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보고知고.

117. 영천. 포은 정몽주 생가.

한유(閑裕) 2017. 4. 7. 19:44

117.

* 경북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

 

충성을 다하는 신하를 충신이라 한다.

우리가 충신이라하면 고려말의 포은 정몽주선생을 한번쯤 꼽는다.

조선조 태조 이성계의 아들이고 나중에 태종이되는 이방원이가 이양반을 불러놓고

 

이런들 엇더며 져런들 엇더료

만수산 드렁츩이 얼거진들 엇더리

우리도 이치 얼거져 백년까지 누리이라.

 

하고 포은 정몽주에게 말을하니 포은 정몽주는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라고 대답한다.

 

( 같이먹고 같이 마시고 같이 즐기면서 살믄 안되것소,? 하니까.

택도없는소리 하지 말거라 네깐넘들하고는 몬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하여가와 단심가이다.

고려 말 정몽주(鄭夢周)가 이성계(李成桂)를 문병하려고 찾아간 자리에서 이방원은 하여가로

포은 정몽주에게 한편이 되기를 희망하지만 정몽주는 단심가로 대답한다 

이에 이방원이는 정몽주는 도저히 자기편이 될수없음을 알고

조영규(趙英珪) 등을 보내어 선죽교 돌다리에서 철퇴를 휘둘러 포은 정몽주를 살해한다

선죽교 돌다리에는 아직도 정몽주의 혈흔이 남아 있다카네.

 

죽을지언정 고려의 충신이되고자한 포은 정몽주선생의 생가지를 찾았더랬다.

국가를 위한 충성의 요람지이고 군인간부를 육성하는 학교인

육군 제3사관학교의 뒤를 돌아 생가지를 향해 가는데 먼저 유허비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포은 정몽주 선생이 부친상을 당하여 3년상을 지내고 모친상을 당하여 또 3년상을 지냈다하여

우항리를 효자리로 했다는 내용이 아닌가 싶다.

 

 

유허비 주위의 가을 풍경이다.

포은 정몽주선생의 생가터로 들어간다.

 

포은선생 탄생지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입구에 있는 詩글들을 살펴본다.

 

 

 

 

 

 

중국 대항산에서 생산되는 홍보석이라는 돌로서 정몽주선생의 24대 후손이 기증한걸로 되어있다.

단(丹) 이라는 글씨에 개구리 한마리가 ...........장난스레........찍어보았다.

생가지 복원을 한창 조성중이었다.

 

 

 

 

 

생가지라고 조성한지가 얼마되지 않아서 별 볼꺼리는 없다마는  고려말 충신인 포은 정몽주선생이 전정권에 배신하지 않고

죽음으로 마무리한 충성정신이 믄가하고 한번쯤 생각하게하는 의미는 있었다.

목은(牧隱)이색(李穡),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길재(吉再)를  우리는 三隱이라고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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