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9.
* 충북 괴산군 청천면 청천리 뒷산,

괴산의 마스코트 임꺽정이 고추를 광고하는 상이 길가에 있다
임꺽정은 월북작가 벽초 홍명희선생의 소설이고 홍명희선생은 괴산 출신이다
오늘에 찾은 이는 내가 답사했던 충청도 옥천군 구룡촌 외가에서 26세 까지 살다가
회덕(懷德)으로 옮겨 살은 사람을 찾아왔다
그는 1633년(인조 11) 생원시에 장원급제하고 남한산성 영화에서 이름을 남긴 최명길(崔鳴吉)의 천거로
경릉참봉이 되면서 관직생활을 시작한 사람이고 효종이 봉림대군으로 있을시에
대군의 사부(師傅)가 되었다는 우암 송시열이다.
소론의 영수는 명재 윤증선생이고 노론의 영수는 우암 송시열 선생이다
송자라고 불리울 정도로 그분은 한국 유교사에 없어서는 아니되는 인물이다
조선의 성리학자로 본관은 은진, 자는 영보, 호는 우암 송시열은 .
주자를 조상 이상으로 흠모하고 주자의 학설을 맹신할 정도로 신봉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평생을 살았다는 사람이다 그의 묘를 찾았더라.

효종이 죽자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服喪) 문제를 둘러싸고 제1차 예송(禮訟)이 일어날때
송시열은 기년복(朞年服 : 만 1년 동안 상복을 입는 것)을 주장하면서
3년복(만 2년 동안 상복을 입는 것)을 주장했던 남인 윤휴와 대립각을 세운 인물이다
그 예송이 뭐길래. 대단한일이라고 싸움박질을 했는지........

신도비는 또 믄가.?
사대부의 신도비는 웬만한 위업과 공훈을 세웠거나 도덕과 학문에 투철한 자들의 묘 앞에 세우는데
조선시대 이후 관직으로 정2품 이상의 뚜렷한 공업과 학문이 뛰어나서 군왕보다도 위대할 수 있는 일이라 하여
신도비를 세웠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사대부의 신도비는 천지 삐까리이다


206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만나는 그의 묘소인데 계단은 심심해서 세어 보았다.


유명 조선인 ......
1689년 숙의장씨(장희빈)가 낳은 아들(뒤의 경종)의 세자책봉이 시기상조라 하여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미움을 사 모든 관작을 삭탈당하고 제주로 유배되었다.
그해 6월 국문(鞠問)을 받기 위해 서울로 압송되던 길에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죽은 송시열선생.
주자라는 인물에 반해서 〈주자대전 朱子大全〉·〈주자어류 朱子語類〉의 연구에 몰두하여
주자대전차의( 朱子大全箚疑)·주자어류소분 (朱子語類小分) 등의 논문으로
주자전문가로 명성이 자자하다.



주자라는 사람은 송나라의 유학자이다.
우주의 구성 원리를 형이상학의 ‘이’와 형이하학의 ‘기’로 보았으며,
그의 설파한 학문을 주자학이라고 하는데 후대 동아시아 문화권의 지배적인 이념이 된다
주자라는 사람은 남송의 유학자 주희(朱熹)의 존칭이다, 그는 공자와 맹자 다음으로 숭배를 받은 인물이다


해동성인(海東聖人)으로 송자(宋子)라고 하는 존칭으로 불린 우암 송시열.
후대에 와서 그의 평가는 여러 사람의 의견이 많히 갈린다 한다
정조임금은 즉위 이후 (송자대전) 등의 문집과 저서들을 간행했다.
송시열을 빼놓고는 조선 후기의 정치와 사상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이며 조선왕조실록에 3천번 이상
그의 이름이 언급될 정도로 영향력을 가진 주자학의 대가임에는 틀림이 없는 모양이다
왕의 위세를 능가할 정도로 위세를 떨친 노론의 영수이고 유림의 거두였다는 것이고
제주에 유배되었다가 서울로 압송되던 중 사약을 받고 죽었다.
사약을 내린이는 장희빈의 남자 숙종이었다
아침 공복에 아이의 오줌을 받아 마시는 요로법으로 늙어서도 건강한 송시열은
사약을 세사발이나 받아 마시고야 죽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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