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6.
* 경남 남해시 상주면 양아리 노도.
유배의 땅이지만 마늘의 고장인 남해이다

서포 김만중 선생에게는 좋은 어머니 해평 윤씨 부인이 있었다.
아무리 궁색한 살림에도 자식에게 필요한 서책을 구입함에 값의 고하를 묻지 않았다고 하며
소학·같은 과목은 직접 가르치기도 했다고 한다.
광산김씨의 가통과 어머니 윤씨의 희생적 가르침과 치마바람으로 서포선생은 14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고
1653년에는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김진사가 된다.
이어 높은 벼슬자리까지 올랐지만 성종왕에게 미움을 받아서 이 섬으로 유배를 온다.
그 분이 이 섬에서 먹고자고 하며 유배라는 형벌의 형기를 보낸다.
해서 유명해진 섬이 바로 이 노도이다.

벽련항에서 노도를 왕복하는 도선이다.

숙종의 와이프 인경왕후의 삼촌이기도 하고 문묘에 종사된 해동 18현에 들어가는 김장생 선생의 증손이라하니
뼈다귀 자체가 양반체질로 태어난 그양반은 서인이면서 노론계열이다.
화려한 가문이니 교육열도 높았을 것이고 가풍이나 환경이 어릴때 부터 도련님이었을 것이다.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병자호란때에 강화도에서 순절한 이유로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난다만
어머니 윤씨의 교육열에 의해 과거에 급제하고 출세하지만 당파싸움으로 밀려나서 유배를 당한다.
서포 김만중선생이 유명한것은 사씨 남정기와 구운몽이라는 소설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사람들은 그 양반어른의 행적을 돌아 보기 위하여 노도로 간다.


























기본으로 깔린 예송문제로 당파싸움을 하며 미운털이 박혀 있었고 장희빈의 엄마와 조사석이라는 남자가
부적절한 관계유지가 있었고 그의 딸인 장희빈이 영향력을 발휘하여 엄마의 애인을 승진시키는데 관여한것이 아니냐고
성종에게 따지고 들었다잖아.
남녀가 젊은 청춘을 그냥 보내기가 아까워 염문이 좀 있었다 손 치더라도 그냥 보고 넘겼으면 무탈할 일을
괜히 까발리고 웃음꺼리로 만들어 유배형을 받아 외롭고 배고프게 늙어 병사를 하니 아름다운 삶은 아닌듯 하다.
1686년에는 희빈장씨 일가를 까는 상소를 숙종에게 올려서 숙종의 분노를 사서 선천으로 유배를 간다
1년후 귀양에서 풀려 났지만 기사환국으로 서인이 몰락하면서 서포선생은 이곳 남해 노도로 유배되었다.
어머니 윤씨는 아들을 걱정하다가 사망하지만 김만중은 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1692년 유배지인 남해에서 끝내 사망했다.
남해에서 숙종을 참회시키기 위해 사씨 남정기를 를 집필했다고 한다.
내용상 스토리가 인경왕후+ 장희빈+ 숙종 =사씨 남정기로 귀결되는 모양이다
실제로 숙종은 사씨남정기를 보다가 내용에 분노해 책을 집어던졌다는 구먼,
** 서포 김만중선생이 구운몽을 집필시기는 선천의 귀양지라고 한다
이후 숙종 말년이 가까워 지고 희빈장씨가 권력을 잃은 이후 숙종 24년에관직이 복구되고
1706년 숙종( 32) 효행에 대해 정표(旌表)가 내려졌으니 사후에는 복권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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