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보고知고.

315. 항우와 우희

한유(閑裕) 2018. 5. 29. 06:55

315.

* 인천 차이나타운.

 

보통 책을 좀 보았다는 사람들은 중국 고전으로 삼국지와 초한지를

한번은 읽어 보았으리라

고사성어에 자주 등장하는 드라마가 초한자이다.

초한지는 기원전 200년도 쯤에 발생했던 일로 주인공들은 패왕 항우와 고조 유방이다.

초나라와 한(漢)나라의 왕 들이다.

진나라의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고 아방궁을 만들고 폭정을 하면서 진나라에게 망한 6국들의 후손들은

반란을 일으키려했고 그중 대표인물이 항량이었다.

 

 

단편적이 드라마를 짧게 짧게 나열해 본다.

 

등장인물.항우는 오추(항우의 애마), 와 우희(항우의 아내)를 얻게 된다.

게다가 영포라는 장수까지 얻으며 항량의 진영은 사기가 충천했는데

거기에 겹경사로 유방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항백의 진영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항량은 다시 초나라를 세우고 왕으로 초나라 황실의 후손인 의제를 내세운다.

의제가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에 가장 빨리 도착한 사람을 관중왕으로 만들고

그 다음으로 온 사람이 신하가 되라고 말한다.

 

유방.

 

그녀의 본명은 '꿩'을 의미하는 '치(雉)'였으며, 기원전 240년 전후에 태어난 사람이다.
그녀의 아버지 여문(呂文)은 산동 출신의 유지였는데,

가족들을 데리고 유방의 고향인 패현(현재의 강소성 서주시)으로 이주했으며

그곳에서 현령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았다.

여치는 이곳에서 마을의 정장(亭長)

 

정장은 수십 호나 수백 호의 마을에서 행정을 책임지는 최하급관리인

유방을 만나 그와 결혼했으며 두 아이를 낳았다.

 첫째가 후일 노원공주(盧元公主)로 불리게 될 딸이고,

둘째가 황제를 계승하게 될 유영(劉盈)이었다.

 

여후(유방의 처)

 

 

항우

 

 

우희.

 

 

한편 항우는 제를 토벌중 우희라는 미인을 얻는다

 '패왕별희'라는 중국의 경극(京劇)이 있다.

왕과 한 여인의 애절한 사랑과 전장에서 죽음으로 이별하는 내용인데

그 경극의 주인공이 바로 '항우(項羽)'와 당시의 절세가인(絶世佳人)인 '우희(虞姬)'다.

항우와 우희의 슬픈 사랑이야기는 22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많은 사람들의 심금(心琴)을 울리고 있다.

항우는 중국 역사상(歷史上) 최고의 명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용장(勇將) 가운데 한사람이다.

 

 

유방이 함양에 도착했을 때 항우는 장한과 싸우다가 삼촌인 항량을 잃게 되나,

결국 진나라에서 장한을 버려서 장한은 항우에게 투항한다.

항우가 어느날 투항한 진나라 병사들이 불평하는 것을 듣고 화가나서

투항한 진나라의 20만 대군을 몰살시킨다.

그 후 항우가 함양에 도착하자 유방은 함곡관에서 문을 굳게 닫고 항우가 못 들어오게 한다.

 

대충 이렇게 두서없이 방대한 초한지를  전개해 본다.

 

 

 

 

 

항우의 책사 범증.

항우에게 밀려나 고향으로 가는 도중에 울화병으로 죽는다.

 

항우는 키가 8척에 힘이 세고 장수의 풍모를 지녔으며 재기가 뛰어나고

군사적인 전략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의심이 많고 아량이 넓지 않아 수하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으며

항복하는 사람까지 무참하게 응징하는 잔인성을 보여 민심을 잃었다.

그랬기에 유방과 함께 봉기를 일으켜 진나라를 멸망시키고도

천하를 얻는 데는 실패했고, 5년 만에 자멸하게 되었다.

 

 

 

 

 

 

 

 

 

 

 

 

 

 

항우는 초나라의 대장군 항연의 손자로, 기원전 232년 하상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적(籍), 자는 우(羽)다. 아버지가 죽자 항우는 반진 봉기군이었던 숙부 항량을 따라

오중으로 이주했고, 그에게서 병법을 배웠다.

기원전 210년 시황제가 회계산으로 순행을 나왔을 때 행렬을 구경하던 항우는

“저 사람 대신 내가 저 자리를 차지하겠다!”라고 말하며 천하 제패의 꿈을 꾸었다고 한다.

 

 

 

 

 

역발산 기개.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하다.
즉, 세상을 뒤엎을 정도로 강한 힘과 기운을 일컫는 말.

 

 

 

 

한신장군,

그로 인하여 많은 고사성어가 생긴다.

 

 

시정잡배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가는 치욕을 참고 훗날 용서하고

선정을 베풀어  과하지욕(胯下之辱)이란 고사를 만들었고,

또 아낙네로부터 받은 작은 은혜를 잊지 않고 후에 크게 보답하여

일반천금(一飯千金)이란 고사를 만들었으며,

또한 유방과의 대화에서 후세에 지금도 자주 쓰이는 고사인

다다익선 (多多益善)이라는 표현을 만들어냈으며,

한편 병법의 최악의 수이자 금기인 배수진(背水陣)을

전략적 전술 혹은 결사적 각오라는 의미로 재탄생시켰으며,

훗날 항우와의 마지막 결전인 해하전투에서 승리하여 그를 사지로 몰아넣어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말을 나오게 하였다.

한신이 120만 대군을 이끌고 항우의 30만대군과 격돌하여 최종적으로 한신은 100 만

항우는 28명만 남게 된다. (그 과정중에 생긴말이 사면초가다.)

한신이 초나라 진영에 초나라 노래를 불러 항우가 벌써 초나라가 점령당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전쟁에서 지게 만든다.

 

그날 밤 항우는 부하 8백여 명과 함께 한의 포위망을 뚫고 도망쳤다.

그러나 도중에 길을 잃어버리자, 농부에게 길을 물었지만 그가 일부러 잘못 가르쳐 주어

유방이 보낸 5천의 기병에게 추격을 당했다. 결국 살아남은 항우의 군사는 기마병 28명뿐이었다.

항우는 포위망을 뚫고 동쪽으로 달려가 우장(烏江. 지금의 안후이 성 화현 경내)에 이르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항우가 죽음으로써 4년여에 걸친 초(楚)와 한(漢)의 전쟁은 그 막을 내렸다.

진승·오광이 반란을 일으킨 이후 진(秦)을 무너뜨린 장본인은 항우였지만,

마지막 승리의 깃발을 올린 것은 유방이었다.

기원전 202년 2월, 유방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가 바로 한(漢)제국의 고조(高祖)이다.

 

 

《사기》에는 항우가 한신의 군대에게 포위된 장면이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군량미도 떨어지고 탈주병이 늘어 항우의 군대에 남아 있는 병사의 수는 매우 적었다.

밤이 되자 유방의 진영에서는 항우의 진영을 향해 “한군이 초나라를 점령했는가?

어찌하여 초나라 군사들이 이리도 많은가!”라는 초나라 노래를 불렀다.

이에 항우는 술로 자신을 위로하며 애첩 우희(虞姬)를 바라보고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었노라! 불운하여 명마마저 달릴 줄 모르네.

명마가 달리지 않으니 어찌할 거나. 우희여 우희여 너를 장차 어찌할 거나.”라는 노래를 읊조렸다.

우희가 슬픈 노래로 화답했고 항우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자

주위의 병사들도 함께 울며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또한 우희가 항우가 나가기 전 자결하는데 거기서 유래된 게 패왕별희이다.

항우는 자신을 데려가기 위해 온 사람에게 오추를 주고 28명의 병사를 보내고,

결국 항우는 오강에서 자살한다.

'가고. 보고知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317. 청도. 난포고택.  (0) 2018.05.31
316. 인천. 차이나타운  (0) 2018.05.29
314. 금산. 이성계 태실.  (0) 2018.05.29
313. 청주. 송상현 묘역.  (0) 2018.05.29
312. 옥천. 김문기선생  (0) 2018.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