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知고.

598. 논산. 명재 고택

한유 2022. 12. 11. 06:42

598.

* 충남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명재 윤증고택...........

 

논산은 동쪽은 계룡시 두마면, 대전광역시·금산군, 서쪽은 부여군, 남쪽은 전라북도 완주군·

익산시, 북쪽은 공주시와 접하고 있는데 이곳 논산에는 

중요민속자료 제190호.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윤증이 건축하였다고 전하는 집이 하나 있다.

이 고택은 파평윤씨(坡平尹氏)들의 세거지인 옛 이산현에 있는 이산(尼山)을

배산(背山)으로 하여 노성향교(魯城鄕校)와 함께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좌측으로는 작은 둔덕이 감쏴고 있는 집 앞에는 인공으로 만든 연못이 있고

넓은 바깥마당이 있고, 조그마한 석가산(石假山)을 조성한 멋있는 정원이 꾸며져 있다.

이 집이 명재고택으로 불리우는 집이다

명재 윤증. 그는 누구인가.?

알아보니 할아버지는 윤황(煌)이고, 아버지는 윤선거(宣擧)이며,

어머니는 공주이씨(公州李氏) 이장백(長白)의 딸이다. 성혼(成渾)의 외손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유계(兪棨)에게 배우고 뒤에는 장인인 권시(權諰)와 김집(金集)에게 배웠다.

29세 때에는 김집의 권유로 당시 회천에 살고 있던 송시열(宋時烈)에게 〈주자대전 朱子大全〉을 배웠다.

송시열의 문하에서 특히 예론(禮論)에 정통한 학자로 이름났으며.

1663년(현종 4) 천거되어 내시교관·공조랑·지평 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했고.

숙종대에도 호조참의·대사헌·우참찬·좌찬성·우의정·판돈녕부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했다.

타고난 바람끼의 남자 숙종시대는 다양한 여인들이 등장한다 그 중 대표적인 여인으로 장희빈이 있고 최숙빈도 있다

그의 계보에는 장희빈의 아들 경종과 동이로 알려진 최숙빈의 아들 영조가 있다.

숙종은 1661년(현종 2) 8월 15일에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이름은 순(焞), 자는 명보(明普)이다. 이 시대가 노론이니 소론이니 당파싸움이 치열한 시대인 것이다.

접해있는 여기는 노성향교이다

소론의 영수 윤증이 살았던 17세기 조선은  이른바 4색 당파라 해서 동인이 북인과 남인으로 갈라지고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졌던 시기였다.

이때 송시열이라는 정치 사상계의 거물과 맞서며 진보적인 소장파를 이끈 이가 바로 윤증이다.

명재선생이라 하는 윤증. 그는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과의 결별은 아버지의 묘갈명(墓碣名)을 송시열에게 부탁했는데

송시열이 내용중에 야유하는 뜻을 적자 이의 시정을 요구했으나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개인적 감정과 함께 남인에 대한 처벌문제로 서인이 강·온 양파로 분리될 때

그를 지지하는 사류(士類)들에 의해 소론의 영수로 추대되었고 스승인 우암과는 결별한다.

그는 송시열을 "대인의 의와 소인의 이익을 함께 행하고, 왕도와 패도를 같이 쓴다고 비난함으로

사제간의 의리도 끊어버린다는 말을 남겨 버린다.

윤증의 집안 내력을 잠시 살펴보니  할아버지 윤황은 이이와 함께 기호학파를 이끈 성혼의 사위였으며.

그리고 아버지 윤선거는 이이의 학통을 이은 김장생의 제자였다.

평생 출사하지 않고 재야에서 지냈으나 높은 명망으로 선배, 동료, 후학들의 추천으로

지속적으로 관직을 받았으나. 평생 출사하지 않으면서도 왕에게  우의정까지 제수 받았으며,

임금의 얼굴 한 번도 보지 않고서  정승벼슬에 올랐다고 하여 백의정승(白衣政丞)으로

불렸다는 인물이 막후정치의 달인 명재 윤증선생이다. 평생 관직도 없었다면 남명 조식선생과 믄가 유사하다.

막후정치의 달인은 아닐까>?

당쟁의 한 인물 노론파의 거두 윤증선생이 살았다는 집이다

 

서원의 횡포는 고을의 수령도 골병들 정도로 심했다고 하는데.....

당시 서원 중에서도 송시열을 제향한 괴산 화양서원은 횡포가 가장 심했다고 하는 모양이다

화양묵패(華陽墨牌)라고 하는것이 있는데 묵패란, “서원에 제수전(祭需錢)이 필요하니 아무 날 아무 시간까지

얼마를 봉납(奉納)하라.”는 식의 고지서(告知書)를  군(郡) ·현(縣). 관(官) ·민(民)을 가리지 않고 보내었다고 하는데

이 갈취 고지서를 받은 이는 전답이라도 팔아서 바쳐야 했다고 한다.

만일 불응하면 서원으로 잡혀가서 고초를 격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이에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은 서원의 폐해를 보다가 보다가 작심하고 

민폐의 집단인 서원에게 서원 철폐령이라는 몽둥이 찜질을 내리게 된다.

 

 

윤증선생 어머니인 공주이씨의 정려문이다.

여기는 충남 논산에 있는 명재 윤증고택이다.

주자학이라는 중국문화에 쩔어서 싸우고 찌진 당파의 거두인것은 사실이다

후손들이야 선조를 자랑스럽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그분은 당파싸움의 정점에 있었다는

사실에는 부인할수 없다.

우암은 충청북도 옥천태생이고 윤증선생은 충청남도  논산이니 당대에는 충청의 힘이 대단한 시대이다.

 

'보고知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600. 전주. 이두황 무덤.  (0) 2022.12.15
599. 괴산. 우암 송시열묘  (0) 2022.12.11
597. 하동. 이현상  (0) 2022.12.10
596. 선산. 신라불교 초전지  (0) 2022.11.14
595. 김해. 클레이아크  (0) 2022.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