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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사천. 세종.단종태실

한유(閑裕) 2018. 5. 16. 06:32

243.

* 경남 사천시 곤명면 은사리

 

여기 둥글게 생긴 산이 단종의 태실지이다.

 

 

단종...... 조사해본 바에 의하면.

왕비는 여산부원군(礪山府元君)송현수(宋玹壽)의 딸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宋氏)이다.

1448년(세종 30) 8세 때 의정부의 청으로 왕세손에 책봉되고,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453년 10월 숙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정권을 빼앗고자

권람(權擥)·한명회(韓明澮) 등 측근들의 계책에 따라 좌의정 김종서를 그의 집에서 죽이고,

영의정 황보 인, 병조판서 조극관(趙克寬), 이조판서 민신(閔伸),

우찬성 이양(李穰) 등을 대궐로 불러와서 죽였다.

이때에 생긴 말이 살생부이다 

그들의 죄명은 숙부인 안평대군(安平大君)을 추대해 종사를 위태롭게 했다는 것이다.

정권은 수양대군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단종은 어쩔 수 없이 수양대군을 영의정으로 삼아 군국의 중대한 일을 모두 위임시켜 처리하게 하였다.

또, 당시 거사에 참가한 사람들을 정난공신(靖難功臣)으로 인정하여 모두 공신 칭호를 주기까지 하였다.

 

 

 

실권을 잡게 된 수양대군은 지방에도 자기 세력을 심기 위해 지방관을 교체시키던 중,

이징옥(李澄玉)의 난을 겪기도 하였다.

수양대군이 조정의 여러 신하들과 의논하여 왕의 측근인

금성대군(錦城大君) 이하 여러 종친·궁인 및 신하들을 모두 죄인으로 몰아

각 지방에 유배시키기를 요구하자, 하는 수 없이 그대로 따랐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단종은 마침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이 되어 수강궁(壽康宮)으로 옮겨 살았다.

1456년(세조 2) 6월 상왕을 복위시키려는 사건이 일어났다.

복위 사건의 주동 인물은 지난날 집현전학사 출신인 몇몇 문신과

성승(成勝)과 유응부(兪應孚) 등 무신들이었다.

이들은 세종과 문종에게 특별한 은혜를 입었으며,

또 원손(元孫 : 端宗)을 보호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은 충신들이었다.

이들은 명나라 사신을 창덕궁에 초대해 연회하는 날,

그 자리에서 세조를 죽이고 측근 세력도 제거한 뒤 단종을 복위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계획이 실행되기도 전에 동모자인 김질(金礩)의 고발로 결국 실패하고,

이 사건의 주동 인물 중 많은 사람이 사형을 받게 되었다.

 

 

 

이에 1457년 6월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었다.

영월에서 유폐 생활을 하는 동안, 매일같이 관풍매죽루(觀風梅竹樓)에 올라

시를 지어 울적한 회포를 달래기도 하였다.

이 해 9월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노산군의 숙부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다시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었다.

이에 다시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강봉되었다가 10월 마침내 죽음을 당하였다.

 

벌초가 끝난 언덕을 슬금 슬금 올라가니

 

 

 

 

 

태실지 자리는 원래 명당자리라고 소문이 난터라 그런지 다른 사람이 묘를 써 놓았더라.

그가 친일 매국노라고 하네.

최연국이라는 인물.

 

 

 

 

 

인근에 있는 세종대왕 태실지

 

 

 

 

 

 

 

 

 

태실지 앞 풍경

 

 

 

건너편 길에서 본 세종대왕 태실지

 

 

 

세종이야 더 말할 나위없는 성군이 아니신가,

그분의 태로 이곳 경남 사천에다 태실을 만들었더라.

한양에서의 거리가 얼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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