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5
*경기도 여주시 산북면 후리 산 53-1
거란의 수십만 대군을 책상 앞에 앉아 대담한 논리로 물리친 지장(智將)이었다.
서희는 942년(태조 25) 서필(徐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이천, 자는 염윤(廉允)이다.
서희(徐熙)는 한민족 역사 최고의 협상가라 하는것은 1018년 고려를 침략한 거란군 장수
소배압의 동생 소손녕이 "80만 대군이 왔으니, 왕과 신하들이 직접 항복해야 한다."는
공갈 협박에 코웃음을 치고 거란족의 침입을 막고 강동 6주까지 받아낸 고려의 신하이다

993년 요에 복속하지 않은 고려를 공격하기 위해 80만 대군을 이끌고 나섰다.
고려에 들어서 봉산군(蓬山郡)을 공략한 후 진을 치고 고려에 항복하고
송나라와 관계를 끊고 요나라와 국교를 맺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오히려 강동6주(압록강 이남의 흥화진·용주·통주·철주·구주·곽주)를 고려에 양도하고
국교를 맺을 것을 약속받고 회군하게한 인물 서희장군. 장군이라 하지만 그는 사실 문관이었다.

내가 찾아간날이었다
국가지정문화재 승격을 반대하는 동네 주민들의 반발심이 노출되고 있었다
국가지정 문화재가 되면 주변의 땅값이 하락하고 개발이 제한되는등 재산권에 피해가 생기기 때문이다





입구까지 가로 막혀 있다.

농성중인 주민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올라간다.





서희의 업적은 후대의 찬사로 '외교의 귀재', '최고의 협상가'라는 수식어 붙히는 것은
국제정세에 대해 정확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고거란이 침공한 진짜 이유를 꿰뚫어 보고 있었으며
적장에 대한 정확한 분석,상대에 기죽지 않는 배짱이 어우러져 실리와 명분 모두를 얻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기에.
서희가 고려의 최고, 아니 역대 최고의 지장이라 일컬어지는 이유다.


서필은 서희의 아버지 묘인데 서희 장군의 묘소 발끝에 있어서 의아해 했다.





부모의 묘보다 더 윗쪽으로 올라간 것이 서희 장군의 묘였다
율곡 이이선생의 묘와 같은 방식이다 보통은 선대가 윗쪽이 아니던가.?
부모보다도 더 뛰어난 업적을 남긴이는 역장도 가능하다는 야그를 율곡의 묘에서 들어본 적은 있다만
풍수가가 아니니 정확한 사실과 그 연유는 알수 없다.

여기는 경기도 여주의 서희장군의 묘역이다.
'보고知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607. 산청. 국제조각공원 (0) | 2023.03.16 |
|---|---|
| 606. 금산. 이현상생가 (0) | 2022.12.31 |
| 604. 밀양. 어변당 (0) | 2022.12.21 |
| 603. 하동. 칠불사 (0) | 2022.12.21 |
| 602. 금산. 천내리 용호석 (0) | 2022.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