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1.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개실1길 29 (쌍림면 합가리 242)
1431년은 성군이라 일컷는 조선조 제 4대왕이신 세종이 선정을 베풀고 있는 시대이다
이때 현재의 밀양 부북면 제대리에서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태어난다
본관은 선산. 아버지는 고령현감을 지낸 김숙자선생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이다
김종직의 아버지인 김숙자선생은 야은 길재의 문인이며.
세종때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고령현감을 지냈다는 김숙자선생은 경학에 밝고 바른 행실을 가진
선비를 추천하는 데 첫번째로 뽑혔다는 것을 보면 대단히 빳빳한 선비기질이 있었드는 반증이다
점필재선생은 단종을 몰아내고 개유정난을 일어켜 세조가 왕질을 하게되자 사표를 내고 처가인 밀양으로 내려간다.
점필재선생의 보직도 화려 하지만 제자들의 면면도 무시하지 못하는 사림의 거두들이다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이승언(李承彦)·홍유손(洪裕孫)·김일손(金馹孫) 등이 그 분들이다
도학정치를 근본으로 하여 훈구파와의 갈등중심에서 중종에게 밀려나온 개혁의 아이콘인 조광조선생은
바로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인 김굉필선생의 제자이다.
1498년(연산군 4년) 제자 김일손이 사관으로 있으면서 사초(史草)에 수록한 조의제문이 문제가 되어,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당하므로 이미 죽은 점필재 김종직선생은 이때부터 유명 인사로 등장한다
숙종 15년에는 송시열과 김수항의 건의로 영의정 추증이 논의되었고, 숙종 35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1431년에 테어나 1492년에 죽은 점필재 김종직선생 본인과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는 마을이다
6세손에 이르러서야 고령군에 정착해 효종 2년(1651)이래 대대로 살게 되었고.
1800년경에 이르러 지금의 집을 짓고 문충공을 불천위묘에 모셨다는것이 펙트로 보인다.
종직선생은 밀양이 출생지이고 종명지이다























지금도 기려지고 있는 선생의 정신이라는것이 도대체 무었인가.
답을 내어 놓지 않은 설명이다.













개실마을의 이모저모.












13번쩨 설명.
김종직 선생의 후처는 54살에 18세남평문씨 소녀와 혼인한것은 37세의 나이 차이인데
인간 개인적 양심과 성리학 윤리에 합당한지는 알수 없다.
당시 양반사회에서는 문제되지 않은것은 문제로 남는다.
장인 장모보다 더 나이가 많았을 가능성도 있다.
분명한것은 여기 이곳 개실마을은 점필재의 한참이나 아랫대의 멀찍한 후손 집성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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