾았다는 것은 문상를 간거나 진배없다.
김종직 선생이 남긴 조의제문이라는 글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하는 단초가 되리라 하는것을 귀신은 알았을까.?
김일손선생의 후손들은 불천위의 제사를 모시는 것은 대단한 자랑꺼리이고 위대한 선조로 대접하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후인은 전혀 다른 평가로 한 인물을 바라보는것은 잘못이 아닐것이다.
역사적 평가는 후인이 할것이라고 했으니까.?
김일손 선생은 사람과의 악연으로 나라전체에 피바람을 불게 한 사람이다
우리가 상식선에서 아는 사람은 바로 그가 이극돈선생이다.
이극돈 선생과의 악연은 1486년 문과시험에서 당시 윤필상·유지 등의 시관은 김일손에게 1등을 주자고 했으나
시관(試官)중의 일인인 이극돈 선생만이 반대하였다.
그 다음은 이조전량이라는 자리를 두고 김일손을 "사람이 경망스럽다"고 평하며,
김일손의 이조전랑 추천을 여러 차례 반대한 악연도 있고 하였던 것이다.
당상이었던 이극돈 자신에 관한 부정평가를 사초에서 지워달라고 김일손에게 요청하지만 거절당한 원한이
이극돈을 자극하게 된 한 것이 원인이 있다는 것으로 전한다.
1498년에 일어난 무오사화는 김일손이 성종 재위시 사관(史官)으로 있으면서 썼던 사초(史草)가 빌미이다
서로 꼬투리를 잡아 서로를 파멸하고자 한 다툼이 무오사화로 이어진것은 아닐까
사림파의 득세로 (아니되옵니다)를 반복하고 왕의 권위를 깍아내리는 유식한 글쟁이들에게
진절머리가 난 연산군이 뿔다구가 나서 이극돈이 유자광을 통해 상소한 조의제문이 불량문서라고
연산군에게 보고하므로 발생한 김일손을 비롯한 신진 세력인 사람파(士林派)의 여러 사람들이 함께 처형을 당하였다.
조의제문(弔義帝文)은 중국인물 황우에게 살해되었던 초회왕 사례를 들어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을 비꼬았다는 것으로 무오사화가 일어나게 됐다는 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바구이지만
비대해지고 있는 사림에 대한 견제구로 아웃을 시킨것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극돈의 사주를 받아 무오 피바람을 불게 한 유자광도 사림파의 스승격의 위치였던
김종직과 엮어서 사림파를 숙청하자는 생각을 하게한 연유는 함양의 학사루에 걸어둔 자신의 시를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부임하자마자 떼어내어 불살라 버린 일로 김종직에게 개인적인 원한으로
무오사화가 시작되었다고 봐도 된다.
김종직선생은 왜 유자광을 미워 했을까.?
믄답시 유자광의 詩를 철거하고 불살라 버렸을까.?
모난돌이 정 맞는다고 했다
서당이나 서원에서 글줄이나 읽고 공자왈 맹자왈 하고 공부만 하고 시험을 통과하면 세상이치를 다 알수가 있나.
나라 정세나 실무 경험이 없는 34세의 젊은 친구를 이조좌랑이라는 벼슬로 임명하기에는
이조 판서인 이극돈 선생의 판단이 잘못이고 나쁜것인가.
이조판서라는 장관이 같이 일해야 하는 자기 수하가 될 인물이 반대파의 인물이면 당연히 거부도 하는게 아닌가.?
30대 초반인 김일손은 믄 배짱과 뒷배가 있었기에 그리 기고 만장 했을까.?
지금의 세상에서 사람이 너무 날뛰면 경망스럽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원 샌님들이 헛기침이나 하고 글줄께나 읽고 공자 맹자에 대해서
조금 유식해지니 눈에 뵈는게 없어진 것은 아닌가
길재.... 그리고 김창숙.점필재 김종직 이하 김일손을 시작으로 권경유, 권오복 등 김종직의 제자들과
중종시대의 조광조...... 그리하여 쭈루룩 송시열..... 어쩜 성리학파의 패거리들은 아닐런지......
유교를 종교로 해야하나 아님 학문이라 해야하나하는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수도 있고
인간에나 조직에나 심지어 국가운영의 기본이념이거나 순기능이 있다면
필시 역기능도 있을터........
성종이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하여 그냥 초야에 묻혀서 학문이나 닦던 사람들을
이조 전랑은 이조의 정5품 정랑(正郞)과 정6품 좌랑(佐郞)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오냐 오냐 하면 할애비 수염도 뽑는다 했다.
대간의 존재 이유는 언로(言路)를 열기 위함이라고 시부렁 거리며 사사건건 임금이 하는 일에
태클을 걸던 대신들에게 강한 불만을 갖고 있었던 연산군이 더이상 참지 못하고 분기탱천하여
왕을 알기로 우습게 본 사람을 조져버린 결과는 아닐까?
김일손은 김종직의 제자이지만 업무 능력이 떨어져서 사관의 업무인 사초 작성을 뒤죽박죽 써버렸고,
요즘세대들이 하는 말로 번역하자면 증말 겁대가리가 없는 글을 남겨둔것이다
지존인 성종의 할아버지요, 연산군의 증조부인 세조를 모독하고 그의 집권이 부당하다는 글들이었고,
일부는 왕실을 모욕하는 글들도 있었다니 왕을 개무시했단 뜻이다..
증권가의 찌라시도 아니고 하나같이 소문에 불과한 카더라성격의 근거없는 소문을 댓글로 작성하였다니
왕을 능멸한 죄는 능지처사가 형벌이 아니던가.?
멸문지화를 각오했다는 뜻인가.하여 결과론적으로 무오사화는 부관참시까지 진행된다
김일손은 왕이 사초를 볼수 없다는것을 이용하여 사초 자체를 농단하였다고 판단한다면
내 생각이 위험한가.?
입 무거운 벗과 함께 술자리에서조차 하기가 부담스러운 야그를 사초에다 기록한것도 있는 모양이다
공식 기록물인 사초에 근거도 없는 낭설로 소설을 쓰다니 자존심이 강하고 왕의 권위를 다시 찾으려고 노력했던
연산군으로서는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큰 문제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종합하여 볼때에 탁영 김일손선생은 안하무인하고 방자한 행동과 경망스럽고
가벼운 성품이 케릭터가 아닌가 한다.
김해김씨 삼현공파 사람들이 선조인 탁영 김일손 선생을 후대들이 요렇게 평가했다는것을
안다면 자존심에 스크러치가 나겠지만 광주이씨 이극돈선생의 후손으로서는 나름대로 명예회복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일손 본인이 직접 실토했다는 내용이다
스승인 김종직이 단종의 일로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어 분개했고,
때문에 자신이 조의제문을 사초에 넣었다'고 ................ 자백이다
김일손이 중심에 있는 무오사화는 50여명의 사림파 패거리(?) 인물들이 날벼락을 맞이햇다
김종직 문인이라는 학연으로 끗발을 부린 이들이 몰락으로 이어지는 디테일한 형벌진행상황은 그 자체가 대하 드라마일 것이다.
나의 선조 너의 선조 할것없이 이슈가 있는 인물들이 꼭 존재한다.
그리고 전해오는 당시의 모든것이 사실이 아닐수도 있다.
역사는 승리자의 관점에서 기록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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