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知고.

705. 부산. 영보단비.

한유 2025. 5. 30. 17:24

705.

* 부산 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부산 복천동 고분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이미 4-5세기에 주로 만들어진 가야 지배층의 무덤이다라는 것을 안다

만여 점의 유물이 나왔고 몆몆 무덤은 발굴당시의 형태대로 복원하여

당시의 매장 풍습을 엿볼 수 있게 해 놓았다는것도 안다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 사람들의 무덤속을 들여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울산 옹기마을에도 모형이 있다.

여기까지는 복천동 고분의 사진 기록이었다면  나는 내방식의 오늘 주인공은 바로 이 碑하나이다

 

영보단비이다

내 궁금증은 여기에 머문다 주제는 분명 고분인데 알아보려고 하는것은 영보단비가 뭐냐는 것이다

영보단비에 대해 알아본다.

안내글을 읽어보니 1909년 중앙 정부에서 호적 대장을 거두어들이려 하자

조상들의 성명이 적힌 호적 대장이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것을 우려한 주민들은 마안산 기슭에

동래 지역 13개 면의 호적 대장을 모아  불태우고 그 자리에 단을 쌓았다.

이후 매년 이곳에 모여 제사를 지냈으며 1915년 일제 침탈로부터 우리의 것을 지켜내려는 의지를 다짐하여

'영보단'이라는 비석을 세웠다는 내용으로 적혀있다

永(길다)영에 報(갚을)보이니 한문자체로는 내 아둔한 지식으로는 해석이 불가 하다

호적대장(戶籍臺帳)은 사전에서 (조선 시대에,  호주가 제출하는 호적 단자에 의거하여 

호적색이 3년마다 작성하던 호적의 원부)라고 설명한다.

쉽게 이해가지 않는 설명이다.

그래서 나는 영보(永報)를 내 나름대로 해석하기로 했다.

호적이란...........

1.호주를 중심으로 하여 호주와 가족과의 관계, 본적지, 성명, 생년월일  신분에 관한 사항을 기록한 공적인 장부

2.예전에, 국가에서 세금 징수와 군역 부과 등을 목적으로 일정한 지역의 전체 호수   호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과 신분, 생년월일 등을 기록하던 장부.

해석이 이러하니 

호적은 일종의 개인정보이기도 하려니와 어쩜 서민들의 작은 족보일수도 있는것으로 이해했다.

조상들의 존함이 있는 이것을 함부로 밟거나 방치하여 썩거나를 볼수 없어서 불에  태우고 단을 만들어

제사를 모셨다고 그리 해석하고 이해 했다

역사 년보는 1904-5 러일전쟁. 1905년 을사늑약. 1907년. 헤이그 특사 고종 강제퇴위로

강제합병의 순서로 흘러가고 있는 어수선한 시기가 아닌가.

1909년은 이미 고종이 일본제국에 의하여 강제로 황제의 옷을 벗긴 시기이다.

호적대장을 거두어 들인 주체가 일본늠들인지 아니면 망해가는 대한제국의 정부에서 시행했는지는 알수 없다

무슨 이유로 왜.? 내밀한 이야기를 알고 계신분의 가르침을 바란다

 

참고로 대원군의 둘쩨아들이며 이름은 명복(재황)으로 조선의 왕인 그 어른의 묘호는 고종이고

시호는 태황제(太皇帝). 휘는 형(㷗), 자는 성림(聖臨)이다.

정식 시호는

고종통천융운조극돈륜정성광의명공대덕요준순휘우모탕경응명입기지화신열외훈홍업계기선력건행곤정영의홍휴수강문헌무장인익정효태황제

(高宗統天隆運肇極敦倫正聖光義明功大德堯峻舜徽禹謨湯敬應命立紀至化神烈巍勳洪業啓基宣曆乾行坤定英毅弘休壽康文憲武章仁翼貞孝太皇帝)이렇다는데 .  

이렇게 긴 시호는 왜 필요했고 사용용도가 믄지 어떤 내용인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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