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知고.

766. 입. 귀. 눈.

한유 2025. 9. 20. 17:20

766.

* 눈과 입 그리고 눈.

 

그 입을 다물라.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듣는 소리가 다 참말이 아니다.

 

한번쯤 되내이고 싶은 것들이다.

누가 말했단다

사람에게서 벗어나니 세상이치가 보이더라고...........

내가 존재하므로 인식하므로 만유가 있는것이라고도 했다.

처세의 제 일 덕목은 아니라 해도 보았다고  본것을 다 말할수 없고 터진 입이라 해서 

다 말할수 없는 것이며 들었다고 다 사실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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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섬에 대한 내용은 육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세인트 세이야의 기술에 대한 내용은 육도윤회(세인트 세이야) 문서를, 중국의 병법서에 대한 내용은 육도삼략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선도(善道)
천상도(天上道)
수라도(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악도(惡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
지옥도(地獄道)
 


티베트 불교의 육도윤회도. 가운데에 그려진 새, 뱀, 돼지는 각각 육도윤회의 원인인 탐(貪: 욕심), 진(瞋: 성냄), 치(癡: 어리석음)를 상징한다.

육도윤회()는 중생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고 나면 생전의 행보에 따라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인간도, 수라도, 천상도로 나뉘는 육도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믿음을 뜻한다.

2. 불교의 윤회 개념[편집]


우선 육도 윤회를 알아보기 전에 불교의 기본적인 개념을 알 필요가 있다.

윤회라는 것은 차례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수레 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는 것과 같이 중생이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의 생사 세계를 그치지 않고 돌고 도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삼계 육도라 함은 삼계(욕계ㆍ색계ㆍ무색계)와 육도(지옥도ㆍ아귀도ㆍ축생도ㆍ인간도ㆍ수라도ㆍ천상도)로 이 세계를 설명하는 틀이다. 이 세상은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눌 수 있고 이 중 우리가 있는 계는 바로 욕계이다. 또한 6가지의 삶의 길(六道)이 있다. 원인과 결과에 의해서 삼계 육도에 빠져있는데, 세계의 이치를 깨우치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번뇌가 없는 진정한 평안을 얻는 다른 차원(도피안)으로 갈 수 있다. 이를 해탈이라고 한다. 이 지고지순한 경지를 얻지 못한 자는 죽은 뒤 자기 업에 따라 삼계 육도의 한 곳에서 다시 환생한다.

이렇게 윤회하는 이유를 불교에서는 불법을 깨우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각 도는 불법을 깨우치기 위한 길 혹은 방법으로 존재하고 지옥도 < 아귀도 < 축생도 < 수라도 < 천도 < 인간도 순으로 불법을 깨우치기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왜 천도가 인간도의 밑에 존재하냐면 천도는 사실 가장 불법에 가까이 있는 천상 세계이고, 인간도에서 정말 덕업을 많이 쌓은 사람들이 태어나는 곳이지만 그만큼 번뇌에 고민하지 않게 되어 진정한 해탈을 얻기 오히려 어렵다는 것이다. 온실 속의 화초 인간도야말로 불법을 깨우치기 좋은 환경이라는 것이다. 온갖 번민에 고민하면서 치열하게 집착을 버리려는 노력과 덕업을 쌓을 기회가 많은 인간도가 부처가 되기 위한 가장 좋은 기회이니 이때는 놓치면 또 몇 을 윤회해야 한다.

불교에서 이 세계는 곧 5감 또는 6감이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마음이 만들어낸 세상으로 일반적인 인식 너머의 또는 인식이 되지 않는 세계도 있다. 지옥은 사후 세계라는 동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현실 공간에 다른 차원으로 존재한다고 얘기한다. 마치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듯이 주파수를 맞추면 한 곳에서 다른 채널을 들을 수 있듯이. 영화 콘스탄틴에서도 이런 개념을 보여준다.# 혹자는 다른 차원이 아니라 세계관의 문제라고도 주장한다. 즉 똑같은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지옥도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천도로 보인다는 것. 가령 날때부터 풍족한 집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 유순한 성정을 얻은 부자에게 이 세상은 천상도, 전투적 투쟁과 경쟁의 고통을 감수하며 그 자체를 즐기는 용자에게 이 세상은 수라도, 이도저도 아닌 대다수의 범부와 짐승들에게 이 세상은 인간도와 축생도, 굶주림과 병마를 비롯한 온갖 고통에 시달리는 빈자에게 이 세상은 아귀도 혹은 지옥도일 것이다. 즉, 육도윤회 역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사실 여기서 천상도부터 지옥도까지의 6도가 인간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다. 상술했듯 왕의 자식이나 대부호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아이와 거지나 내전으로 고통받는 지옥 같은 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느끼는 현실은 각각 천도와 지옥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번뇌에 구애받지 않는 구도자와 탐욕과 질시로 마음이 지옥과 같은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 다른 현실에 살고 있음은 명백하다.

《법화경(法華經)》에서도 '육도가 어떠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명 상태에 따라 변화되는 것이며, 범부(凡夫)가 끊임없이 욕망에 지배당하여 좌우되는 것을 육도 윤회라고 한다.'고 설명한다.

원래 오도였으나 수라도가 도입되면서 육도가 되었다고 한다.

3. 육도(욕계)[편집]

도道자가 붙기 때문에 큰 복덕과 큰 죄악이 아니면 계속 인간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수 있다. 어디서는 수행을 안하면 축생도나 아귀도로 떨어진다고 겁을 주는데, 그런 방식은 더 많은 번뇌와 고통을 줄뿐 진정한 포교가 아니다. 불교에서는 외계인의 존재도 인정하기에 더욱 기회가 많다. 그러니까 불신지옥 등으로 겁박을 통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유도하는게 아닌, 더 많은 기회가 있음으로 유도하는게 맞다. 불교는 기회가 정말 많다. 어떤 방법을 해도 부처님이 될수 있으니, 사이비를 행하는일만 없으면 된다.
나락(奈落)[2]이라고도 부른다. 아귀도와 축생도로 가는 사람들보다 더욱 심각한 악인들이 태어나는 곳이다. 연쇄살인범 정도가 아니고서야 가기 힘든 곳이라 봐도 된다.[3] 생전의 악업에 따라 108 지옥에서 고통받는다. 여기서 108 지옥은 현실 세계의 악행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흔히 지옥을 죽은 영혼의 상태에서 고통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당연히 영혼 상태에서는 고통을 받을 수 없다.

다시 태어나서 108가지 고통을 받으면서 업을 씻는다. 과거 불교가 한반도에 자리잡으며 일반에 토속 신앙의 사후관과 기독교의 천당과 지옥의 개념이 혼합되어 영계에서 영혼이 고통받는 곳이란 이미지가 굳어졌다. 불경에서는 분명히 육도를 다시 태어나는 곳이라고 했고, 지옥도도 마찬가지다.

지옥도에서 악업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면 아귀도나 축생도로 환생하여 남은 죄를 마저 씻어야 한다. 후술할 내용이지만 목련존자의 어머니는 지옥도에서 악업을 청산하지 못해 침구아귀를 겪은 후 부잣집 개[4]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지옥에서 다시 태어난 다음, 죽을 정도로 끔찍한 고문을 당하지만, 결코 죽지 못하고 다시 멀쩡하게 재생되어 몇 번이고 똑같은 죽음의 고통을 당하면서 생전의 악업을 갚는다. 참고로 지옥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지옥은 무간지옥으로 죄질이 가장 나쁜 자는 재판 없이 바로 여기로 떨어지며, 살생과 탐욕으로 악업을 너무 쌓아 재판조차 안 해도 될 악인으로 판정받았던 목련존자의 모친처럼[5] 온 몸에 못 49개를 박고 몸 안이 불타 입으로 불을 뿜어내는 혹독한 고문을 받는다. 지옥도의 구조는 신과함께로 알려진 중생이 심판받는 시왕지옥(十王地獄)과 답이 없는 악인들이 떨어지는 팔열팔한지옥(八熱八寒地獄)으로 나뉜다. 자세한 사항은 지옥(불교) 참조.

3.2. 아귀도(餓鬼道)[편집]

욕심이 많고 동정심은 없었던, 그 중에서도 악질인 자가 태어나는 곳으로, 지옥보다 덜하고 축생보다 더하다. 보통 사람이 가기는 역시 힘들고, 사람을 여럿 죽이거나 연쇄 아동 성범죄자급 정도가 여기서 태어난다. 공덕은 없고 악행만 일삼은 자들이나(지옥까지는 안 갈 정도로 악업이 쌓인 경우) 지옥도에 떨어질 정도로 악행이 심했으나 그나마 공덕도 있어서 지옥은 겨우 면한 경우 이곳에 간다. 지옥과의 차이점은 지옥은 '형벌'의 의미로써 일부러 고통을 주지만, 아귀는 신체 구조 자체가 고통스럽다. 배는 태산만 해서 언제나 굶주리고 목마르지만, 목구멍은 바늘만해 음식을 거의 먹을 수 없어 평생 목마름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식이다. 아귀도에 태어난 사람은 먹으려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항상 매 맞는다고 한다. 이렇게 먹지도 못하면서 먹을 것을 가지고 서로 싸운다. 여기서 '아귀다툼'이라는 말이 생겼다.

지옥에서 형벌을 마친 사람 중에서 지옥에서의 형벌로도 모자란 이들은 생을 거듭하면서 계속 형벌을 받는데 가장 먼저 윤회하게 되는 곳도 아귀도다. 문제는 이걸 수백번 정도 반복한다는 것이다. 수명이 인간보다 훨씬 길며, 거기에 윤회를 수백번 반복하고 자살하면 더 아래인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즉 아귀도에서 한번 태어나고 죽는게 아니라 수백번이나 태어나고 죽음으로서 형벌을 받는 것. 따라서 많은 공덕을 베풀 배포가 없는 범부들은 평정심을 유지하여 최대한 인간도에서 더불어 살아야 할 것이다.

3.3. 축생도(畜生道)[편집]

동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6] 사람은 적고 동물은 많기에 대부분 인생 → 축생 수만 번 → 인생을 반복한다. 동물로 태어나 인연을 만나 덕을 쌓다 보면 언젠가 사람으로 태어나 불법을 깨우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민간에서는 흔히 동물을 학대한 사람이 동물로 환생해 자신이 생전에 동물들에게 한 학대를 그대로 돌려받는다고 동물, 곤충을 괴롭히는 아이에게 어른들이 혼낼 때 많이 얘기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고 축생도가 아닌 지옥으로 바로 갈 수도 있다. 동물로 태어나서 불법을 닦기 묘연한 이 험한 길(道)을 가야 할 정도의 업을 쌓은 자들이 동물로 다시 태어난다. 반대로 지옥에서의 형벌로 모자란 이들이 아귀도를 거쳐서 다음으로 축생도에 태어나게 되는데 이를 수백번 반복하게 되며, 일부는 축생도에서 태어나는 것도 모자라 고통 속에서 살게 된다.[7]

인간이 축생도로 환생하는 경우는 생전에 저지른 죄악이 아귀도로 갈 정도는 아니지만 인간도로 환생하기에는 죄악이 많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아귀도까지 갈 정도로 죄악이 많은데 공덕이 있어서 아귀도를 면한 경우도 축생도로 환생한다. 인간이 죽어서 후생에 아귀도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축생도부터는 꽤 많아진다. 숫자상으로 사람은 적고 동물이 많기 때문이다. 별다른 공덕도 없고 죄악이 많으며 욕심이 많은 인생을 살아 인간도로 환생할 가치가 없으면 축생도로 환생한다. 전생에 쌓은 악업의 정도에 따라서 정말 환경이 좋지 않은 생태계로 갈 수도 있고 그나마 나은 생을 살 수도 있다. 친근한 주인의 애완동물로 태어나면 그나마 복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죄가 그리 심하지 않으나 딱히 인간계로 보낼만한 이유도 없을 때 축생도, 특히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애완동물[8] 태어나게되며 어느정도는 주인과 연이 닿아있다고 한다. 일부는 인간계에서 큰 상처를 받아 인간계에서 태어나기를 거부하고 축생도에서만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때 대부분 죄가 없기 때문에 공덕깊은 인간에게 발견되어 키워지거나 스스로 큰 고난 없이 축생도의 삶을 마감한다고 한다.

3.4. 인간도(人間道)[편집]

우리가 사는 현세. 생로병사에 시달리며 번뇌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다른 길보다 훨씬 불법을 닦아 해탈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길도 역시 부처가 될 수 없는건 아니다. 좋은 예시로 서유기에서 손오공은 경전을 가져오는데 큰 도움을 주어 '투전승'이라는 직책을 얻었다. 즉 서유기 엔딩 시점에서는 손오공도 엄연히 부처다. 후술하겠지만, 손오공 제천대성과 그 측근 요괴왕들인 칠대성은 인간도보다는 수라도에 가까운 존재들이다.

지옥도-아귀도-축생도를 거쳐 인간도에 태어나게 되거나 아니면 그나마 선업을 쌓아놓은게 있어서 지옥도를 면하고 인간도에 태어나게 된 이들은 인간도에서 불운한 일생을 보내게 되는 것으로 벌을 받는다.

인간이 후생에서도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려면 공덕이 있어야 한다. 공덕을 화끈하게 향상 시키는법은 뭐니뭐니해도 절에가서 스님 수행을 돕고자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여름의 시원한 음료공양부터, 겨울의 따듯한 난로공양 장작공양, 스님이 바깥출입을 하시면 스님을 향해 허리굽혀 공손히 인사하기 스님들께 꽂공양 올리기 등을 많이 하면, 아뿔사 사후 인간계로 직행하는 것이다. 그것도 좋은 집안에서 말이다. 노력을 더 많이 하면 천상도로 갈수도 있다.

3.5. 수라도(修羅道)[편집]

오로지 투쟁만이 존재하는 세계로 흔히 무법천지로 묘사된다. 일부 전승에서는 수많은 왕국으로 분열되어 있고, 뚜렷한 제도나 종교 체계가 없으며, 귀천을 막론하고 전투에 몰입하느라 모두 노숙 생활을 한다는 묘사가 있다. 이곳의 존재들은 지혜는 있으나 분노와 시기심이 강해 끊임없이 싸움을 벌이며 살아간다. 아수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처럼 오선(五善)과 십계(十戒)의 선업을 쌓아야 한다고 전해지며, 그만큼 지혜와 재주가 뛰어나고 복이 있는 존재로 간주된다. 다만 그 번뇌가 강해 천상에는 들지 못하고, 투쟁심과 오만으로 가득한 상태에 머무른다. 자연 환경은 아름답고, 외모도 뛰어나다는 묘사가 있지만, 정법(正法)을 멀리하고 해탈의 가능성도 낮다.

아수라(阿修羅)는 본래 인도 신화에서 신(데바)과 대립하는 전투적인 반신적 존재들로, 불교에서는 육도윤회의 한 세계인 수라도(修羅道)에 거주하는 중생을 의미한다. 이들은 지혜와 복덕이 있어 인간보다 높은 존재로 간주되나, 강한 분노(瞋), 시기심, 교만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투쟁하며 살아간다. 선업을 쌓아 수라계에 태어나지만, 집착과 분노로 인해 천상에는 들지 못하고 해탈과도 거리가 먼 세계에서 윤회한다. 아수라는 신적 힘과 아름다움을 지녔음에도 정법(正法)을 멀리하며, 제석천과의 끊임없는 전쟁으로 '아수라장'이라는 말의 어원이 되었다. 이는 비록 인간이 아수라보다 비천하고 나약하나, 오히려 그렇기에 깨달음에는 더 가까울 수도 있다는 역설적 교훈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힌두교의 신격은 일반적으로 그리스 신화의 신들과 마찬가지로 선악의 양면성을 지니며, 인간적인 성격적 결함도 함께 표현된다. 불교가 인도에서 전파되던 초기에, 기존 브라만교와 힌두교의 신격 체계를 이해하던 대중에게 접근하기 위해, 불교는 일부 신화적 요소들을 교리적으로 재해석하였다. 이 과정에서 힌두교의 데바 신족이 거주하는 세계가 후술할 '천상도'가 되었으며, 그들에 대적하는 투쟁신들인 아수라 신족은 단순한 악신이 아니라 선과 악이 혼재하며 지혜도 갖춘 존재로 묘사되었다. 고로 자연스럽게 아수라들이 위치한 수라도는 인간도보다 높은 세계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초기 경전에서는 아수라왕이 제석천에게 도전하는 존재로 주로 등장하지만, 일부 대승불교 설화에서는 부처의 설법에 반발하여 싸움을 걸었다가 결국 감화되어 불법을 수호하는 수문장이 되었다는 서사도 나타난다. 이는 아수라를 단순한 악의 화신이 아닌, 교화 가능성이 있는 중생으로 보는 불교적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다.

즉, 수라도는 불교가 인도에서 전파되던 과정에서 기존 브라만교와 힌두교의 신격 체계와 세계관을 흡수하고 재해석하며 형성된 개념이다. 이 세계의 중심 존재인 아수라왕은 본래 힌두교의 아수라(asura)와 동일한 어원을 지닌 존재로, 불교에서도 역시 전투적이고 강한 힘을 가진 신적 존재로 묘사된다. 상기한 수라도의 중생들인 '아수라(阿修羅)' 역시 'asura'의 음역이며, '수라'는 그 약칭이다. 불교에서 아수라왕은 악신으로 단정되지 않고, 선과 악의 양면성을 지닌 중생으로 해석되며, 팔부중[9] 가운데 하나로 포함되어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는 불교가 힌두교의 다양한 신격을 포용하되, 그 성격과 역할을 '업(業)에 따른 윤회와 교화의 가능성'이라는 불교적 틀로 재해석했음을 보여준다.

힌두교 신화에서 아수라왕은 본래 정의와 힘을 상징하는 존재였으나, 천계의 지배자이자 데바 신족의 우두머리인 인드라, 불교에서는 제석천이라 불리는 동격의 존재와의 전쟁에서 패배해 지위에서 밀려났다고 전해진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신화를 전승 요소로 받아들이면서도, 아수라왕과 아수라들을 끊임없이 천계에 도전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불법에 귀의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해석한다. '아수라장'이라는 표현은 수라계의 존재들 간의 끊임없는 투쟁, 혹은 아수라왕 제석천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유래한 말로, 극심한 혼란과 다툼의 상황을 상징한다. 불교에서는 명예를 알고 공덕이 많지만 호전적이거나 시기심과 교만이 강한 중생이 이러한 성향의 업(業)에 따라 수라계에 윤회한다고 보며, 일부 설화에서는 탁월한 전투력이나 명예를 얻은 전쟁 영웅도 그 내면의 분노와 집착으로 인해 수라도에서 아수라로 다시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고 전한다.

이렇게 독특한 위상을 지니다보니 불교에서 수라도의 위상은 종파와 지역 전통, 경전 해석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으로는 육도윤회의 하나로서, 천상도 아래, 인간도보다 높은 계위의 세계로 해석되며, 이는 주로 부파불교 대승불교의 경전 전통에서 확립된 구조이다. 그러나 일부 포교적 또는 민속적 설명에서는 수라계를 '삼악도(三惡道: 지옥, 아귀, 수라)'의 하나로 묶어, 마치 축생도와 지옥도와 비슷한 급의 저계층인 것처럼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교리적 위계라기보다 도덕적 경고나 교훈적 맥락에서 사용하는 것에 가깝다. 이는 한국 불교도들 사이에서 수라도를 인간도보다 낮은 세계로 오해하는 경향이 비교적 널리 퍼진 탓이기도 하다. 이러한 해석은 교리적으로 엄밀한 분류라기보다는, 무력과 투쟁을 부정적으로 보는 한국적 민족성과 도덕적 가치관에서 비롯된 측면이 많다. 한국 불교는 전통적으로 충돌보다는 조화, 무력보다는 인내를 중시해온 유교적 문화와 융합되었기에, 호전적인 수라의 속성을 업이 무거운 부정적 세계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화된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불교에서 수라도는 원래의 위계보다는 포교와 교화의 맥락 속에서 '경계해야 할 성향'의 상징적 공간으로 이해되게 되었다.

반면, 많은 외국 불교권, 특히 일본이나 중국처럼 상무문화가 발달한 문화권에서는 수라계에 환생하는 것을 전적으로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기도 하며, 일부 종파에서는 비범한 자들만이 갈 수 있는 세계로서 경외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티베트 불교나 일본의 일부 대승불교, 밀교 전통에서는 수라계 존재들이 강한 의지와 힘, 정의감을 지닌 존재로 해석되며, 그 성향이 수행에 따라 교화되어 보살의 길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세계로 이해된다. 이러한 해석은 수라의 전투적 에너지를 불법 수호나 정법 실천의 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으며, 수라적 의지와 무예를 갈고닦는 과정이 번뇌를 씻는 수행이자 고행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 역사적으로도 수라계가 단순히 부정적인 세계로만 인식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불교가 융성하던 고대 인도나 중국 등지에서 전쟁이 빈번하여 영웅호걸들이 많이 등장했던 시기에는 수라적 성향인 강한 의지, 전투적 기개, 불의에 대한 분노가 정법을 수호하고 악을 물리치는 보살적 역량의 한 표현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예컨대 불법을 지키는 팔부중 가운데 아수라가 포함된 점, 그리고 아수라왕이 부처의 가르침에 감화되어 귀의했다는 설화 등이 수라의 기질이 교화와 수행을 통해 전환될 수 있다는 긍정적 인식을 반영한다. 서유기에서 수라적 존재에 속한 손오공이 투전승불에 이르는 것 역시 이러한 배경으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수라계 환생이 반드시 악업의 결과만은 아니며, 복과 힘을 겸비했으되 번뇌가 남은 상태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불교의 수라도는 사람이 죽은 뒤 끊임없이 싸움을 반복하게 되는 세계라는 점에서 북유럽 신화의 전사들의 사후 세계인 발할라와 일정한 유사성이 있다. 그러나 두 세계는 '싸움'이라는 행위에 부여된 가치와 상징성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수라도는 분노와 번뇌의 업보로 인해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의 윤회 상태로 묘사되며, 이는 지옥처럼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세계는 아니지만 깨달음과 해탈에서 멀어진 상태로 인식된다. 반면, 발할라는 명예롭게 전사한 전사들이 오딘의 전당에서 사후에도 전투와 향연을 즐기는 장소로, 영광과 긍지의 사후 천국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차이는 무력과 전쟁에 대한 가치 판단이 문화마다 다르게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북유럽에서는 전사가 죽은 뒤에도 싸움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이상적인 영생이었고, 반대로 아시아의 불교에서는 그러한 투쟁심이 미혹과 윤회의 원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한 묘사되는 삶의 질 면에서도 두 세계는 대조적이다. 수라도에서는 고통스러운 투쟁만이 반복될 뿐, 생활 조건이나 환경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부족하며, 일부 전승에서는 노숙 상태로 살아간다고도 전해진다. 반면 발할라는 황금 방패로 지붕이 덮인 전당, 끝없이 제공되는 식사와 음료, 전투 후 회복되는 육체 등의 설정으로 풍요로운 이상향으로 묘사된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수라 외의 존재들이 수라도를 보았을 때 고통이 반복된다는 것이며, 당사자들인 아수라들의 입장에서 이 세계가 고통이 가득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수라들에게 수라도는 정말로 발할라와 상당히 유사한 낙원에 가깝다는 것 역시 감안할 필요가 있다. 수라계의 중생들은 단순히 고통만 겪는 존재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불교 경전과 설화에 따르면, 이들은 타고난 전투광 신족으로서 강한 육체와 지혜를 지니고 있으며, 싸움에서 이기거나 명예를 얻는 데서 일종의 쾌감을 느낀다. 전쟁과 경쟁, 우열 다툼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자체를 괴로움으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지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즐기는 측면도 있다. 노숙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 역시 형벌의 개념이 아니라, 이들이 의식주를 잊을 정도로 싸움에 몰입하기 때문이라는 맥락이 강하다. 이러한 상태는 '쾌락적 고통'이라 할 수 있으며, 미혹의 감정에 기반한 즐거움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수라계가 결코 단순히 악업의 대가를 치루는 장소가 아니라, '인간보다 고차원적인 존재들'의 쾌락과 번뇌가 뒤섞인 복합적인 윤회의 세계임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수라도는 흔히 복은 많으나 마음이 고요하지 못한 중생의 세계로 간주된다.

흥미롭게도, 북유럽 신화의 신족 명칭인 'Æsir(애시르)'가 산스크리트어 'Asura(아수라)'와 어원이 유사하다는 학설이 있으며, 이는 선사시대 공통 신화 요소가 유라시아 대륙 전반에 퍼져 있었다는 가설, 즉 원시 인도유럽 신화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사례로 언급되기도 한다. 이 가설이 맞다면 인도 신화와 북유럽 신화는 본래 같은 기원에서 시작해서 지역지리와 문화가 분화되며 그 신관이 함께 바뀐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의 윤회론에 따르면, 중생은 생전에 지은 선업과 악업의 복합적인 결과에 따라 육도의 어느 한 세계에 환생하게 된다. 수라도는 상당한 공덕을 지니고 있으나, 동시에 강한 분노, 시기심, 투쟁심 등의 번뇌를 극복하지 못한 경우에 해당하는 존재들이 태어나는 세계로 묘사된다. 예를 들어, 전쟁에 참여해 많은 공로를 세웠지만 동시에 수많은 인명을 해친 무장의 경우, 해당 중생은 선과 악의 복합적 업보로 인해 천상도에는 오르지 못하고, 수라도에 환생할 수 있다는 해석이 일부 설화나 논서에 전해진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 업의 동기, 고의성, 자비심의 유무 등을 모두 고려하여 판단되는 것이며, 단순히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이유로 '악업이 크다'고 단정하는 것은 불교 교리와 맞지 않는다. 또한, 수라계의 존재 수가 상대적으로 많다거나 적다거나 하는 기술은 경전마다 다르게 나타나며, 중생의 수 자체는 정확히 가늠되지 않는다. 게다가 상기했듯이 수라계는 지옥, 아귀, 축생보다 고통이 덜하며, 오히려 전투에서 오는 쾌감과 영광으로 가득한 투쟁신들의 세계이되, 다만 끊임없는 경쟁과 투쟁으로 인해 해탈에 이르기 어려운 상태로 묘사된다.

3.6. 천상도(天上道)[편집]

마치 극락처럼 번뇌가 적고 평온한 세계이지만, 이 세계에 태어나는 사람은 물욕은 없으나 명예욕이나 지식욕들이 살아있는 경우가 있어, 아직 모든 집착에 초연하여 해탈의 경지에 들어선 것은 아니기에 언젠가 수명이 다하면 다시 윤회하게 된다.[10] 이 세계에선 번뇌를 거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도보다 해탈에 도달하기 조금 어려운 편이나 일단 한 번 해탈하기로 마음 먹는다면 인간도보다 훨씬 해탈하기 쉬운 편이다. 이 천상도는 중국에 전래되면서 힌두, 브라만은 물론 중국의 도교까지 일부 흡수해 여러 하늘과 층계로 나뉜다. 각 하늘을 구성하는 작은 하늘과 천상계, 그리고 그곳을 다스리는 신 등, 그 한 가지에 여러 명칭이 붙어 복잡한 데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신선과 같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 중 일부는 명예욕으로 인간도에 내려와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천도에서 도피안으로 가는 문 앞에 아미타불이 중생을 극락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사후에는 살아생전 자신이 종파마다 다른 방식으로 분류되는 덕(德)에 따라 사후에 가는 곳이 달라진다.'는 당시 인도 종교계에서 널리 퍼진 이론이라서 불교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많고 많은 세계 중에서 사람이 태어나는 곳이 저 여섯 개인 이유는, 불교에서 사람이 고통받는 원인이자 해탈을 방해하는 삼독(三毒)인 탐욕(貪), 성냄(瞋), 어리석음(癡) 및 총체적인 고통과 즐거움을 상징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탐욕을 버리지 못한 자는 아귀처럼 살아가고, 자애를 지니지 않고 분노로 살았던 사람은 수라도로 떨어지며, 참된 지혜를 지니지 못한 자는 짐승처럼 우둔하게 살아간다는 뜻이다. 지옥은 저 모든 고통을 겪는 말 그대로 고통 종합 세트이고, 천상도는 해탈보다야 못하지만 그래도 선하게 살아가면 갈 수 있는 복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참고로 현세의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도는 나머지 5곳의 속성을 전부 지닌다.
천신들의 성생활의외로 천상도에 환생하기가 쉽다.

천상도는 2개의 지거천(地居天)[11]과 4개의 공거천(空居天)[12], 총 6개의 하늘로 나뉜다.[13]
  • 지거천(地居天)
    • 사왕천(四王天): 육욕천(六慾天) 중에서 첫번째 하늘에 해당되는 곳으로, 수미산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남북 사방에 각각 지국천, 광목천, 증장천, 다문천(혹은 대비다문천)이라는 4개의 하늘이 있으며, 각각의 하늘은 사천왕이 다스린다. 이곳 사왕천의 하루는 인간세계를 기준으로 50년이며, 수명은 900만년이다. 사천왕천이라고도 한다.
    • 도리천(忉利天)[14]:육욕천 중 두번째 하늘로, 도리천의 "도리"는 샨스크리트어 trāyastriṃśa의 음사로 33이라는 뜻이며, 천(天)은 곧 신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 되기에, 이곳 도리천은 33명의 신들이 사는 하늘이라는 의미가 된다. 중앙에는 이곳 도리천을 다스리고, 사방 32성의 신들을 지배하는 제석천이 기거하며, 사방의 봉우리에 각각 8신들이 기거하기에 총 33천이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곳 도리천은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하는 수미산의 꼭대기에 있으며, 모양은 사각형을 이루고 네 모서리에는 각각 봉우리가 있으며, 중앙에는 선견성(善見城)이 있는데, 이 선견성은 제석천이 거하는 궁전이라고 한다. 이곳 도리천에 있는 33천들은 한 달 중 6재일(8, 14, 15, 23, 29, 30일)마다 성 밖에 있는 선법당에 모여 법(法)에 맞고, 법 답지 않은 일을 평론하는데, 이때 지상에 있는 중생들의 선행과 악행을 다루게 된다 하여, 신라시대 이후 불교 신도들은 6재일에 계율을 청정하게 하고 1일1식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이곳의 신들은 남녀의 구별이 있고, 음욕을 끊지 못한 상태이지만 음욕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으며, 번뇌 또한 인간들처럼 복잡하고 심각하지 않다고 한다. 이곳에 태어나는 아기들은 인간의 6세가 된 아이와 같으며, 저절로 의복이 입혀지게 된다고 한다. 이곳 도리천의 하루는 인간세계를 기준으로 100년이나 되고, 수명은 3000만년에 이른다. 무당이 거행하는 천도재도 이곳에 왕생하길 기원하는 의미로써 한다. 또 도교에선 세상의 주재자 옥황상제가 있는 곳이라고 여겨진다.
  • 공거천(空居天)
    • 야마천(夜摩天) = 시분천: 육욕천 중 세번째 하늘로, 야마천의 "야마"는 샨스크리트어 야마를 음역하는 것으로,[15] 형용사로 쓰면은 쌍을 뜻하기에, 쌍왕을 뜻하는데, 리그베다에서 야마는 최초의 인간이자 최초로 죽은 죽음의 세계인 명계를 다스리는 우두머리에 해당된다. 불교에서 쌍왕은 이름처럼 이곳 욕계의 제 3천인 야마천에도 거주하고, 명계의 세계인 지옥에도 머문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밤낮의 구분이 없고 시간에 따라 여러 가지의 환락을 누리는 곳으로, 이 때문에 시분천이라고 한다. 또 이곳에서  은 연꽃의 꽃잎이 열리고 다치는 것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염라대왕은 이 하늘이 바뀌어 달라진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 있는 신들의 음욕은 그저 포옹하는 정도로 만족하며, 공간상에 겹겹히 쌓인 것으로 묘사가 된다고 한다. 이곳 야마천의 하루는 인간세계를 기준으로 200년이며, 수명은 1억3천4백만년이다.
    • 도솔천(兜率天): 육욕천 중 네번째 하늘로, 미륵보살이 머무는 내원과 천인들이 즐거움을 누리는 외원으로 구성된 천상의 정토를 가리키는 이상세계로, 달리 지족천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천인들은 오욕(五慾)을 만족하고 있으며, 제 3천인 야마천으로부터 16만 유순 위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위에 서술한 내원은 미륵보살의 정토로써 달리 내원궁이라고 부르는데, 이곳 내원궁은 석가모니 부처가 인도에 태어나기 직전까지 머무르면서 중생교화를 위한 하생의 때를 기다린 곳이라고도 한다. 그러면서, 미래불인 미륵은 현재 이 내원궁에서 설법하면서 남섬부주에 하생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곳 도솔천의 하루는 인간세계를 기준으로 400년이고 수명은 5억7천6백만년이다.
    • 낙변화천(樂變化天): 육욕천의 다섯번째 하늘로, 달리 화락천이라 부른다. 이곳에사는 천인들은 모든 대상을 마음대로 변하게 함으로써 즐기고 있는데, 이는 이곳 낙변화천에 거하는 신들은 바라는 대상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즐긴다는 것을 뜻한다. 이곳 낙변화천의 하루는 인간세계를 기준으로 800년이나 되고 수명은 23억4백만년이다.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육욕천의 여섯번째 하늘이자 마지막 하늘로, 이곳 타화자재천의 신들은 바라는 대상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즐기는 것은 물론, 다른 신들이 만들어낸 대상도 자유롭게 즐기는데, 이는 타인의 즐거움을 자유로이 자신의 즐거움으로 만들어 즐긴다는 것을 뜻한다. 그와 동시에 일반적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사마 중 한명인 천마가 거주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 타화자재천의 하루는 인간세계를 기준으로 1600년이나 된다고 하며, 수명은 92억1천6백만년이다.
  • 번외:마천(마라파순천): 장아함경 제 18 권, 제 20 권 혹은 기세경 제 1 권과 같은 몇몇 불교경전에서 언급된다고 하는, 타화자재천 바로 위에 있는 천마가 거주하는 욕계의 일곱번째 하늘이자 마지막 하늘[16]으로, 욕계의 마지막 하늘인 타화자재천과 색계의 제 1 천인 범중천[17]사이에 있다고 한다.[18] 이 하늘에 있는 천인들의 평균 신장은 32유순, 옷의 길이는 64유순이며, 무게는 64분의 1량이라고 한다. 평균 수명은 32000세이며, 이 하늘의 하루는 우리 인간세계를 기준으로 3200년이다. 수명은 대략 373억 7600만년에 달한다.

4. 색계[편집]

욕계 위에 있는 18개[19]의 천들을 가리키는데, 초선천, 이선천, 삼선천, 사선천, 정범천등으로 나뉜다고 한다. 욕계와 무색계의 중간에 위치한 세계로, 욕계에서의 음욕과 식욕과 같은 욕망을 벗어났으나, 아직 완전히 물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세계를 가리키며, 욕계에 있던 음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세계이기에, 더럽고 거친 색법에는 집착하지 않고 미세한 색법만이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물질적은 것은 있어도 감관의 욕망을 떠난 청장한 세계이며, 이곳 색계에서부터는 남녀구별이 없어진다고 한다. 전종식의 대승기신론을 통해본 능엄경에 적힌 바에 따르면은 부모에 의지하지 않고 영혼(아뢰야식)이 단독으로 태어나는 화생의 세계이며,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신통력을 가지며, 도보로 걸을 수도 있고, 이곳에 태어난 중생들은 피부와 골수, 그리고 근맥과 혈육이 없는 몸을 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어떠한 일을 해도 피곤함이 없는 것은 물론, 대소변이 없을 정도로 부정함도 없고, 눈도 깜빡이지 않는 것은 물론, 몸의 빛깔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나타낼 수가 있다고 한다. 달리 말하자면,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이자 현상계라고 볼 수가 있다고 한다.[20]
  • 초선천(初禪天)
    범중천(梵衆天) · 범보천(梵輔天) · 대범천(大梵天).
  • 이선천(二禪天)
    소광천(少光天) · 무량광천(無量光天) · 광음천(光音天). [21]
  • 삼선천(三禪天)
    소정천(少淨天) · 무량정천(無量淨天) · 변정천(徧淨天). [22]
  • 사선천(四禪天)
    무운천(無雲天) · 복생천(福生天) · 광과천(廣果天).
  • 정범천(淨梵天)
    무번천(無煩天) · 무열천(無熱天) · 선현천(善現天) · 선견천(善見天) · 색구경천(色究竟天) · 화음천(和音天).

5. 무색계[편집]

색계 위에 있는 하늘로, 물질을 초월한 순수한 정신적 영역의 세계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이곳에 사는 중생들은 형상이 없다고 한다.[24]
  • 공무변천: 무색계의 첫 번째 하늘로, 이곳 중생들의 수명은 2만 대겁이라고 한다.
  • 식무변천: 무색계의 두 번째 하늘로 이곳 중생들의 수명은 4만 대겁이라고 한다.
  • 무소유천: 무색계의 세 번째 하늘로 이곳 중생들의 수명은 6만 대겁이라고 한다.
  • 비상비비상천: 무색계의 네 번째 하늘로 이곳 중생들의 수명은 8만 4천 대겁이라고 한다.
[1] 원판을 들고 있는 커다란 파란색 괴물(?)이 바로 염라대왕이다. 생긴 게 왜 저러냐면 티베트 불교 식으로 묘사됐기 때문이다.[2] 산스크리트어 원어 표현은 나라카(Naraka)이다.[3] 존속 살인 등으로도 갈 수 있는데 그 동기도 참작이 불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 이 경우 죄질이 불량하다면 무간지옥에 떨어지기도 한다. 언론에 자주 나오는 재산을 목적으로 존속 살인을 하는 경우 지옥도에 갈 수도 있고 식독아귀가 될 수도 있다.[4] 그나마 석가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축생이긴 하지만 부잣집에서 태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5] 목련존자 본인이 아니라 그 어머니. 석가가 죄를 싹 사해 주고도 아귀도, 뒤이어 축생도로 떨어져야 했을 만큼 죄질이 나빴다. 목련존자가 갖은 노력을 다한 끝에 천도로 보내었다고 한다.[6] 축생들도 급이 있다. 최하부터 보면 먼저 미물금수 그 다음은 십이지 그 다음에야 인간도로 환생되는 것이다. 막 인간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떨어질 때 도 순서 역시 같다.개팔자가 상팔자라고 함부로 주인물고 그러면 안된다.[7] 가령 사교를 믿어 천계에서 다시 태어나고자 산림이나 풀숲에 불을 지르거나 천신에 공양하는 의례를 치른 이들은 먼저 초열지옥의 소지옥인 일절인숙처에 떨어져 고통을 받은 뒤 아귀도에서 300생을 보내게 되며, 그 후 500생을 축생도에서 보내게 되는데 이때 물벌레로 태어나 자신의 새끼가 고기잡이 등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봐야 한다고 한다.[8] 그런데 애완동물은 불교학자들마다 설정이 다르다. 아직은 보수학파들 위주로 가는중[9]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무리의 신중(神衆)[10] 천상의 정치는 재상이 아주 없는 수라, 한명밖에 없는 인간계와 달리 10명 정도로 많으며, 종교 역시 아주 없는 수라, 세개 즉 삼교 밖에 없는 인간계와 달리 8개나 된다. 다수결로 처리되는 인간계의 의회와 달리 항상 만장일치로 해결된다. 천상세계에서는 막노동이나 인권탄압이 없다. 하지만 수행자 역시 적어 닦음으로써 화생할곳은 아닌듯 하다.[11] 수미산에 걸쳐있는 하늘[12] 수미산 위에 떠 있는 하늘[13] 달리 욕육천(慾六天)이라고 부른다.[14] 한국 신화에서 도리천은 옥황상제가 산다고도 여겨진다[15] 위키백과에 따르면 야마의 불교 동등신은 염라대왕이다.[16] 이 마라파순천의 존재로 인해 간혹 육욕천이 아닌 칠욕천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고 한다. 타화자재천이 곧 마천으로 여겨지기도 한다.[17] 색계의 첫번째 하늘이자 초선천의 첫번째 하늘로, 대범천왕이 다스리는 중생들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 범중천이 사는 천인들의 키는 반유순이고, 목숨은 반겁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타화자재천과의 거리 차이는 256만유순이나 된다고 한다.[18] 욕계 억조창생들의 번뇌 욕망 쾌락이 저질이 아닌 최고품으로 장엄되는 곳이다. 이곳 중생들은 음욕이 생기면 타인을 보기만 하여도 음욕이 해소된다고 한다. 그래서 옷차림을 최대한 음란하게 입고 다닌다.[19] 경마다 다른데, 17~22천 사이에서 묘사된다. 그래도 18천이라고 하는 경우가 가장 대중적이다.[20] 여기 사람들은 모두 다 오신통을 쓸 수 있다.[21] 묶어서 삼광천이라고도 부른다.[22] 묶어서 삼정천이라고도 부른다.[23] 위에 정리해놓은 것이 공식적으로 딱 정해진 것인 것은 아니며, 불경이나 교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에 유의 바란다.[24] 불교 교리에 의하면 부처님되는것이 어렵지, 무색계에 도달하는것은 어렵지 않다.

육도윤회

최근 수정 시각: 2025-06-09 20:29:18
 
 
 
 
 
  대한민국의 섬에 대한 내용은 육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세인트 세이야의 기술에 대한 내용은 육도윤회(세인트 세이야) 문서를, 중국의 병법서에 대한 내용은 육도삼략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선도(善道)
천상도(天上道)
수라도(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악도(惡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
지옥도(地獄道)
1. 개요2. 불교의 윤회 개념3. 육도(욕계)
3.1. 지옥도(地獄道)3.2. 아귀도(餓鬼道)3.3. 축생도(畜生道)3.4. 인간도(人間道)3.5. 수라도(修羅道)3.6. 천상도(天上道)
4. 색계5. 무색계

1. 개요[편집]


[1]

티베트 불교의 육도윤회도. 가운데에 그려진 새, 뱀, 돼지는 각각 육도윤회의 원인인 탐(貪: 욕심), 진(瞋: 성냄), 치(癡: 어리석음)를 상징한다.

육도윤회()는 중생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고 나면 생전의 행보에 따라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인간도, 수라도, 천상도로 나뉘는 육도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믿음을 뜻한다.

2. 불교의 윤회 개념[편집]


우선 육도 윤회를 알아보기 전에 불교의 기본적인 개념을 알 필요가 있다.

윤회라는 것은 차례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수레 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는 것과 같이 중생이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의 생사 세계를 그치지 않고 돌고 도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삼계 육도라 함은 삼계(욕계ㆍ색계ㆍ무색계)와 육도(지옥도ㆍ아귀도ㆍ축생도ㆍ인간도ㆍ수라도ㆍ천상도)로 이 세계를 설명하는 틀이다. 이 세상은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눌 수 있고 이 중 우리가 있는 계는 바로 욕계이다. 또한 6가지의 삶의 길(六道)이 있다. 원인과 결과에 의해서 삼계 육도에 빠져있는데, 세계의 이치를 깨우치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번뇌가 없는 진정한 평안을 얻는 다른 차원(도피안)으로 갈 수 있다. 이를 해탈이라고 한다. 이 지고지순한 경지를 얻지 못한 자는 죽은 뒤 자기 업에 따라 삼계 육도의 한 곳에서 다시 환생한다.

이렇게 윤회하는 이유를 불교에서는 불법을 깨우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각 도는 불법을 깨우치기 위한 길 혹은 방법으로 존재하고 지옥도 < 아귀도 < 축생도 < 수라도 < 천도 < 인간도 순으로 불법을 깨우치기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왜 천도가 인간도의 밑에 존재하냐면 천도는 사실 가장 불법에 가까이 있는 천상 세계이고, 인간도에서 정말 덕업을 많이 쌓은 사람들이 태어나는 곳이지만 그만큼 번뇌에 고민하지 않게 되어 진정한 해탈을 얻기 오히려 어렵다는 것이다. 온실 속의 화초 인간도야말로 불법을 깨우치기 좋은 환경이라는 것이다. 온갖 번민에 고민하면서 치열하게 집착을 버리려는 노력과 덕업을 쌓을 기회가 많은 인간도가 부처가 되기 위한 가장 좋은 기회이니 이때는 놓치면 또 몇 을 윤회해야 한다.

불교에서 이 세계는 곧 5감 또는 6감이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마음이 만들어낸 세상으로 일반적인 인식 너머의 또는 인식이 되지 않는 세계도 있다. 지옥은 사후 세계라는 동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현실 공간에 다른 차원으로 존재한다고 얘기한다. 마치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듯이 주파수를 맞추면 한 곳에서 다른 채널을 들을 수 있듯이. 영화 콘스탄틴에서도 이런 개념을 보여준다.# 혹자는 다른 차원이 아니라 세계관의 문제라고도 주장한다. 즉 똑같은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지옥도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천도로 보인다는 것. 가령 날때부터 풍족한 집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 유순한 성정을 얻은 부자에게 이 세상은 천상도, 전투적 투쟁과 경쟁의 고통을 감수하며 그 자체를 즐기는 용자에게 이 세상은 수라도, 이도저도 아닌 대다수의 범부와 짐승들에게 이 세상은 인간도와 축생도, 굶주림과 병마를 비롯한 온갖 고통에 시달리는 빈자에게 이 세상은 아귀도 혹은 지옥도일 것이다. 즉, 육도윤회 역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사실 여기서 천상도부터 지옥도까지의 6도가 인간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다. 상술했듯 왕의 자식이나 대부호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아이와 거지나 내전으로 고통받는 지옥 같은 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느끼는 현실은 각각 천도와 지옥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번뇌에 구애받지 않는 구도자와 탐욕과 질시로 마음이 지옥과 같은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 다른 현실에 살고 있음은 명백하다.

《법화경(法華經)》에서도 '육도가 어떠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명 상태에 따라 변화되는 것이며, 범부(凡夫)가 끊임없이 욕망에 지배당하여 좌우되는 것을 육도 윤회라고 한다.'고 설명한다.

원래 오도였으나 수라도가 도입되면서 육도가 되었다고 한다.

3. 육도(욕계)[편집]

도道자가 붙기 때문에 큰 복덕과 큰 죄악이 아니면 계속 인간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수 있다. 어디서는 수행을 안하면 축생도나 아귀도로 떨어진다고 겁을 주는데, 그런 방식은 더 많은 번뇌와 고통을 줄뿐 진정한 포교가 아니다. 불교에서는 외계인의 존재도 인정하기에 더욱 기회가 많다. 그러니까 불신지옥 등으로 겁박을 통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유도하는게 아닌, 더 많은 기회가 있음으로 유도하는게 맞다. 불교는 기회가 정말 많다. 어떤 방법을 해도 부처님이 될수 있으니, 사이비를 행하는일만 없으면 된다.
나락(奈落)[2]이라고도 부른다. 아귀도와 축생도로 가는 사람들보다 더욱 심각한 악인들이 태어나는 곳이다. 연쇄살인범 정도가 아니고서야 가기 힘든 곳이라 봐도 된다.[3] 생전의 악업에 따라 108 지옥에서 고통받는다. 여기서 108 지옥은 현실 세계의 악행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흔히 지옥을 죽은 영혼의 상태에서 고통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당연히 영혼 상태에서는 고통을 받을 수 없다.

다시 태어나서 108가지 고통을 받으면서 업을 씻는다. 과거 불교가 한반도에 자리잡으며 일반에 토속 신앙의 사후관과 기독교의 천당과 지옥의 개념이 혼합되어 영계에서 영혼이 고통받는 곳이란 이미지가 굳어졌다. 불경에서는 분명히 육도를 다시 태어나는 곳이라고 했고, 지옥도도 마찬가지다.

지옥도에서 악업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면 아귀도나 축생도로 환생하여 남은 죄를 마저 씻어야 한다. 후술할 내용이지만 목련존자의 어머니는 지옥도에서 악업을 청산하지 못해 침구아귀를 겪은 후 부잣집 개[4]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지옥에서 다시 태어난 다음, 죽을 정도로 끔찍한 고문을 당하지만, 결코 죽지 못하고 다시 멀쩡하게 재생되어 몇 번이고 똑같은 죽음의 고통을 당하면서 생전의 악업을 갚는다. 참고로 지옥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지옥은 무간지옥으로 죄질이 가장 나쁜 자는 재판 없이 바로 여기로 떨어지며, 살생과 탐욕으로 악업을 너무 쌓아 재판조차 안 해도 될 악인으로 판정받았던 목련존자의 모친처럼[5] 온 몸에 못 49개를 박고 몸 안이 불타 입으로 불을 뿜어내는 혹독한 고문을 받는다. 지옥도의 구조는 신과함께로 알려진 중생이 심판받는 시왕지옥(十王地獄)과 답이 없는 악인들이 떨어지는 팔열팔한지옥(八熱八寒地獄)으로 나뉜다. 자세한 사항은 지옥(불교) 참조.

3.2. 아귀도(餓鬼道)[편집]

욕심이 많고 동정심은 없었던, 그 중에서도 악질인 자가 태어나는 곳으로, 지옥보다 덜하고 축생보다 더하다. 보통 사람이 가기는 역시 힘들고, 사람을 여럿 죽이거나 연쇄 아동 성범죄자급 정도가 여기서 태어난다. 공덕은 없고 악행만 일삼은 자들이나(지옥까지는 안 갈 정도로 악업이 쌓인 경우) 지옥도에 떨어질 정도로 악행이 심했으나 그나마 공덕도 있어서 지옥은 겨우 면한 경우 이곳에 간다. 지옥과의 차이점은 지옥은 '형벌'의 의미로써 일부러 고통을 주지만, 아귀는 신체 구조 자체가 고통스럽다. 배는 태산만 해서 언제나 굶주리고 목마르지만, 목구멍은 바늘만해 음식을 거의 먹을 수 없어 평생 목마름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식이다. 아귀도에 태어난 사람은 먹으려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항상 매 맞는다고 한다. 이렇게 먹지도 못하면서 먹을 것을 가지고 서로 싸운다. 여기서 '아귀다툼'이라는 말이 생겼다.

지옥에서 형벌을 마친 사람 중에서 지옥에서의 형벌로도 모자란 이들은 생을 거듭하면서 계속 형벌을 받는데 가장 먼저 윤회하게 되는 곳도 아귀도다. 문제는 이걸 수백번 정도 반복한다는 것이다. 수명이 인간보다 훨씬 길며, 거기에 윤회를 수백번 반복하고 자살하면 더 아래인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즉 아귀도에서 한번 태어나고 죽는게 아니라 수백번이나 태어나고 죽음으로서 형벌을 받는 것. 따라서 많은 공덕을 베풀 배포가 없는 범부들은 평정심을 유지하여 최대한 인간도에서 더불어 살아야 할 것이다.

3.3. 축생도(畜生道)[편집]

동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6] 사람은 적고 동물은 많기에 대부분 인생 → 축생 수만 번 → 인생을 반복한다. 동물로 태어나 인연을 만나 덕을 쌓다 보면 언젠가 사람으로 태어나 불법을 깨우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민간에서는 흔히 동물을 학대한 사람이 동물로 환생해 자신이 생전에 동물들에게 한 학대를 그대로 돌려받는다고 동물, 곤충을 괴롭히는 아이에게 어른들이 혼낼 때 많이 얘기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고 축생도가 아닌 지옥으로 바로 갈 수도 있다. 동물로 태어나서 불법을 닦기 묘연한 이 험한 길(道)을 가야 할 정도의 업을 쌓은 자들이 동물로 다시 태어난다. 반대로 지옥에서의 형벌로 모자란 이들이 아귀도를 거쳐서 다음으로 축생도에 태어나게 되는데 이를 수백번 반복하게 되며, 일부는 축생도에서 태어나는 것도 모자라 고통 속에서 살게 된다.[7]

인간이 축생도로 환생하는 경우는 생전에 저지른 죄악이 아귀도로 갈 정도는 아니지만 인간도로 환생하기에는 죄악이 많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아귀도까지 갈 정도로 죄악이 많은데 공덕이 있어서 아귀도를 면한 경우도 축생도로 환생한다. 인간이 죽어서 후생에 아귀도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축생도부터는 꽤 많아진다. 숫자상으로 사람은 적고 동물이 많기 때문이다. 별다른 공덕도 없고 죄악이 많으며 욕심이 많은 인생을 살아 인간도로 환생할 가치가 없으면 축생도로 환생한다. 전생에 쌓은 악업의 정도에 따라서 정말 환경이 좋지 않은 생태계로 갈 수도 있고 그나마 나은 생을 살 수도 있다. 친근한 주인의 애완동물로 태어나면 그나마 복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죄가 그리 심하지 않으나 딱히 인간계로 보낼만한 이유도 없을 때 축생도, 특히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애완동물[8] 태어나게되며 어느정도는 주인과 연이 닿아있다고 한다. 일부는 인간계에서 큰 상처를 받아 인간계에서 태어나기를 거부하고 축생도에서만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때 대부분 죄가 없기 때문에 공덕깊은 인간에게 발견되어 키워지거나 스스로 큰 고난 없이 축생도의 삶을 마감한다고 한다.

3.4. 인간도(人間道)[편집]

우리가 사는 현세. 생로병사에 시달리며 번뇌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다른 길보다 훨씬 불법을 닦아 해탈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길도 역시 부처가 될 수 없는건 아니다. 좋은 예시로 서유기에서 손오공은 경전을 가져오는데 큰 도움을 주어 '투전승'이라는 직책을 얻었다. 즉 서유기 엔딩 시점에서는 손오공도 엄연히 부처다. 후술하겠지만, 손오공 제천대성과 그 측근 요괴왕들인 칠대성은 인간도보다는 수라도에 가까운 존재들이다.

지옥도-아귀도-축생도를 거쳐 인간도에 태어나게 되거나 아니면 그나마 선업을 쌓아놓은게 있어서 지옥도를 면하고 인간도에 태어나게 된 이들은 인간도에서 불운한 일생을 보내게 되는 것으로 벌을 받는다.

인간이 후생에서도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려면 공덕이 있어야 한다. 공덕을 화끈하게 향상 시키는법은 뭐니뭐니해도 절에가서 스님 수행을 돕고자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여름의 시원한 음료공양부터, 겨울의 따듯한 난로공양 장작공양, 스님이 바깥출입을 하시면 스님을 향해 허리굽혀 공손히 인사하기 스님들께 꽂공양 올리기 등을 많이 하면, 아뿔사 사후 인간계로 직행하는 것이다. 그것도 좋은 집안에서 말이다. 노력을 더 많이 하면 천상도로 갈수도 있다.

3.5. 수라도(修羅道)[편집]

오로지 투쟁만이 존재하는 세계로 흔히 무법천지로 묘사된다. 일부 전승에서는 수많은 왕국으로 분열되어 있고, 뚜렷한 제도나 종교 체계가 없으며, 귀천을 막론하고 전투에 몰입하느라 모두 노숙 생활을 한다는 묘사가 있다. 이곳의 존재들은 지혜는 있으나 분노와 시기심이 강해 끊임없이 싸움을 벌이며 살아간다. 아수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처럼 오선(五善)과 십계(十戒)의 선업을 쌓아야 한다고 전해지며, 그만큼 지혜와 재주가 뛰어나고 복이 있는 존재로 간주된다. 다만 그 번뇌가 강해 천상에는 들지 못하고, 투쟁심과 오만으로 가득한 상태에 머무른다. 자연 환경은 아름답고, 외모도 뛰어나다는 묘사가 있지만, 정법(正法)을 멀리하고 해탈의 가능성도 낮다.

아수라(阿修羅)는 본래 인도 신화에서 신(데바)과 대립하는 전투적인 반신적 존재들로, 불교에서는 육도윤회의 한 세계인 수라도(修羅道)에 거주하는 중생을 의미한다. 이들은 지혜와 복덕이 있어 인간보다 높은 존재로 간주되나, 강한 분노(瞋), 시기심, 교만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투쟁하며 살아간다. 선업을 쌓아 수라계에 태어나지만, 집착과 분노로 인해 천상에는 들지 못하고 해탈과도 거리가 먼 세계에서 윤회한다. 아수라는 신적 힘과 아름다움을 지녔음에도 정법(正法)을 멀리하며, 제석천과의 끊임없는 전쟁으로 '아수라장'이라는 말의 어원이 되었다. 이는 비록 인간이 아수라보다 비천하고 나약하나, 오히려 그렇기에 깨달음에는 더 가까울 수도 있다는 역설적 교훈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힌두교의 신격은 일반적으로 그리스 신화의 신들과 마찬가지로 선악의 양면성을 지니며, 인간적인 성격적 결함도 함께 표현된다. 불교가 인도에서 전파되던 초기에, 기존 브라만교와 힌두교의 신격 체계를 이해하던 대중에게 접근하기 위해, 불교는 일부 신화적 요소들을 교리적으로 재해석하였다. 이 과정에서 힌두교의 데바 신족이 거주하는 세계가 후술할 '천상도'가 되었으며, 그들에 대적하는 투쟁신들인 아수라 신족은 단순한 악신이 아니라 선과 악이 혼재하며 지혜도 갖춘 존재로 묘사되었다. 고로 자연스럽게 아수라들이 위치한 수라도는 인간도보다 높은 세계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초기 경전에서는 아수라왕이 제석천에게 도전하는 존재로 주로 등장하지만, 일부 대승불교 설화에서는 부처의 설법에 반발하여 싸움을 걸었다가 결국 감화되어 불법을 수호하는 수문장이 되었다는 서사도 나타난다. 이는 아수라를 단순한 악의 화신이 아닌, 교화 가능성이 있는 중생으로 보는 불교적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다.

즉, 수라도는 불교가 인도에서 전파되던 과정에서 기존 브라만교와 힌두교의 신격 체계와 세계관을 흡수하고 재해석하며 형성된 개념이다. 이 세계의 중심 존재인 아수라왕은 본래 힌두교의 아수라(asura)와 동일한 어원을 지닌 존재로, 불교에서도 역시 전투적이고 강한 힘을 가진 신적 존재로 묘사된다. 상기한 수라도의 중생들인 '아수라(阿修羅)' 역시 'asura'의 음역이며, '수라'는 그 약칭이다. 불교에서 아수라왕은 악신으로 단정되지 않고, 선과 악의 양면성을 지닌 중생으로 해석되며, 팔부중[9] 가운데 하나로 포함되어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는 불교가 힌두교의 다양한 신격을 포용하되, 그 성격과 역할을 '업(業)에 따른 윤회와 교화의 가능성'이라는 불교적 틀로 재해석했음을 보여준다.

힌두교 신화에서 아수라왕은 본래 정의와 힘을 상징하는 존재였으나, 천계의 지배자이자 데바 신족의 우두머리인 인드라, 불교에서는 제석천이라 불리는 동격의 존재와의 전쟁에서 패배해 지위에서 밀려났다고 전해진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신화를 전승 요소로 받아들이면서도, 아수라왕과 아수라들을 끊임없이 천계에 도전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불법에 귀의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해석한다. '아수라장'이라는 표현은 수라계의 존재들 간의 끊임없는 투쟁, 혹은 아수라왕 제석천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유래한 말로, 극심한 혼란과 다툼의 상황을 상징한다. 불교에서는 명예를 알고 공덕이 많지만 호전적이거나 시기심과 교만이 강한 중생이 이러한 성향의 업(業)에 따라 수라계에 윤회한다고 보며, 일부 설화에서는 탁월한 전투력이나 명예를 얻은 전쟁 영웅도 그 내면의 분노와 집착으로 인해 수라도에서 아수라로 다시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고 전한다.

이렇게 독특한 위상을 지니다보니 불교에서 수라도의 위상은 종파와 지역 전통, 경전 해석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으로는 육도윤회의 하나로서, 천상도 아래, 인간도보다 높은 계위의 세계로 해석되며, 이는 주로 부파불교 대승불교의 경전 전통에서 확립된 구조이다. 그러나 일부 포교적 또는 민속적 설명에서는 수라계를 '삼악도(三惡道: 지옥, 아귀, 수라)'의 하나로 묶어, 마치 축생도와 지옥도와 비슷한 급의 저계층인 것처럼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교리적 위계라기보다 도덕적 경고나 교훈적 맥락에서 사용하는 것에 가깝다. 이는 한국 불교도들 사이에서 수라도를 인간도보다 낮은 세계로 오해하는 경향이 비교적 널리 퍼진 탓이기도 하다. 이러한 해석은 교리적으로 엄밀한 분류라기보다는, 무력과 투쟁을 부정적으로 보는 한국적 민족성과 도덕적 가치관에서 비롯된 측면이 많다. 한국 불교는 전통적으로 충돌보다는 조화, 무력보다는 인내를 중시해온 유교적 문화와 융합되었기에, 호전적인 수라의 속성을 업이 무거운 부정적 세계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화된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불교에서 수라도는 원래의 위계보다는 포교와 교화의 맥락 속에서 '경계해야 할 성향'의 상징적 공간으로 이해되게 되었다.

반면, 많은 외국 불교권, 특히 일본이나 중국처럼 상무문화가 발달한 문화권에서는 수라계에 환생하는 것을 전적으로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기도 하며, 일부 종파에서는 비범한 자들만이 갈 수 있는 세계로서 경외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티베트 불교나 일본의 일부 대승불교, 밀교 전통에서는 수라계 존재들이 강한 의지와 힘, 정의감을 지닌 존재로 해석되며, 그 성향이 수행에 따라 교화되어 보살의 길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세계로 이해된다. 이러한 해석은 수라의 전투적 에너지를 불법 수호나 정법 실천의 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으며, 수라적 의지와 무예를 갈고닦는 과정이 번뇌를 씻는 수행이자 고행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 역사적으로도 수라계가 단순히 부정적인 세계로만 인식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불교가 융성하던 고대 인도나 중국 등지에서 전쟁이 빈번하여 영웅호걸들이 많이 등장했던 시기에는 수라적 성향인 강한 의지, 전투적 기개, 불의에 대한 분노가 정법을 수호하고 악을 물리치는 보살적 역량의 한 표현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예컨대 불법을 지키는 팔부중 가운데 아수라가 포함된 점, 그리고 아수라왕이 부처의 가르침에 감화되어 귀의했다는 설화 등이 수라의 기질이 교화와 수행을 통해 전환될 수 있다는 긍정적 인식을 반영한다. 서유기에서 수라적 존재에 속한 손오공이 투전승불에 이르는 것 역시 이러한 배경으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수라계 환생이 반드시 악업의 결과만은 아니며, 복과 힘을 겸비했으되 번뇌가 남은 상태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불교의 수라도는 사람이 죽은 뒤 끊임없이 싸움을 반복하게 되는 세계라는 점에서 북유럽 신화의 전사들의 사후 세계인 발할라와 일정한 유사성이 있다. 그러나 두 세계는 '싸움'이라는 행위에 부여된 가치와 상징성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수라도는 분노와 번뇌의 업보로 인해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의 윤회 상태로 묘사되며, 이는 지옥처럼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세계는 아니지만 깨달음과 해탈에서 멀어진 상태로 인식된다. 반면, 발할라는 명예롭게 전사한 전사들이 오딘의 전당에서 사후에도 전투와 향연을 즐기는 장소로, 영광과 긍지의 사후 천국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차이는 무력과 전쟁에 대한 가치 판단이 문화마다 다르게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북유럽에서는 전사가 죽은 뒤에도 싸움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이상적인 영생이었고, 반대로 아시아의 불교에서는 그러한 투쟁심이 미혹과 윤회의 원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한 묘사되는 삶의 질 면에서도 두 세계는 대조적이다. 수라도에서는 고통스러운 투쟁만이 반복될 뿐, 생활 조건이나 환경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부족하며, 일부 전승에서는 노숙 상태로 살아간다고도 전해진다. 반면 발할라는 황금 방패로 지붕이 덮인 전당, 끝없이 제공되는 식사와 음료, 전투 후 회복되는 육체 등의 설정으로 풍요로운 이상향으로 묘사된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수라 외의 존재들이 수라도를 보았을 때 고통이 반복된다는 것이며, 당사자들인 아수라들의 입장에서 이 세계가 고통이 가득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수라들에게 수라도는 정말로 발할라와 상당히 유사한 낙원에 가깝다는 것 역시 감안할 필요가 있다. 수라계의 중생들은 단순히 고통만 겪는 존재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불교 경전과 설화에 따르면, 이들은 타고난 전투광 신족으로서 강한 육체와 지혜를 지니고 있으며, 싸움에서 이기거나 명예를 얻는 데서 일종의 쾌감을 느낀다. 전쟁과 경쟁, 우열 다툼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자체를 괴로움으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지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즐기는 측면도 있다. 노숙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 역시 형벌의 개념이 아니라, 이들이 의식주를 잊을 정도로 싸움에 몰입하기 때문이라는 맥락이 강하다. 이러한 상태는 '쾌락적 고통'이라 할 수 있으며, 미혹의 감정에 기반한 즐거움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수라계가 결코 단순히 악업의 대가를 치루는 장소가 아니라, '인간보다 고차원적인 존재들'의 쾌락과 번뇌가 뒤섞인 복합적인 윤회의 세계임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수라도는 흔히 복은 많으나 마음이 고요하지 못한 중생의 세계로 간주된다.

흥미롭게도, 북유럽 신화의 신족 명칭인 'Æsir(애시르)'가 산스크리트어 'Asura(아수라)'와 어원이 유사하다는 학설이 있으며, 이는 선사시대 공통 신화 요소가 유라시아 대륙 전반에 퍼져 있었다는 가설, 즉 원시 인도유럽 신화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사례로 언급되기도 한다. 이 가설이 맞다면 인도 신화와 북유럽 신화는 본래 같은 기원에서 시작해서 지역지리와 문화가 분화되며 그 신관이 함께 바뀐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의 윤회론에 따르면, 중생은 생전에 지은 선업과 악업의 복합적인 결과에 따라 육도의 어느 한 세계에 환생하게 된다. 수라도는 상당한 공덕을 지니고 있으나, 동시에 강한 분노, 시기심, 투쟁심 등의 번뇌를 극복하지 못한 경우에 해당하는 존재들이 태어나는 세계로 묘사된다. 예를 들어, 전쟁에 참여해 많은 공로를 세웠지만 동시에 수많은 인명을 해친 무장의 경우, 해당 중생은 선과 악의 복합적 업보로 인해 천상도에는 오르지 못하고, 수라도에 환생할 수 있다는 해석이 일부 설화나 논서에 전해진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 업의 동기, 고의성, 자비심의 유무 등을 모두 고려하여 판단되는 것이며, 단순히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이유로 '악업이 크다'고 단정하는 것은 불교 교리와 맞지 않는다. 또한, 수라계의 존재 수가 상대적으로 많다거나 적다거나 하는 기술은 경전마다 다르게 나타나며, 중생의 수 자체는 정확히 가늠되지 않는다. 게다가 상기했듯이 수라계는 지옥, 아귀, 축생보다 고통이 덜하며, 오히려 전투에서 오는 쾌감과 영광으로 가득한 투쟁신들의 세계이되, 다만 끊임없는 경쟁과 투쟁으로 인해 해탈에 이르기 어려운 상태로 묘사된다.

3.6. 천상도(天上道)[편집]

마치 극락처럼 번뇌가 적고 평온한 세계이지만, 이 세계에 태어나는 사람은 물욕은 없으나 명예욕이나 지식욕들이 살아있는 경우가 있어, 아직 모든 집착에 초연하여 해탈의 경지에 들어선 것은 아니기에 언젠가 수명이 다하면 다시 윤회하게 된다.[10] 이 세계에선 번뇌를 거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도보다 해탈에 도달하기 조금 어려운 편이나 일단 한 번 해탈하기로 마음 먹는다면 인간도보다 훨씬 해탈하기 쉬운 편이다. 이 천상도는 중국에 전래되면서 힌두, 브라만은 물론 중국의 도교까지 일부 흡수해 여러 하늘과 층계로 나뉜다. 각 하늘을 구성하는 작은 하늘과 천상계, 그리고 그곳을 다스리는 신 등, 그 한 가지에 여러 명칭이 붙어 복잡한 데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신선과 같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 중 일부는 명예욕으로 인간도에 내려와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천도에서 도피안으로 가는 문 앞에 아미타불이 중생을 극락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사후에는 살아생전 자신이 종파마다 다른 방식으로 분류되는 덕(德)에 따라 사후에 가는 곳이 달라진다.'는 당시 인도 종교계에서 널리 퍼진 이론이라서 불교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많고 많은 세계 중에서 사람이 태어나는 곳이 저 여섯 개인 이유는, 불교에서 사람이 고통받는 원인이자 해탈을 방해하는 삼독(三毒)인 탐욕(貪), 성냄(瞋), 어리석음(癡) 및 총체적인 고통과 즐거움을 상징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탐욕을 버리지 못한 자는 아귀처럼 살아가고, 자애를 지니지 않고 분노로 살았던 사람은 수라도로 떨어지며, 참된 지혜를 지니지 못한 자는 짐승처럼 우둔하게 살아간다는 뜻이다. 지옥은 저 모든 고통을 겪는 말 그대로 고통 종합 세트이고, 천상도는 해탈보다야 못하지만 그래도 선하게 살아가면 갈 수 있는 복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참고로 현세의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도는 나머지 5곳의 속성을 전부 지닌다.
천신들의 성생활의외로 천상도에 환생하기가 쉽다.

천상도는 2개의 지거천(地居天)[11]과 4개의 공거천(空居天)[12], 총 6개의 하늘로 나뉜다.[13]
  • 지거천(地居天)
    • 사왕천(四王天): 육욕천(六慾天) 중에서 첫번째 하늘에 해당되는 곳으로, 수미산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남북 사방에 각각 지국천, 광목천, 증장천, 다문천(혹은 대비다문천)이라는 4개의 하늘이 있으며, 각각의 하늘은 사천왕이 다스린다. 이곳 사왕천의 하루는 인간세계를 기준으로 50년이며, 수명은 900만년이다. 사천왕천이라고도 한다.
    • 도리천(忉利天)[14]:육욕천 중 두번째 하늘로, 도리천의 "도리"는 샨스크리트어 trāyastriṃśa의 음사로 33이라는 뜻이며, 천(天)은 곧 신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 되기에, 이곳 도리천은 33명의 신들이 사는 하늘이라는 의미가 된다. 중앙에는 이곳 도리천을 다스리고, 사방 32성의 신들을 지배하는 제석천이 기거하며, 사방의 봉우리에 각각 8신들이 기거하기에 총 33천이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곳 도리천은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하는 수미산의 꼭대기에 있으며, 모양은 사각형을 이루고 네 모서리에는 각각 봉우리가 있으며, 중앙에는 선견성(善見城)이 있는데, 이 선견성은 제석천이 거하는 궁전이라고 한다. 이곳 도리천에 있는 33천들은 한 달 중 6재일(8, 14, 15, 23, 29, 30일)마다 성 밖에 있는 선법당에 모여 법(法)에 맞고, 법 답지 않은 일을 평론하는데, 이때 지상에 있는 중생들의 선행과 악행을 다루게 된다 하여, 신라시대 이후 불교 신도들은 6재일에 계율을 청정하게 하고 1일1식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이곳의 신들은 남녀의 구별이 있고, 음욕을 끊지 못한 상태이지만 음욕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으며, 번뇌 또한 인간들처럼 복잡하고 심각하지 않다고 한다. 이곳에 태어나는 아기들은 인간의 6세가 된 아이와 같으며, 저절로 의복이 입혀지게 된다고 한다. 이곳 도리천의 하루는 인간세계를 기준으로 100년이나 되고, 수명은 3000만년에 이른다. 무당이 거행하는 천도재도 이곳에 왕생하길 기원하는 의미로써 한다. 또 도교에선 세상의 주재자 옥황상제가 있는 곳이라고 여겨진다.
  • 공거천(空居天)
    • 야마천(夜摩天) = 시분천: 육욕천 중 세번째 하늘로, 야마천의 "야마"는 샨스크리트어 야마를 음역하는 것으로,[15] 형용사로 쓰면은 쌍을 뜻하기에, 쌍왕을 뜻하는데, 리그베다에서 야마는 최초의 인간이자 최초로 죽은 죽음의 세계인 명계를 다스리는 우두머리에 해당된다. 불교에서 쌍왕은 이름처럼 이곳 욕계의 제 3천인 야마천에도 거주하고, 명계의 세계인 지옥에도 머문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밤낮의 구분이 없고 시간에 따라 여러 가지의 환락을 누리는 곳으로, 이 때문에 시분천이라고 한다. 또 이곳에서  은 연꽃의 꽃잎이 열리고 다치는 것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염라대왕은 이 하늘이 바뀌어 달라진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 있는 신들의 음욕은 그저 포옹하는 정도로 만족하며, 공간상에 겹겹히 쌓인 것으로 묘사가 된다고 한다. 이곳 야마천의 하루는 인간세계를 기준으로 200년이며, 수명은 1억3천4백만년이다.
    • 도솔천(兜率天): 육욕천 중 네번째 하늘로, 미륵보살이 머무는 내원과 천인들이 즐거움을 누리는 외원으로 구성된 천상의 정토를 가리키는 이상세계로, 달리 지족천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천인들은 오욕(五慾)을 만족하고 있으며, 제 3천인 야마천으로부터 16만 유순 위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위에 서술한 내원은 미륵보살의 정토로써 달리 내원궁이라고 부르는데, 이곳 내원궁은 석가모니 부처가 인도에 태어나기 직전까지 머무르면서 중생교화를 위한 하생의 때를 기다린 곳이라고도 한다. 그러면서, 미래불인 미륵은 현재 이 내원궁에서 설법하면서 남섬부주에 하생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곳 도솔천의 하루는 인간세계를 기준으로 400년이고 수명은 5억7천6백만년이다.
    • 낙변화천(樂變化天): 육욕천의 다섯번째 하늘로, 달리 화락천이라 부른다. 이곳에사는 천인들은 모든 대상을 마음대로 변하게 함으로써 즐기고 있는데, 이는 이곳 낙변화천에 거하는 신들은 바라는 대상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즐긴다는 것을 뜻한다. 이곳 낙변화천의 하루는 인간세계를 기준으로 800년이나 되고 수명은 23억4백만년이다.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육욕천의 여섯번째 하늘이자 마지막 하늘로, 이곳 타화자재천의 신들은 바라는 대상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즐기는 것은 물론, 다른 신들이 만들어낸 대상도 자유롭게 즐기는데, 이는 타인의 즐거움을 자유로이 자신의 즐거움으로 만들어 즐긴다는 것을 뜻한다. 그와 동시에 일반적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사마 중 한명인 천마가 거주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 타화자재천의 하루는 인간세계를 기준으로 1600년이나 된다고 하며, 수명은 92억1천6백만년이다.
  • 번외:마천(마라파순천): 장아함경 제 18 권, 제 20 권 혹은 기세경 제 1 권과 같은 몇몇 불교경전에서 언급된다고 하는, 타화자재천 바로 위에 있는 천마가 거주하는 욕계의 일곱번째 하늘이자 마지막 하늘[16]으로, 욕계의 마지막 하늘인 타화자재천과 색계의 제 1 천인 범중천[17]사이에 있다고 한다.[18] 이 하늘에 있는 천인들의 평균 신장은 32유순, 옷의 길이는 64유순이며, 무게는 64분의 1량이라고 한다. 평균 수명은 32000세이며, 이 하늘의 하루는 우리 인간세계를 기준으로 3200년이다. 수명은 대략 373억 7600만년에 달한다.

4. 색계[편집]

욕계 위에 있는 18개[19]의 천들을 가리키는데, 초선천, 이선천, 삼선천, 사선천, 정범천등으로 나뉜다고 한다. 욕계와 무색계의 중간에 위치한 세계로, 욕계에서의 음욕과 식욕과 같은 욕망을 벗어났으나, 아직 완전히 물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세계를 가리키며, 욕계에 있던 음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세계이기에, 더럽고 거친 색법에는 집착하지 않고 미세한 색법만이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물질적은 것은 있어도 감관의 욕망을 떠난 청장한 세계이며, 이곳 색계에서부터는 남녀구별이 없어진다고 한다. 전종식의 대승기신론을 통해본 능엄경에 적힌 바에 따르면은 부모에 의지하지 않고 영혼(아뢰야식)이 단독으로 태어나는 화생의 세계이며,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신통력을 가지며, 도보로 걸을 수도 있고, 이곳에 태어난 중생들은 피부와 골수, 그리고 근맥과 혈육이 없는 몸을 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어떠한 일을 해도 피곤함이 없는 것은 물론, 대소변이 없을 정도로 부정함도 없고, 눈도 깜빡이지 않는 것은 물론, 몸의 빛깔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나타낼 수가 있다고 한다. 달리 말하자면,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이자 현상계라고 볼 수가 있다고 한다.[20]
  • 초선천(初禪天)
    범중천(梵衆天) · 범보천(梵輔天) · 대범천(大梵天).
  • 이선천(二禪天)
    소광천(少光天) · 무량광천(無量光天) · 광음천(光音天). [21]
  • 삼선천(三禪天)
    소정천(少淨天) · 무량정천(無量淨天) · 변정천(徧淨天). [22]
  • 사선천(四禪天)
    무운천(無雲天) · 복생천(福生天) · 광과천(廣果天).
  • 정범천(淨梵天)
    무번천(無煩天) · 무열천(無熱天) · 선현천(善現天) · 선견천(善見天) · 색구경천(色究竟天) · 화음천(和音天).

5. 무색계[편집]

색계 위에 있는 하늘로, 물질을 초월한 순수한 정신적 영역의 세계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이곳에 사는 중생들은 형상이 없다고 한다.[24]
  • 공무변천: 무색계의 첫 번째 하늘로, 이곳 중생들의 수명은 2만 대겁이라고 한다.
  • 식무변천: 무색계의 두 번째 하늘로 이곳 중생들의 수명은 4만 대겁이라고 한다.
  • 무소유천: 무색계의 세 번째 하늘로 이곳 중생들의 수명은 6만 대겁이라고 한다.
  • 비상비비상천: 무색계의 네 번째 하늘로 이곳 중생들의 수명은 8만 4천 대겁이라고 한다.
[1] 원판을 들고 있는 커다란 파란색 괴물(?)이 바로 염라대왕이다. 생긴 게 왜 저러냐면 티베트 불교 식으로 묘사됐기 때문이다.[2] 산스크리트어 원어 표현은 나라카(Naraka)이다.[3] 존속 살인 등으로도 갈 수 있는데 그 동기도 참작이 불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 이 경우 죄질이 불량하다면 무간지옥에 떨어지기도 한다. 언론에 자주 나오는 재산을 목적으로 존속 살인을 하는 경우 지옥도에 갈 수도 있고 식독아귀가 될 수도 있다.[4] 그나마 석가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축생이긴 하지만 부잣집에서 태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5] 목련존자 본인이 아니라 그 어머니. 석가가 죄를 싹 사해 주고도 아귀도, 뒤이어 축생도로 떨어져야 했을 만큼 죄질이 나빴다. 목련존자가 갖은 노력을 다한 끝에 천도로 보내었다고 한다.[6] 축생들도 급이 있다. 최하부터 보면 먼저 미물금수 그 다음은 십이지 그 다음에야 인간도로 환생되는 것이다. 막 인간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떨어질 때 도 순서 역시 같다.개팔자가 상팔자라고 함부로 주인물고 그러면 안된다.[7] 가령 사교를 믿어 천계에서 다시 태어나고자 산림이나 풀숲에 불을 지르거나 천신에 공양하는 의례를 치른 이들은 먼저 초열지옥의 소지옥인 일절인숙처에 떨어져 고통을 받은 뒤 아귀도에서 300생을 보내게 되며, 그 후 500생을 축생도에서 보내게 되는데 이때 물벌레로 태어나 자신의 새끼가 고기잡이 등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봐야 한다고 한다.[8] 그런데 애완동물은 불교학자들마다 설정이 다르다. 아직은 보수학파들 위주로 가는중[9]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무리의 신중(神衆)[10] 천상의 정치는 재상이 아주 없는 수라, 한명밖에 없는 인간계와 달리 10명 정도로 많으며, 종교 역시 아주 없는 수라, 세개 즉 삼교 밖에 없는 인간계와 달리 8개나 된다. 다수결로 처리되는 인간계의 의회와 달리 항상 만장일치로 해결된다. 천상세계에서는 막노동이나 인권탄압이 없다. 하지만 수행자 역시 적어 닦음으로써 화생할곳은 아닌듯 하다.[11] 수미산에 걸쳐있는 하늘[12] 수미산 위에 떠 있는 하늘[13] 달리 욕육천(慾六天)이라고 부른다.[14] 한국 신화에서 도리천은 옥황상제가 산다고도 여겨진다[15] 위키백과에 따르면 야마의 불교 동등신은 염라대왕이다.[16] 이 마라파순천의 존재로 인해 간혹 육욕천이 아닌 칠욕천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고 한다. 타화자재천이 곧 마천으로 여겨지기도 한다.[17] 색계의 첫번째 하늘이자 초선천의 첫번째 하늘로, 대범천왕이 다스리는 중생들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 범중천이 사는 천인들의 키는 반유순이고, 목숨은 반겁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타화자재천과의 거리 차이는 256만유순이나 된다고 한다.[18] 욕계 억조창생들의 번뇌 욕망 쾌락이 저질이 아닌 최고품으로 장엄되는 곳이다. 이곳 중생들은 음욕이 생기면 타인을 보기만 하여도 음욕이 해소된다고 한다. 그래서 옷차림을 최대한 음란하게 입고 다닌다.[19] 경마다 다른데, 17~22천 사이에서 묘사된다. 그래도 18천이라고 하는 경우가 가장 대중적이다.[20] 여기 사람들은 모두 다 오신통을 쓸 수 있다.[21] 묶어서 삼광천이라고도 부른다.[22] 묶어서 삼정천이라고도 부른다.[23] 위에 정리해놓은 것이 공식적으로 딱 정해진 것인 것은 아니며, 불경이나 교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에 유의 바란다.[24] 불교 교리에 의하면 부처님되는것이 어렵지, 무색계에 도달하는것은 어렵지 않다.

육도윤회

최근 수정 시각: 2025-06-09 20:2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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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善道)
천상도(天上道)
수라도(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악도(惡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
지옥도(地獄道)
1. 개요2. 불교의 윤회 개념3. 육도(욕계)
3.1. 지옥도(地獄道)3.2. 아귀도(餓鬼道)3.3. 축생도(畜生道)3.4. 인간도(人間道)3.5. 수라도(修羅道)3.6. 천상도(天上道)
4. 색계5. 무색계

1. 개요[편집]


[1]

티베트 불교의 육도윤회도. 가운데에 그려진 새, 뱀, 돼지는 각각 육도윤회의 원인인 탐(貪: 욕심), 진(瞋: 성냄), 치(癡: 어리석음)를 상징한다.

육도윤회()는 중생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고 나면 생전의 행보에 따라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인간도, 수라도, 천상도로 나뉘는 육도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믿음을 뜻한다.

2. 불교의 윤회 개념[편집]


우선 육도 윤회를 알아보기 전에 불교의 기본적인 개념을 알 필요가 있다.

윤회라는 것은 차례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수레 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는 것과 같이 중생이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의 생사 세계를 그치지 않고 돌고 도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삼계 육도라 함은 삼계(욕계ㆍ색계ㆍ무색계)와 육도(지옥도ㆍ아귀도ㆍ축생도ㆍ인간도ㆍ수라도ㆍ천상도)로 이 세계를 설명하는 틀이다. 이 세상은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눌 수 있고 이 중 우리가 있는 계는 바로 욕계이다. 또한 6가지의 삶의 길(六道)이 있다. 원인과 결과에 의해서 삼계 육도에 빠져있는데, 세계의 이치를 깨우치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번뇌가 없는 진정한 평안을 얻는 다른 차원(도피안)으로 갈 수 있다. 이를 해탈이라고 한다. 이 지고지순한 경지를 얻지 못한 자는 죽은 뒤 자기 업에 따라 삼계 육도의 한 곳에서 다시 환생한다.

이렇게 윤회하는 이유를 불교에서는 불법을 깨우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각 도는 불법을 깨우치기 위한 길 혹은 방법으로 존재하고 지옥도 < 아귀도 < 축생도 < 수라도 < 천도 < 인간도 순으로 불법을 깨우치기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왜 천도가 인간도의 밑에 존재하냐면 천도는 사실 가장 불법에 가까이 있는 천상 세계이고, 인간도에서 정말 덕업을 많이 쌓은 사람들이 태어나는 곳이지만 그만큼 번뇌에 고민하지 않게 되어 진정한 해탈을 얻기 오히려 어렵다는 것이다. 온실 속의 화초 인간도야말로 불법을 깨우치기 좋은 환경이라는 것이다. 온갖 번민에 고민하면서 치열하게 집착을 버리려는 노력과 덕업을 쌓을 기회가 많은 인간도가 부처가 되기 위한 가장 좋은 기회이니 이때는 놓치면 또 몇 을 윤회해야 한다.

불교에서 이 세계는 곧 5감 또는 6감이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마음이 만들어낸 세상으로 일반적인 인식 너머의 또는 인식이 되지 않는 세계도 있다. 지옥은 사후 세계라는 동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현실 공간에 다른 차원으로 존재한다고 얘기한다. 마치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듯이 주파수를 맞추면 한 곳에서 다른 채널을 들을 수 있듯이. 영화 콘스탄틴에서도 이런 개념을 보여준다.# 혹자는 다른 차원이 아니라 세계관의 문제라고도 주장한다. 즉 똑같은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지옥도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천도로 보인다는 것. 가령 날때부터 풍족한 집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 유순한 성정을 얻은 부자에게 이 세상은 천상도, 전투적 투쟁과 경쟁의 고통을 감수하며 그 자체를 즐기는 용자에게 이 세상은 수라도, 이도저도 아닌 대다수의 범부와 짐승들에게 이 세상은 인간도와 축생도, 굶주림과 병마를 비롯한 온갖 고통에 시달리는 빈자에게 이 세상은 아귀도 혹은 지옥도일 것이다. 즉, 육도윤회 역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사실 여기서 천상도부터 지옥도까지의 6도가 인간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다. 상술했듯 왕의 자식이나 대부호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아이와 거지나 내전으로 고통받는 지옥 같은 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느끼는 현실은 각각 천도와 지옥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번뇌에 구애받지 않는 구도자와 탐욕과 질시로 마음이 지옥과 같은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 다른 현실에 살고 있음은 명백하다.

《법화경(法華經)》에서도 '육도가 어떠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명 상태에 따라 변화되는 것이며, 범부(凡夫)가 끊임없이 욕망에 지배당하여 좌우되는 것을 육도 윤회라고 한다.'고 설명한다.

원래 오도였으나 수라도가 도입되면서 육도가 되었다고 한다.

3. 육도(욕계)[편집]

도道자가 붙기 때문에 큰 복덕과 큰 죄악이 아니면 계속 인간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수 있다. 어디서는 수행을 안하면 축생도나 아귀도로 떨어진다고 겁을 주는데, 그런 방식은 더 많은 번뇌와 고통을 줄뿐 진정한 포교가 아니다. 불교에서는 외계인의 존재도 인정하기에 더욱 기회가 많다. 그러니까 불신지옥 등으로 겁박을 통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유도하는게 아닌, 더 많은 기회가 있음으로 유도하는게 맞다. 불교는 기회가 정말 많다. 어떤 방법을 해도 부처님이 될수 있으니, 사이비를 행하는일만 없으면 된다.
나락(奈落)[2]이라고도 부른다. 아귀도와 축생도로 가는 사람들보다 더욱 심각한 악인들이 태어나는 곳이다. 연쇄살인범 정도가 아니고서야 가기 힘든 곳이라 봐도 된다.[3] 생전의 악업에 따라 108 지옥에서 고통받는다. 여기서 108 지옥은 현실 세계의 악행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흔히 지옥을 죽은 영혼의 상태에서 고통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당연히 영혼 상태에서는 고통을 받을 수 없다.

다시 태어나서 108가지 고통을 받으면서 업을 씻는다. 과거 불교가 한반도에 자리잡으며 일반에 토속 신앙의 사후관과 기독교의 천당과 지옥의 개념이 혼합되어 영계에서 영혼이 고통받는 곳이란 이미지가 굳어졌다. 불경에서는 분명히 육도를 다시 태어나는 곳이라고 했고, 지옥도도 마찬가지다.

지옥도에서 악업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면 아귀도나 축생도로 환생하여 남은 죄를 마저 씻어야 한다. 후술할 내용이지만 목련존자의 어머니는 지옥도에서 악업을 청산하지 못해 침구아귀를 겪은 후 부잣집 개[4]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지옥에서 다시 태어난 다음, 죽을 정도로 끔찍한 고문을 당하지만, 결코 죽지 못하고 다시 멀쩡하게 재생되어 몇 번이고 똑같은 죽음의 고통을 당하면서 생전의 악업을 갚는다. 참고로 지옥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지옥은 무간지옥으로 죄질이 가장 나쁜 자는 재판 없이 바로 여기로 떨어지며, 살생과 탐욕으로 악업을 너무 쌓아 재판조차 안 해도 될 악인으로 판정받았던 목련존자의 모친처럼[5] 온 몸에 못 49개를 박고 몸 안이 불타 입으로 불을 뿜어내는 혹독한 고문을 받는다. 지옥도의 구조는 신과함께로 알려진 중생이 심판받는 시왕지옥(十王地獄)과 답이 없는 악인들이 떨어지는 팔열팔한지옥(八熱八寒地獄)으로 나뉜다. 자세한 사항은 지옥(불교) 참조.

3.2. 아귀도(餓鬼道)[편집]

욕심이 많고 동정심은 없었던, 그 중에서도 악질인 자가 태어나는 곳으로, 지옥보다 덜하고 축생보다 더하다. 보통 사람이 가기는 역시 힘들고, 사람을 여럿 죽이거나 연쇄 아동 성범죄자급 정도가 여기서 태어난다. 공덕은 없고 악행만 일삼은 자들이나(지옥까지는 안 갈 정도로 악업이 쌓인 경우) 지옥도에 떨어질 정도로 악행이 심했으나 그나마 공덕도 있어서 지옥은 겨우 면한 경우 이곳에 간다. 지옥과의 차이점은 지옥은 '형벌'의 의미로써 일부러 고통을 주지만, 아귀는 신체 구조 자체가 고통스럽다. 배는 태산만 해서 언제나 굶주리고 목마르지만, 목구멍은 바늘만해 음식을 거의 먹을 수 없어 평생 목마름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식이다. 아귀도에 태어난 사람은 먹으려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항상 매 맞는다고 한다. 이렇게 먹지도 못하면서 먹을 것을 가지고 서로 싸운다. 여기서 '아귀다툼'이라는 말이 생겼다.

지옥에서 형벌을 마친 사람 중에서 지옥에서의 형벌로도 모자란 이들은 생을 거듭하면서 계속 형벌을 받는데 가장 먼저 윤회하게 되는 곳도 아귀도다. 문제는 이걸 수백번 정도 반복한다는 것이다. 수명이 인간보다 훨씬 길며, 거기에 윤회를 수백번 반복하고 자살하면 더 아래인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즉 아귀도에서 한번 태어나고 죽는게 아니라 수백번이나 태어나고 죽음으로서 형벌을 받는 것. 따라서 많은 공덕을 베풀 배포가 없는 범부들은 평정심을 유지하여 최대한 인간도에서 더불어 살아야 할 것이다.

3.3. 축생도(畜生道)[편집]

동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6] 사람은 적고 동물은 많기에 대부분 인생 → 축생 수만 번 → 인생을 반복한다. 동물로 태어나 인연을 만나 덕을 쌓다 보면 언젠가 사람으로 태어나 불법을 깨우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민간에서는 흔히 동물을 학대한 사람이 동물로 환생해 자신이 생전에 동물들에게 한 학대를 그대로 돌려받는다고 동물, 곤충을 괴롭히는 아이에게 어른들이 혼낼 때 많이 얘기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고 축생도가 아닌 지옥으로 바로 갈 수도 있다. 동물로 태어나서 불법을 닦기 묘연한 이 험한 길(道)을 가야 할 정도의 업을 쌓은 자들이 동물로 다시 태어난다. 반대로 지옥에서의 형벌로 모자란 이들이 아귀도를 거쳐서 다음으로 축생도에 태어나게 되는데 이를 수백번 반복하게 되며, 일부는 축생도에서 태어나는 것도 모자라 고통 속에서 살게 된다.[7]

인간이 축생도로 환생하는 경우는 생전에 저지른 죄악이 아귀도로 갈 정도는 아니지만 인간도로 환생하기에는 죄악이 많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아귀도까지 갈 정도로 죄악이 많은데 공덕이 있어서 아귀도를 면한 경우도 축생도로 환생한다. 인간이 죽어서 후생에 아귀도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축생도부터는 꽤 많아진다. 숫자상으로 사람은 적고 동물이 많기 때문이다. 별다른 공덕도 없고 죄악이 많으며 욕심이 많은 인생을 살아 인간도로 환생할 가치가 없으면 축생도로 환생한다. 전생에 쌓은 악업의 정도에 따라서 정말 환경이 좋지 않은 생태계로 갈 수도 있고 그나마 나은 생을 살 수도 있다. 친근한 주인의 애완동물로 태어나면 그나마 복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죄가 그리 심하지 않으나 딱히 인간계로 보낼만한 이유도 없을 때 축생도, 특히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애완동물[8] 태어나게되며 어느정도는 주인과 연이 닿아있다고 한다. 일부는 인간계에서 큰 상처를 받아 인간계에서 태어나기를 거부하고 축생도에서만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때 대부분 죄가 없기 때문에 공덕깊은 인간에게 발견되어 키워지거나 스스로 큰 고난 없이 축생도의 삶을 마감한다고 한다.

3.4. 인간도(人間道)[편집]

우리가 사는 현세. 생로병사에 시달리며 번뇌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다른 길보다 훨씬 불법을 닦아 해탈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길도 역시 부처가 될 수 없는건 아니다. 좋은 예시로 서유기에서 손오공은 경전을 가져오는데 큰 도움을 주어 '투전승'이라는 직책을 얻었다. 즉 서유기 엔딩 시점에서는 손오공도 엄연히 부처다. 후술하겠지만, 손오공 제천대성과 그 측근 요괴왕들인 칠대성은 인간도보다는 수라도에 가까운 존재들이다.

지옥도-아귀도-축생도를 거쳐 인간도에 태어나게 되거나 아니면 그나마 선업을 쌓아놓은게 있어서 지옥도를 면하고 인간도에 태어나게 된 이들은 인간도에서 불운한 일생을 보내게 되는 것으로 벌을 받는다.

인간이 후생에서도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려면 공덕이 있어야 한다. 공덕을 화끈하게 향상 시키는법은 뭐니뭐니해도 절에가서 스님 수행을 돕고자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여름의 시원한 음료공양부터, 겨울의 따듯한 난로공양 장작공양, 스님이 바깥출입을 하시면 스님을 향해 허리굽혀 공손히 인사하기 스님들께 꽂공양 올리기 등을 많이 하면, 아뿔사 사후 인간계로 직행하는 것이다. 그것도 좋은 집안에서 말이다. 노력을 더 많이 하면 천상도로 갈수도 있다.

3.5. 수라도(修羅道)[편집]

오로지 투쟁만이 존재하는 세계로 흔히 무법천지로 묘사된다. 일부 전승에서는 수많은 왕국으로 분열되어 있고, 뚜렷한 제도나 종교 체계가 없으며, 귀천을 막론하고 전투에 몰입하느라 모두 노숙 생활을 한다는 묘사가 있다. 이곳의 존재들은 지혜는 있으나 분노와 시기심이 강해 끊임없이 싸움을 벌이며 살아간다. 아수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처럼 오선(五善)과 십계(十戒)의 선업을 쌓아야 한다고 전해지며, 그만큼 지혜와 재주가 뛰어나고 복이 있는 존재로 간주된다. 다만 그 번뇌가 강해 천상에는 들지 못하고, 투쟁심과 오만으로 가득한 상태에 머무른다. 자연 환경은 아름답고, 외모도 뛰어나다는 묘사가 있지만, 정법(正法)을 멀리하고 해탈의 가능성도 낮다.

아수라(阿修羅)는 본래 인도 신화에서 신(데바)과 대립하는 전투적인 반신적 존재들로, 불교에서는 육도윤회의 한 세계인 수라도(修羅道)에 거주하는 중생을 의미한다. 이들은 지혜와 복덕이 있어 인간보다 높은 존재로 간주되나, 강한 분노(瞋), 시기심, 교만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투쟁하며 살아간다. 선업을 쌓아 수라계에 태어나지만, 집착과 분노로 인해 천상에는 들지 못하고 해탈과도 거리가 먼 세계에서 윤회한다. 아수라는 신적 힘과 아름다움을 지녔음에도 정법(正法)을 멀리하며, 제석천과의 끊임없는 전쟁으로 '아수라장'이라는 말의 어원이 되었다. 이는 비록 인간이 아수라보다 비천하고 나약하나, 오히려 그렇기에 깨달음에는 더 가까울 수도 있다는 역설적 교훈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힌두교의 신격은 일반적으로 그리스 신화의 신들과 마찬가지로 선악의 양면성을 지니며, 인간적인 성격적 결함도 함께 표현된다. 불교가 인도에서 전파되던 초기에, 기존 브라만교와 힌두교의 신격 체계를 이해하던 대중에게 접근하기 위해, 불교는 일부 신화적 요소들을 교리적으로 재해석하였다. 이 과정에서 힌두교의 데바 신족이 거주하는 세계가 후술할 '천상도'가 되었으며, 그들에 대적하는 투쟁신들인 아수라 신족은 단순한 악신이 아니라 선과 악이 혼재하며 지혜도 갖춘 존재로 묘사되었다. 고로 자연스럽게 아수라들이 위치한 수라도는 인간도보다 높은 세계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초기 경전에서는 아수라왕이 제석천에게 도전하는 존재로 주로 등장하지만, 일부 대승불교 설화에서는 부처의 설법에 반발하여 싸움을 걸었다가 결국 감화되어 불법을 수호하는 수문장이 되었다는 서사도 나타난다. 이는 아수라를 단순한 악의 화신이 아닌, 교화 가능성이 있는 중생으로 보는 불교적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다.

즉, 수라도는 불교가 인도에서 전파되던 과정에서 기존 브라만교와 힌두교의 신격 체계와 세계관을 흡수하고 재해석하며 형성된 개념이다. 이 세계의 중심 존재인 아수라왕은 본래 힌두교의 아수라(asura)와 동일한 어원을 지닌 존재로, 불교에서도 역시 전투적이고 강한 힘을 가진 신적 존재로 묘사된다. 상기한 수라도의 중생들인 '아수라(阿修羅)' 역시 'asura'의 음역이며, '수라'는 그 약칭이다. 불교에서 아수라왕은 악신으로 단정되지 않고, 선과 악의 양면성을 지닌 중생으로 해석되며, 팔부중[9] 가운데 하나로 포함되어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는 불교가 힌두교의 다양한 신격을 포용하되, 그 성격과 역할을 '업(業)에 따른 윤회와 교화의 가능성'이라는 불교적 틀로 재해석했음을 보여준다.

힌두교 신화에서 아수라왕은 본래 정의와 힘을 상징하는 존재였으나, 천계의 지배자이자 데바 신족의 우두머리인 인드라, 불교에서는 제석천이라 불리는 동격의 존재와의 전쟁에서 패배해 지위에서 밀려났다고 전해진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신화를 전승 요소로 받아들이면서도, 아수라왕과 아수라들을 끊임없이 천계에 도전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불법에 귀의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해석한다. '아수라장'이라는 표현은 수라계의 존재들 간의 끊임없는 투쟁, 혹은 아수라왕 제석천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유래한 말로, 극심한 혼란과 다툼의 상황을 상징한다. 불교에서는 명예를 알고 공덕이 많지만 호전적이거나 시기심과 교만이 강한 중생이 이러한 성향의 업(業)에 따라 수라계에 윤회한다고 보며, 일부 설화에서는 탁월한 전투력이나 명예를 얻은 전쟁 영웅도 그 내면의 분노와 집착으로 인해 수라도에서 아수라로 다시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고 전한다.

이렇게 독특한 위상을 지니다보니 불교에서 수라도의 위상은 종파와 지역 전통, 경전 해석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으로는 육도윤회의 하나로서, 천상도 아래, 인간도보다 높은 계위의 세계로 해석되며, 이는 주로 부파불교 대승불교의 경전 전통에서 확립된 구조이다. 그러나 일부 포교적 또는 민속적 설명에서는 수라계를 '삼악도(三惡道: 지옥, 아귀, 수라)'의 하나로 묶어, 마치 축생도와 지옥도와 비슷한 급의 저계층인 것처럼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교리적 위계라기보다 도덕적 경고나 교훈적 맥락에서 사용하는 것에 가깝다. 이는 한국 불교도들 사이에서 수라도를 인간도보다 낮은 세계로 오해하는 경향이 비교적 널리 퍼진 탓이기도 하다. 이러한 해석은 교리적으로 엄밀한 분류라기보다는, 무력과 투쟁을 부정적으로 보는 한국적 민족성과 도덕적 가치관에서 비롯된 측면이 많다. 한국 불교는 전통적으로 충돌보다는 조화, 무력보다는 인내를 중시해온 유교적 문화와 융합되었기에, 호전적인 수라의 속성을 업이 무거운 부정적 세계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화된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불교에서 수라도는 원래의 위계보다는 포교와 교화의 맥락 속에서 '경계해야 할 성향'의 상징적 공간으로 이해되게 되었다.

반면, 많은 외국 불교권, 특히 일본이나 중국처럼 상무문화가 발달한 문화권에서는 수라계에 환생하는 것을 전적으로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기도 하며, 일부 종파에서는 비범한 자들만이 갈 수 있는 세계로서 경외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티베트 불교나 일본의 일부 대승불교, 밀교 전통에서는 수라계 존재들이 강한 의지와 힘, 정의감을 지닌 존재로 해석되며, 그 성향이 수행에 따라 교화되어 보살의 길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세계로 이해된다. 이러한 해석은 수라의 전투적 에너지를 불법 수호나 정법 실천의 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으며, 수라적 의지와 무예를 갈고닦는 과정이 번뇌를 씻는 수행이자 고행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 역사적으로도 수라계가 단순히 부정적인 세계로만 인식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불교가 융성하던 고대 인도나 중국 등지에서 전쟁이 빈번하여 영웅호걸들이 많이 등장했던 시기에는 수라적 성향인 강한 의지, 전투적 기개, 불의에 대한 분노가 정법을 수호하고 악을 물리치는 보살적 역량의 한 표현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예컨대 불법을 지키는 팔부중 가운데 아수라가 포함된 점, 그리고 아수라왕이 부처의 가르침에 감화되어 귀의했다는 설화 등이 수라의 기질이 교화와 수행을 통해 전환될 수 있다는 긍정적 인식을 반영한다. 서유기에서 수라적 존재에 속한 손오공이 투전승불에 이르는 것 역시 이러한 배경으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수라계 환생이 반드시 악업의 결과만은 아니며, 복과 힘을 겸비했으되 번뇌가 남은 상태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불교의 수라도는 사람이 죽은 뒤 끊임없이 싸움을 반복하게 되는 세계라는 점에서 북유럽 신화의 전사들의 사후 세계인 발할라와 일정한 유사성이 있다. 그러나 두 세계는 '싸움'이라는 행위에 부여된 가치와 상징성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수라도는 분노와 번뇌의 업보로 인해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의 윤회 상태로 묘사되며, 이는 지옥처럼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세계는 아니지만 깨달음과 해탈에서 멀어진 상태로 인식된다. 반면, 발할라는 명예롭게 전사한 전사들이 오딘의 전당에서 사후에도 전투와 향연을 즐기는 장소로, 영광과 긍지의 사후 천국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차이는 무력과 전쟁에 대한 가치 판단이 문화마다 다르게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북유럽에서는 전사가 죽은 뒤에도 싸움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이상적인 영생이었고, 반대로 아시아의 불교에서는 그러한 투쟁심이 미혹과 윤회의 원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한 묘사되는 삶의 질 면에서도 두 세계는 대조적이다. 수라도에서는 고통스러운 투쟁만이 반복될 뿐, 생활 조건이나 환경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부족하며, 일부 전승에서는 노숙 상태로 살아간다고도 전해진다. 반면 발할라는 황금 방패로 지붕이 덮인 전당, 끝없이 제공되는 식사와 음료, 전투 후 회복되는 육체 등의 설정으로 풍요로운 이상향으로 묘사된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수라 외의 존재들이 수라도를 보았을 때 고통이 반복된다는 것이며, 당사자들인 아수라들의 입장에서 이 세계가 고통이 가득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수라들에게 수라도는 정말로 발할라와 상당히 유사한 낙원에 가깝다는 것 역시 감안할 필요가 있다. 수라계의 중생들은 단순히 고통만 겪는 존재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불교 경전과 설화에 따르면, 이들은 타고난 전투광 신족으로서 강한 육체와 지혜를 지니고 있으며, 싸움에서 이기거나 명예를 얻는 데서 일종의 쾌감을 느낀다. 전쟁과 경쟁, 우열 다툼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자체를 괴로움으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지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즐기는 측면도 있다. 노숙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 역시 형벌의 개념이 아니라, 이들이 의식주를 잊을 정도로 싸움에 몰입하기 때문이라는 맥락이 강하다. 이러한 상태는 '쾌락적 고통'이라 할 수 있으며, 미혹의 감정에 기반한 즐거움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수라계가 결코 단순히 악업의 대가를 치루는 장소가 아니라, '인간보다 고차원적인 존재들'의 쾌락과 번뇌가 뒤섞인 복합적인 윤회의 세계임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수라도는 흔히 복은 많으나 마음이 고요하지 못한 중생의 세계로 간주된다.

흥미롭게도, 북유럽 신화의 신족 명칭인 'Æsir(애시르)'가 산스크리트어 'Asura(아수라)'와 어원이 유사하다는 학설이 있으며, 이는 선사시대 공통 신화 요소가 유라시아 대륙 전반에 퍼져 있었다는 가설, 즉 원시 인도유럽 신화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사례로 언급되기도 한다. 이 가설이 맞다면 인도 신화와 북유럽 신화는 본래 같은 기원에서 시작해서 지역지리와 문화가 분화되며 그 신관이 함께 바뀐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의 윤회론에 따르면, 중생은 생전에 지은 선업과 악업의 복합적인 결과에 따라 육도의 어느 한 세계에 환생하게 된다. 수라도는 상당한 공덕을 지니고 있으나, 동시에 강한 분노, 시기심, 투쟁심 등의 번뇌를 극복하지 못한 경우에 해당하는 존재들이 태어나는 세계로 묘사된다. 예를 들어, 전쟁에 참여해 많은 공로를 세웠지만 동시에 수많은 인명을 해친 무장의 경우, 해당 중생은 선과 악의 복합적 업보로 인해 천상도에는 오르지 못하고, 수라도에 환생할 수 있다는 해석이 일부 설화나 논서에 전해진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 업의 동기, 고의성, 자비심의 유무 등을 모두 고려하여 판단되는 것이며, 단순히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이유로 '악업이 크다'고 단정하는 것은 불교 교리와 맞지 않는다. 또한, 수라계의 존재 수가 상대적으로 많다거나 적다거나 하는 기술은 경전마다 다르게 나타나며, 중생의 수 자체는 정확히 가늠되지 않는다. 게다가 상기했듯이 수라계는 지옥, 아귀, 축생보다 고통이 덜하며, 오히려 전투에서 오는 쾌감과 영광으로 가득한 투쟁신들의 세계이되, 다만 끊임없는 경쟁과 투쟁으로 인해 해탈에 이르기 어려운 상태로 묘사된다.

3.6. 천상도(天上道)[편집]

마치 극락처럼 번뇌가 적고 평온한 세계이지만, 이 세계에 태어나는 사람은 물욕은 없으나 명예욕이나 지식욕들이 살아있는 경우가 있어, 아직 모든 집착에 초연하여 해탈의 경지에 들어선 것은 아니기에 언젠가 수명이 다하면 다시 윤회하게 된다.[10] 이 세계에선 번뇌를 거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도보다 해탈에 도달하기 조금 어려운 편이나 일단 한 번 해탈하기로 마음 먹는다면 인간도보다 훨씬 해탈하기 쉬운 편이다. 이 천상도는 중국에 전래되면서 힌두, 브라만은 물론 중국의 도교까지 일부 흡수해 여러 하늘과 층계로 나뉜다. 각 하늘을 구성하는 작은 하늘과 천상계, 그리고 그곳을 다스리는 신 등, 그 한 가지에 여러 명칭이 붙어 복잡한 데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신선과 같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 중 일부는 명예욕으로 인간도에 내려와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천도에서 도피안으로 가는 문 앞에 아미타불이 중생을 극락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사후에는 살아생전 자신이 종파마다 다른 방식으로 분류되는 덕(德)에 따라 사후에 가는 곳이 달라진다.'는 당시 인도 종교계에서 널리 퍼진 이론이라서 불교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많고 많은 세계 중에서 사람이 태어나는 곳이 저 여섯 개인 이유는, 불교에서 사람이 고통받는 원인이자 해탈을 방해하는 삼독(三毒)인 탐욕(貪), 성냄(瞋), 어리석음(癡) 및 총체적인 고통과 즐거움을 상징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탐욕을 버리지 못한 자는 아귀처럼 살아가고, 자애를 지니지 않고 분노로 살았던 사람은 수라도로 떨어지며, 참된 지혜를 지니지 못한 자는 짐승처럼 우둔하게 살아간다는 뜻이다. 지옥은 저 모든 고통을 겪는 말 그대로 고통 종합 세트이고, 천상도는 해탈보다야 못하지만 그래도 선하게 살아가면 갈 수 있는 복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참고로 현세의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도는 나머지 5곳의 속성을 전부 지닌다.
천신들의 성생활의외로 천상도에 환생하기가 쉽다.

천상도는 2개의 지거천(地居天)[11]과 4개의 공거천(空居天)[12], 총 6개의 하늘로 나뉜다.[13]
  • 지거천(地居天)
    • 사왕천(四王天): 육욕천(六慾天) 중에서 첫번째 하늘에 해당되는 곳으로, 수미산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남북 사방에 각각 지국천, 광목천, 증장천, 다문천(혹은 대비다문천)이라는 4개의 하늘이 있으며, 각각의 하늘은 사천왕이 다스린다. 이곳 사왕천의 하루는 인간세계를 기준으로 50년이며, 수명은 900만년이다. 사천왕천이라고도 한다.
    • 도리천(忉利天)[14]:육욕천 중 두번째 하늘로, 도리천의 "도리"는 샨스크리트어 trāyastriṃśa의 음사로 33이라는 뜻이며, 천(天)은 곧 신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 되기에, 이곳 도리천은 33명의 신들이 사는 하늘이라는 의미가 된다. 중앙에는 이곳 도리천을 다스리고, 사방 32성의 신들을 지배하는 제석천이 기거하며, 사방의 봉우리에 각각 8신들이 기거하기에 총 33천이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곳 도리천은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하는 수미산의 꼭대기에 있으며, 모양은 사각형을 이루고 네 모서리에는 각각 봉우리가 있으며, 중앙에는 선견성(善見城)이 있는데, 이 선견성은 제석천이 거하는 궁전이라고 한다. 이곳 도리천에 있는 33천들은 한 달 중 6재일(8, 14, 15, 23, 29, 30일)마다 성 밖에 있는 선법당에 모여 법(法)에 맞고, 법 답지 않은 일을 평론하는데, 이때 지상에 있는 중생들의 선행과 악행을 다루게 된다 하여, 신라시대 이후 불교 신도들은 6재일에 계율을 청정하게 하고 1일1식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이곳의 신들은 남녀의 구별이 있고, 음욕을 끊지 못한 상태이지만 음욕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으며, 번뇌 또한 인간들처럼 복잡하고 심각하지 않다고 한다. 이곳에 태어나는 아기들은 인간의 6세가 된 아이와 같으며, 저절로 의복이 입혀지게 된다고 한다. 이곳 도리천의 하루는 인간세계를 기준으로 100년이나 되고, 수명은 3000만년에 이른다. 무당이 거행하는 천도재도 이곳에 왕생하길 기원하는 의미로써 한다. 또 도교에선 세상의 주재자 옥황상제가 있는 곳이라고 여겨진다.
  • 공거천(空居天)
    • 야마천(夜摩天) = 시분천: 육욕천 중 세번째 하늘로, 야마천의 "야마"는 샨스크리트어 야마를 음역하는 것으로,[15] 형용사로 쓰면은 쌍을 뜻하기에, 쌍왕을 뜻하는데, 리그베다에서 야마는 최초의 인간이자 최초로 죽은 죽음의 세계인 명계를 다스리는 우두머리에 해당된다. 불교에서 쌍왕은 이름처럼 이곳 욕계의 제 3천인 야마천에도 거주하고, 명계의 세계인 지옥에도 머문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밤낮의 구분이 없고 시간에 따라 여러 가지의 환락을 누리는 곳으로, 이 때문에 시분천이라고 한다. 또 이곳에서  은 연꽃의 꽃잎이 열리고 다치는 것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염라대왕은 이 하늘이 바뀌어 달라진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 있는 신들의 음욕은 그저 포옹하는 정도로 만족하며, 공간상에 겹겹히 쌓인 것으로 묘사가 된다고 한다. 이곳 야마천의 하루는 인간세계를 기준으로 200년이며, 수명은 1억3천4백만년이다.
    • 도솔천(兜率天): 육욕천 중 네번째 하늘로, 미륵보살이 머무는 내원과 천인들이 즐거움을 누리는 외원으로 구성된 천상의 정토를 가리키는 이상세계로, 달리 지족천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천인들은 오욕(五慾)을 만족하고 있으며, 제 3천인 야마천으로부터 16만 유순 위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위에 서술한 내원은 미륵보살의 정토로써 달리 내원궁이라고 부르는데, 이곳 내원궁은 석가모니 부처가 인도에 태어나기 직전까지 머무르면서 중생교화를 위한 하생의 때를 기다린 곳이라고도 한다. 그러면서, 미래불인 미륵은 현재 이 내원궁에서 설법하면서 남섬부주에 하생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곳 도솔천의 하루는 인간세계를 기준으로 400년이고 수명은 5억7천6백만년이다.
    • 낙변화천(樂變化天): 육욕천의 다섯번째 하늘로, 달리 화락천이라 부른다. 이곳에사는 천인들은 모든 대상을 마음대로 변하게 함으로써 즐기고 있는데, 이는 이곳 낙변화천에 거하는 신들은 바라는 대상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즐긴다는 것을 뜻한다. 이곳 낙변화천의 하루는 인간세계를 기준으로 800년이나 되고 수명은 23억4백만년이다.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육욕천의 여섯번째 하늘이자 마지막 하늘로, 이곳 타화자재천의 신들은 바라는 대상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즐기는 것은 물론, 다른 신들이 만들어낸 대상도 자유롭게 즐기는데, 이는 타인의 즐거움을 자유로이 자신의 즐거움으로 만들어 즐긴다는 것을 뜻한다. 그와 동시에 일반적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사마 중 한명인 천마가 거주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 타화자재천의 하루는 인간세계를 기준으로 1600년이나 된다고 하며, 수명은 92억1천6백만년이다.
  • 번외:마천(마라파순천): 장아함경 제 18 권, 제 20 권 혹은 기세경 제 1 권과 같은 몇몇 불교경전에서 언급된다고 하는, 타화자재천 바로 위에 있는 천마가 거주하는 욕계의 일곱번째 하늘이자 마지막 하늘[16]으로, 욕계의 마지막 하늘인 타화자재천과 색계의 제 1 천인 범중천[17]사이에 있다고 한다.[18] 이 하늘에 있는 천인들의 평균 신장은 32유순, 옷의 길이는 64유순이며, 무게는 64분의 1량이라고 한다. 평균 수명은 32000세이며, 이 하늘의 하루는 우리 인간세계를 기준으로 3200년이다. 수명은 대략 373억 7600만년에 달한다.

4. 색계[편집]

욕계 위에 있는 18개[19]의 천들을 가리키는데, 초선천, 이선천, 삼선천, 사선천, 정범천등으로 나뉜다고 한다. 욕계와 무색계의 중간에 위치한 세계로, 욕계에서의 음욕과 식욕과 같은 욕망을 벗어났으나, 아직 완전히 물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세계를 가리키며, 욕계에 있던 음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세계이기에, 더럽고 거친 색법에는 집착하지 않고 미세한 색법만이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물질적은 것은 있어도 감관의 욕망을 떠난 청장한 세계이며, 이곳 색계에서부터는 남녀구별이 없어진다고 한다. 전종식의 대승기신론을 통해본 능엄경에 적힌 바에 따르면은 부모에 의지하지 않고 영혼(아뢰야식)이 단독으로 태어나는 화생의 세계이며,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신통력을 가지며, 도보로 걸을 수도 있고, 이곳에 태어난 중생들은 피부와 골수, 그리고 근맥과 혈육이 없는 몸을 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어떠한 일을 해도 피곤함이 없는 것은 물론, 대소변이 없을 정도로 부정함도 없고, 눈도 깜빡이지 않는 것은 물론, 몸의 빛깔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나타낼 수가 있다고 한다. 달리 말하자면,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이자 현상계라고 볼 수가 있다고 한다.[20]
  • 초선천(初禪天)
    범중천(梵衆天) · 범보천(梵輔天) · 대범천(大梵天).
  • 이선천(二禪天)
    소광천(少光天) · 무량광천(無量光天) · 광음천(光音天). [21]
  • 삼선천(三禪天)
    소정천(少淨天) · 무량정천(無量淨天) · 변정천(徧淨天). [22]
  • 사선천(四禪天)
    무운천(無雲天) · 복생천(福生天) · 광과천(廣果天).
  • 정범천(淨梵天)
    무번천(無煩天) · 무열천(無熱天) · 선현천(善現天) · 선견천(善見天) · 색구경천(色究竟天) · 화음천(和音天).

5. 무색계[편집]

색계 위에 있는 하늘로, 물질을 초월한 순수한 정신적 영역의 세계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이곳에 사는 중생들은 형상이 없다고 한다.[24]
  • 공무변천: 무색계의 첫 번째 하늘로, 이곳 중생들의 수명은 2만 대겁이라고 한다.
  • 식무변천: 무색계의 두 번째 하늘로 이곳 중생들의 수명은 4만 대겁이라고 한다.
  • 무소유천: 무색계의 세 번째 하늘로 이곳 중생들의 수명은 6만 대겁이라고 한다.
  • 비상비비상천: 무색계의 네 번째 하늘로 이곳 중생들의 수명은 8만 4천 대겁이라고 한다.
[1] 원판을 들고 있는 커다란 파란색 괴물(?)이 바로 염라대왕이다. 생긴 게 왜 저러냐면 티베트 불교 식으로 묘사됐기 때문이다.[2] 산스크리트어 원어 표현은 나라카(Naraka)이다.[3] 존속 살인 등으로도 갈 수 있는데 그 동기도 참작이 불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 이 경우 죄질이 불량하다면 무간지옥에 떨어지기도 한다. 언론에 자주 나오는 재산을 목적으로 존속 살인을 하는 경우 지옥도에 갈 수도 있고 식독아귀가 될 수도 있다.[4] 그나마 석가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축생이긴 하지만 부잣집에서 태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5] 목련존자 본인이 아니라 그 어머니. 석가가 죄를 싹 사해 주고도 아귀도, 뒤이어 축생도로 떨어져야 했을 만큼 죄질이 나빴다. 목련존자가 갖은 노력을 다한 끝에 천도로 보내었다고 한다.[6] 축생들도 급이 있다. 최하부터 보면 먼저 미물금수 그 다음은 십이지 그 다음에야 인간도로 환생되는 것이다. 막 인간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떨어질 때 도 순서 역시 같다.개팔자가 상팔자라고 함부로 주인물고 그러면 안된다.[7] 가령 사교를 믿어 천계에서 다시 태어나고자 산림이나 풀숲에 불을 지르거나 천신에 공양하는 의례를 치른 이들은 먼저 초열지옥의 소지옥인 일절인숙처에 떨어져 고통을 받은 뒤 아귀도에서 300생을 보내게 되며, 그 후 500생을 축생도에서 보내게 되는데 이때 물벌레로 태어나 자신의 새끼가 고기잡이 등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봐야 한다고 한다.[8] 그런데 애완동물은 불교학자들마다 설정이 다르다. 아직은 보수학파들 위주로 가는중[9]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무리의 신중(神衆)[10] 천상의 정치는 재상이 아주 없는 수라, 한명밖에 없는 인간계와 달리 10명 정도로 많으며, 종교 역시 아주 없는 수라, 세개 즉 삼교 밖에 없는 인간계와 달리 8개나 된다. 다수결로 처리되는 인간계의 의회와 달리 항상 만장일치로 해결된다. 천상세계에서는 막노동이나 인권탄압이 없다. 하지만 수행자 역시 적어 닦음으로써 화생할곳은 아닌듯 하다.[11] 수미산에 걸쳐있는 하늘[12] 수미산 위에 떠 있는 하늘[13] 달리 욕육천(慾六天)이라고 부른다.[14] 한국 신화에서 도리천은 옥황상제가 산다고도 여겨진다[15] 위키백과에 따르면 야마의 불교 동등신은 염라대왕이다.[16] 이 마라파순천의 존재로 인해 간혹 육욕천이 아닌 칠욕천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고 한다. 타화자재천이 곧 마천으로 여겨지기도 한다.[17] 색계의 첫번째 하늘이자 초선천의 첫번째 하늘로, 대범천왕이 다스리는 중생들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 범중천이 사는 천인들의 키는 반유순이고, 목숨은 반겁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타화자재천과의 거리 차이는 256만유순이나 된다고 한다.[18] 욕계 억조창생들의 번뇌 욕망 쾌락이 저질이 아닌 최고품으로 장엄되는 곳이다. 이곳 중생들은 음욕이 생기면 타인을 보기만 하여도 음욕이 해소된다고 한다. 그래서 옷차림을 최대한 음란하게 입고 다닌다.[19] 경마다 다른데, 17~22천 사이에서 묘사된다. 그래도 18천이라고 하는 경우가 가장 대중적이다.[20] 여기 사람들은 모두 다 오신통을 쓸 수 있다.[21] 묶어서 삼광천이라고도 부른다.[22] 묶어서 삼정천이라고도 부른다.[23] 위에 정리해놓은 것이 공식적으로 딱 정해진 것인 것은 아니며, 불경이나 교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에 유의 바란다.[24] 불교 교리에 의하면 부처님되는것이 어렵지, 무색계에 도달하는것은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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