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2.
* 경남 밀양시 활성로 24-183
부산 대구간 고속도로에서도 보이는 반듯한 한옥의 이름이 금시당이다
密陽 今是堂은 지난일은 틀리고 지금이 옳다라는 뜻이란다.
금시당은 조선 명종시절에 이광진이라는 분이 이런 저런 벼슬살이를 하다가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후인들의 교육도 행한곳이 현재의 이곳 당호이기도 하고 선생의 호이기도 하단다
이곳 현 위치에 있는 건물은 금시당과 백곡재 2채로 된 건물이다.
이광진(1517∼?)은 명종 1년(1546)에 문과에 급제하여 중종실록과 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후에 벼슬이 좌부승지에까지 이르렀다니 학식은 대단했다고 할수 있다.
명종 21년(1566)에 처음 지은 금시당은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졌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1743년에 백곡 이지운 선생이 복원한 것이란다.
백곡재는 백곡 이지운을 추모하기 위해 철종 11년(1860)에 세운 건물이다.
이곳에는 이광진이 직접 심은 은행나무가 있있고 운 좋은날 방문하면 활짝 핀 싸리꽃도 볼수 있다


싸리꽃도 바라보며 천천히 둘러 볼 일이다. 입구이다







직접 심었다는 은행나무이다



백송도 한그루 있다







조선조 명종은 대장금에 등장하는 중종의 막내아들로 이복형인 인종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고 나니
문정왕후라는 엄마찬스로 왕이된 인물이다
문정왕후는 중종의 후처로서 후일 자기아들인 경원대군이 명종이란 이름의 왕이되니 수렴청정의 자격을 얻어서
방문에다 발을 치고 정치랍시고 이래라 저래라 하게 되니 나라는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가게된다.
파평윤씨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은 명종과는 외삼촌이 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된다
이쯤되니 동생인 윤원형은 사용할수 있는 모든 끗발을 이용하여 권력을 탐하고 부정부패로 걷어들인 재산이
왕의 재산보다 많았다니 얼매나 긁어 버렸냐 하는것이다
인종의 외삼촌인 대윤인 윤임과 명종의 외삼촌인 소윤인 윤원형은 서로 파평윤씨 집안의
친척관계이지만 권력과 돈 앞에서는 적일 뿐이었다
이쯤에서 나타는 인물이 정난정이란 여자가 있다 여인천하에서 전인화가 문정왕후이고
강수연이는 난정이이며 이덕화가 윤원형으로 나온다.
얼매나 부정부패로 해처먹었는지 민생고는 또 얼매나 힘들었을까.
이때 나타나는 역사의 줄거리 속에는 임꺽정이라는 걸출한 도둑도 등장한다.
보아하니 이곳 금시당 어른이 좌 부승지로 중앙정부에 있을 때이니 윤원형. 윤임. 문정왕후.
정난정이를 몰랐다 할수는 없을것 같다.
벼슬할때의 시절은 먼저 긁어가는 늠이 임자이니 가렴주구로 나라 꼬라지는 개판시절이라 보면 된다.
문정왕후라 하면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권세를 악용하여 친정집식구들에게 부정부패를 다 해처먹게 한 여자이다
역대 왕들의 마누라 중에서 문정왕후만큼 독날한 여편네는 없었을 것이다.
이를 보다못한 남명 조식선생이 오죽했으면 과부가 너무 날뛴다고 했을까.
중종시대에는 조광조. 인종과 명종시대에는 남명 조식. 퇴계 이황.을 비롯한 걸출한 인물들이 많았건만.
같은 나이인 문정왕후의 끗발아래에서 달리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중종의 아들들인 인종과 명종이 후사없이 죽고 나니 엉뚱한 인간 선조가 뒤를 이어 받드니만
임진왜란을 맞이하고 나라자체가 골병들고 만다.
그시대에 이곳 집주인도 벼슬 한자리 하다가 물러나서 금시당이란 집을 살았다 더라.
그 이후의 역사는 이집 은행나무에게 물어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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