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4.
충남 당진시 송악읍 부곡리 251-12
배고픈 시절에 사는것이 암울한 시절에 상록수를 한그루 심은 사람이 있다.
아이야.그분은 당진 필경사란 집에 살았더라.




육필원고


필경사.
필경사라는 이름의 이 집은 항일시인이자 계몽문학의 선구자인 심훈 선생(1901∼1936)의 집이다
「상록수」를 집필한 후 1934년에 낙향하여 직접 설계하고 지은 곳으로, ‘필경사(筆耕舍)’라는 당호를 붙였다.
당진은 서해에 접한 땅이고 그 당진에 심훈선생이 낙향하여 지은 집 필경사가 있다
나는 필경사와 옆에 있는 기념관을 둘러 보고 있는 중이다.
어린 그시절 웬만한이는 읽었을 상록수의 진본이 있는 집이다





26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시대의 여류 선각자 최용신 선생.


1935년 동아일보사의 ‘창간15주년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당선되었고,
같은 해 9월 10일부터 1936년 2월 15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

상록수의 줄거리........
.
고등농업학교 학생인 박동혁(朴東赫)과 여자신학교 학생 채영신(蔡永信)은
모신문사가 주최한 학생농촌계몽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우수 대원으로 뽑혀
보고회에서 감상담을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알게 된다.
두 사람은 학업을 중단하고서 고향을 지키러 내려가기로 약속한다.
박동혁은 고향인 한곡리로, 채영신은 기독교청년회연합회 특파로 경기도 청석골[靑石洞]로
각각 내려가 일종의 새마을 운동같은 농촌사업을 벌려간다
두 사람은 각자의 형편과 사업의 진행 과정을 편지로 알리며 서로 의논한다.
두 사람의 동지 의식은 사랑으로 발전하지만,
3년쯤 지나 후진에게 일을 맡길 수 있을 때에 혼인하기로 약속한다.
그러던 중.
채영신은 과로와 영양실조로 점차 몸이 쇠약해지다가 학원 낙성식장에서
하객으로 초대된 박동혁이 보는 앞에서 맹장염을 일으켜 쓰러지고 만다.
와중에 박동혁은 악덕지주 강기천(姜基千)의 농간에 휘말리다가 투옥된다.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채영신은 일본으로 요양 겸 유학을 떠나나 곧 돌아온다.
다시 일에 몰두한 그녀는 각기병에 맹장염 재발로 숨을 거둔다.
출감한 박동혁은 채영신의 죽음을 알고서 비탄에 잠기나, 곧 두 사람 몫을 해낼 것을 굳게 맹세한다.

우리는 손기정 선생이라고 하지만 그 분은 마라톤 영웅 손기정선생을 손군이라고 했구먼.


이 주택은 상록수의 작가 심훈 선생이 직접 설계하였다고 전한다
당시의 주택구조로는 볼수 없는 화장실과 욕실을 실내에 두게 했다
또한 유리창을 달아 내부를 밝게 처리함으로써 전통주거의 실내와는 다르게 만들었다.




동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 집은 앞으로 넓은 들이 펼쳐지고 북동쪽으로 서해 바다가 바라다 보인다.
주변에 몇 채의 민가와 함께 자리잡고 있는 이 집은 대문이나 부속채 없이 ‘ㅡ자형 단독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집 뒤로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앞쪽에는 최근 상록수문화관을 건립해 두었다.
필경사의 평면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초가집이어서 외관으로 보면
전통적인 초가집 모양을 하고 있으나 내부 평면은
1930년대 도시주택의 기능에 맞추어 생활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전면을 바라보고 우측에서 2번째 칸을 현관으로 하고 현관을 들어서면
우측에 전후 2칸을 터서 큰 방을 만들고 이 방을 집필실로 사용하였다.
마루방 뒤편 한쪽은 안방이고 다른 한쪽은 현관 뒤쪽 한 칸과 합쳐 부엌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2칸의 부엌 중 한 칸은 상부에 다락을 두고 안방에서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마루방과 사랑방 외부에 작은 베란다를 설치하여 화분을 놓도록 했다



밀레같은 간지러운 그림을 그리느니
반고호의 필치로 뭉툭하고 굵은 필력을 빌어 내친구의 얼굴을 그리고 싶소.

심훈선생.
일제강점기에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썼다.
본관은 청송. 본명은 대섭, 아명은 삼준·삼보. 호는 해풍. 백랑이라는 별호도 사용했다.
1915년 서울교동보통학교를 나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며,
1917년 왕족인 이해영과 결혼했다.
1919년 3·1운동 때 투옥되었다가 집행유예로 석방된 뒤 이 사건으로 퇴학당했으며,
1920년부터 3년간 중국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이후 구여성(?) 이해영과는 이혼한다.
1926년 〈동아일보〉에 한국 최초의 영화소설인 〈탈춤〉을 연재했으며,
그 유명한 공산주의자 박헌영·그리고 임원근·허정숙 등과 함께
'철필구락부사건'으로 동아일보사에서 해직당했다.
1930년 신여성 안정옥(安貞玉)과 재혼했다.
1931년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하다가
이듬해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로 내려가 창작생활에 힘을 쏟았다.
1933년 8월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으로 잠시 근무했고,
1935년 장편 상록수가 〈동아일보〉 발간 15주년 기념 현상모집에 당선되자
이때 받은 상금으로 상록학원을 설립했으며,
1936년 〈상록수〉를 직접 각색·감독해 영화로 만들려고 했으나 실현하지 못했다고 한다.
심훈 선생은 그냥 소설가라고만 해버릴 심훈선생이 아닌 시대의 선각자였다.

경성보통고등학교>>>>> 지금의 경기고등학교의 전신이다
당진 필경사를 다녀온 그 이후.
내게 있어 가장 강열한 인상을 준 이는 박헌영으로 변했다
그의 행적을 찾아 가보려고 나는 두번이나 예산 신양게이트를 내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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