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知고.

586. 홍성. 사육신 성삼문 유허지.

한유 2022. 2. 19. 08:08

586.

*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 104번지

 

아이야. 여기는 충청남도 홍성군 노은리이다.

 ‘노은’은 민진후(閔鎭厚, 인현왕후 오빠)와 송시열(宋時烈)이 노산(魯山)의 ‘노’자와

은의(恩義)의 ‘은’자를 따서 동네 이름을 노은이라 했던 데에 기인한다고 하는데.

이동네에 아이가 태어나니 하늘에서 "낳았느냐" 하고 묻는 소리가 3번 들려서

삼문(三問)이라 이름지었다는 일화가 전한다니 귀를 쫑긋해 보았더라.

1435년(세종 17) 생원시에 합격하고, 1438년에 식년시에 급제하고 집현전학사로 뽑힌 뒤 수찬·직집현전을 지냈다.

1447년 문과 중시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1453년 좌사간, 1454년 집현전부제학·예조참의를 거쳐

1455년 예방승지가 되었다는 그분은 사육신인 성삼문 선생이다.

 

세조 란 조선의 제 7대 임금은 조카를 밀어내고 왕이 되더니만 반대파인 성승· 이개· 하위지· 유응부·

박중림· 김문기· 박쟁(朴崝) 등을 군기감(軍器監) 앞에서 능지처형(凌遲處刑)으로 죽인다 .

거사 관련자 70여 명은 각각 죄명에 따라 혹형· 처형· 유배 등을 당했는데,

그중에서도 성삼문은 멸문(滅門)의 참화를 당했다.

아버지 성승을 비롯하여 동생인  성삼빙(三聘)·  성삼고(三顧)·  성삼성(三省)과

아들  맹첨(孟瞻)· 맹년(孟年)· 맹종(孟終) 등 남자는 젖먹이까지도 살해되어 혈손이 끊기고

아내와 제수. 질녀. 딸은 관비(官婢)가 되었으며, 가산은 몰수되고 마는것이다.

 

비문은 비문전문가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김진상(金鎭商)이 썼으며, 전액은 유척기(兪拓基)가 썼다

유허비 앞 길건너에 있는 우물이다

성삼문은 아버지 성승, 박중림(朴仲林)· 박팽년· 유응부· 권자신(權自愼)·이개· 유성원· 윤영손(尹鈴孫)·

김질(金礩) 등과 함께 세조를 제거하고 단종을 복위시키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세웠다.

1456년(세조 2) 6월 세조가 상왕인 단종과 함께 창덕궁에서 명나라 사신을 위한 향응을 베풀기로 한 것을

기회로 삼아, 왕의 운검(雲劒 : 큰 칼을 들고 왕을 시위하는 것)을 맡은 성승과 유응부로 하여금

세조와 측근을 처치하도록 계획했다만. 그러나 거사 당일 갑자기 상당군 한명회의  제의로 세자와 운검의 입장이 폐지되자

거사를 중지하고 후일을 도모하기로 했다.

계획에 차질이 생기자 거사가 탄로날 것을 두려워 한 김질이 세조에게 이를 밀고하는 바람에

다른 모의자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분은 매화의 맑은 향과 절개의 상징 대나무를 사랑하였기에 호를 매죽헌이라 하였나니......

 

노은단.

이곳은 성삼문(成三問)의 외조부 박담(朴膽)의 고택이 있던 곳이며, 성삼문이 출생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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