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보고知고.

280. 밀양. 강동구(江東邱)

한유(閑裕) 2018. 5. 20. 02:07

 280.

* 경남 밀양시 초동면 오방리

 

유물과 유적지는 참 허술하게 동네의 한켠에 숨어 있기도 하다.

수산에서 창녕 부곡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오방리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 무덤같이 생긴것이 있다.

하지만 무덤이 아니다. 이름하여 강동구라라는 것이다.

무덤같이 생긴 邱가 하나 있다는 야그다邱 ....... 땅이름 邱을 쓰는 강동구이다.

江東邱가 무어냐.?강동의 언덕이란 뜻이란다

다시말해서 평안도 강동의 흙으로 만든 흙무더기이다

 

강동구의 전설은 이렇다.

 

조선 선조 때 효행으로 출천(出天)의 존재로 널리 알려진 취원당(聚遠堂)

조광익(曺光益)과 그의 아우인 지산(芝山) 호익(好益)의 우의와

이웃 사람들의 정의(情義)를 기념하여 이름붙인 지역이다.
당시 조광익의 동생 호익은 경상도 도사(都事)에게 의하여 불량토호로 모함을 받아

평안도 강동 땅으로 유배되었는데, 조광익은 보고싶은 아우를 만나기 위해

평안도사를 자원해 아우의 유배지로 갔다.

그곳에서 형제가 만났으나 조광익은 얼마 못 가 병을 얻어 죽었다.
이에, 형제의 우애에 감복한 그곳 사람들이 강동 땅의 흙을 싸들고 장례에 참례하기 위하여

이곳 오방리까지 왔는데 이미 장례를 치르고 난 후였다.

그래서 가지고 온 흙으로 묘 앞에 둔덕을 쌓은 후 대나무를 심어놓고 돌아갔는데,

후세 사람들이 그곳을 강동구라고 하였다.

 

 

 

이 지방도를 사이에 두고 강동구가 있다

조광익은 1537년(중종 32)에 태어났고,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61년(명종 16)에 생원이 되고, 1564년 별시문과 을과(乙科) 1위로 급제하였으며,

1576년(선조 9) 중시(重試)에 갑과(甲科) 장원을 하여 형조정랑(刑曹正郞)을 지냈다.

조광익(曺光益)은 본관은 창녕. 자는 가회(可晦), 호는 취원당(聚遠堂)이다.

고조는 군수(郡守) 조말손(曺末孫)이며,

증조는 청백리(淸白吏) 조치우(曺致虞), 조부는 군수(郡守) 조효연(曺孝淵)이다.

효심이 깊은 조광익은 친상(親喪)을 당해 상례(喪禮)가 어김이 없었고,

어머니를 지극히 봉양하니 향리는 물론 밀양·창원·영천의 사림(士林)이 감복했고,

순찰사(巡察使)가 그의 효행을 글로 써서 왕에게 올리기도 했다.

1572년(선조 5) 동짓달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3년간 여묘(廬墓)를 했는데, 건강을 크게 해쳐

정구(鄭逑)·율곡 이이(李珥) 등 제현들이 글로써 타일렀으며,

도내 사림들이 그의 효행을 적어 조정(朝廷)에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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