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知고.

668. 진주. 고종후선생묘소.

한유 2025. 5. 13. 17:02

668.

* 경남 고성군 진전면(?) 천마대로변. 

 

.고종후 선생.

본관은 장흥(長興)고씨이다

아버지는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선생이고 그분의  장남이다

1570년(선조 3) 진사가 되고 157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공무원생활을 시작한 고종후선생은

전적 · 감찰 · 예조좌랑을 거쳐 1588년 임피현령(臨陂縣令)이 되었으나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는 곡절을 겪기도 한다만 왜란을 맞아 임금인 선조가 꽁지가 빠지게 도망하는 와중에

아버지 고경명선생의 뜻에 따라 아우 고인후(高因厚)와 

각지에 흩어진 군졸들을 설득해 다시 모아 수원에 있는 광주목사 정윤우(丁允佑)에게 인계하고,

돌아오는 길에 태인에서 아버지인 고경명의 의병군과 합류하였다고 백과는 설명한다.

다시 아버지의 명에 따라 금구 · 김제 · 임피 등지에 격문을 돌려 의병을 모집하고

군량을 모우는 역활로 분투하고 있는데 왜적이 황간 · 영동에서 금산으로 진격한다는 소식에

금산으로 가서 방어사 곽영(郭嶸)과 왜적을 막아 서지만 싸우기도 전에 관군은 붕괴되고 의병군마저 흩어져

고경명 선생은 금산전투에서 결국 전사했고 아버지의 목이 일본군의 창 끝에 걸린 것을 본 둘째 아들 고인후도

피눈물을 삼키며 분전했으나 그도 역시 전사해 창 끝에 목이 걸렸다고 한다.

전투가 종결되고나서 아버지와 동생의 목 없는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이듬해 400여 명의 의병을 규합, 복수의병군(復讐義兵軍)을 조직해 하동에서 

왜적이 진주를 공략한 뒤 호남지방으로 침입하려 하므로 의병을 이끌고 진주성으로 들어간다

김해부사 이종인(李宗仁),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충청병사 황진(黃進), 경상병사 최경회(崔慶會) 등과

진주성을 사수하기로 하는데 . 격전 9일째인 6월 29일 목사 서예원(徐禮元)이 적의 대공세 앞에

겁을 먹고 도망치니 전세가 불리함을 느낀 고종후는 북향을 향해 도망다니는 선조에게  재배한 뒤

나주의 김천일 장군과 논개의 남편 최경회와 함께 남강에 투신, 순절했는데,

이들 세 사람을 ‘삼장사(三壯士)’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정확한 주소를 몰라서 기록하지 못한다. 입석에는 묘소라고 했는데 ....................

고경명 의병장의 가족은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가족이다.

이분들이 순국하고 있을 그 시간에 선조는 똥줄이 타게 북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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