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7.
* 경남 의령군 궁류면
宮柳.......... 시장입구이다

이곳 궁류시장반경으로 엄청난 사건이 생기니 그것이 의령 우순경사건이다.


의령.........궁류면 일대에서1982년 우범곤이란 놈에 의해 발생한 대량 학살 사건이란게 있다
우씨라는 성씨는 그리 알려진 성씨는 아니다.
한국의 우씨(禹氏)는 본관이 단양 단본이다.
단양 외에도 예안 강주. 영천등 40여 본이 기록되어 있으나 모두 세거지(世居地)에 불과하며
현재는 단양 우씨(丹陽禹氏) 단본으로 전해진다.
그 놈이 단양 우씨라면 우씨집안을 먹칠하고도 부족해서 똥칠을 한 인물이다.
우씨중에는 역사를 드듬어 보면 생각나는 인물이 우범선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명성황후로 알려진 민자영을 살해하는 국가적 사건에 크게 일조했다는
개화파의 인물로 알려진 사람이 우범선이다.
우씨중에는 현대의 인물로는 우원식 국회의장도 있다.
같은 범자 항렬이니 알수는 없어도 보는 시각에 따라 우범선이 역적이냐 아니냐로
판단이 유보 되지만 우범곤 이늠은 천하의 빌런이이라 할수 있는 인물이다.
두 사람이 다 단양 우씨인지는 알수 없어도 .
먼저 우범선을 두고 그 아들 우장춘 박사의 공헌 덕분에 그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지만
지금이 2026년이니 44년전의 이야기가 전설로 남은 희대의 학살 사건으로 이름을 날린 늠이
發狂한 그 현장인 의령군 궁유면을 찾게 되었더라.
대략적으로 우순경 사건으로 알려진 학살사건을 살펴보면..............
1980년 12월 30일날. 원래 101경비단 소속으로 청화대에서 근무했다가 거친 성격으로 인해
근무 부적격자 판정을 받아 전출 처리되어 의령군 궁류지서로 발령 받아온 우범곤이라는 순경이란 놈이
하숙집 이웃집에 살던 전 모 양과 사귀다가 전양의 집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술만 처먹으면 황포해지는 우순경은 전양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했것다.
동거에 들어가기 전에 전양의 부모는 결혼한 뒤 함께 살라며 만류했지만
우범곤이 결혼 비용이 없다며 가을로 식을 미루기로 하고 동거하지만 더러운 성격이 어디갈까.?
우범곤은 저녁시간 근무를 위해 12시경에 집으로 들어와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잤다.
그가 잠든 와중에 동거녀가 그의 몸에 붙은 파리를 잡기 위해 손바닥으로 그의 가슴을 쳤는데
그 둘은 이를 계기로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화를 미처 식히지 못한 채 우범곤은 오후 4시경 지서로 간 뒤,
오후 7시 30분경 술에 취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만취한 상태에서 동고녀와 시비가 붙어 싸우면서 동거녀를 폭행했고.......
같은 집에서 살고 있던 동거녀의 친척 언니가 뛰어 들어와 말리자 친척 언니의 뺨마저 때리니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사건의 전말을 들은 그들이 동거녀를 두둔하자 우범곤은 다시 집을 나갔고.......
갈데라곤 근무하는 지서뿐인지라 지서로 가서는 지서에 배속된 방위병들과 소주를 퍼마시고 있는데
동거녀의 남동생이 와서 '경찰이면 다냐'고 소리를 질러대자 폭발해서
무기고를 열고 2자루 실탄 카빈총을 꺼내오니 이를 만류하는 방위병들을 총을 쏴 내쫓은 다음에
실탄과 수류탄을 들고는학살을 벌이기 시작한다.
우범곤은 어린이와 갓난아기까지 무차별로 살해했으며 평촌리 상갓집에서는 20여 명을 사살하는 등
우범곤이 쏜 실탄은 총 135발, 자살 후 경찰이 회수한 남은 실탄은 9발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무려 63명의 주민들이 사망했고 33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희생자 중 7명은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다가 총상이 악화되어서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우범곤의 일탈로 보아야 하나.?
아니면 궁류면 마을의 운명으로 봐야 하나.?
참으로 알수 없는 회오리 바람이 휩쓸고 간 비극이었다.
이 날은 반상회 땜시로 마을 주민들이 곳곳에 모여 있었다니 이 또한 몰살의 날벼락이며
초상집이 있어서 밤늦게까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는것은 또 무슨 귀신의 조화란 말인가.?
불을 켠 집이 많았기에 희생자가 많았다는 것은 또 무슨 근거인가,
궁류지서의 다른 경찰관 3명도 반상회에 참석하려고 근무지를 무단이탈한 상태였으며
지서장 이늠은 마을 유지의 온천 접대를 받으러 지서를 무단이탈한 상태였다니...........
우범곤의 가족들은 사건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가 우범곤의 시신 수습을 거부했으나
결국 공동묘지에 안장시켰다고 한다.
우범곤의 시신은 사건 이후 일주일 이상 궁류지서에 방치됐다가 시체가 썩어 악취 등이 들끓자 화장했다고 한다.









추모공원입구에서 가깝다 일붕사이다.
















합천으로 넘어가는 길에서 바라본 궁류면 평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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