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知고.

793. 영천. 화랑설화마을.

한유 2025. 10. 6. 19:28

793.

* 영천시 금호읍 황정리 8-3  

 

화랑. 

내 나이쯤 되는 나이인 사람들은 화랑이라는 담배이름도 있었다고 기억한다.

화랑이 믄가.?

화랑(花郞)의 글자 뜻은 '꽃같이 아름다운 사내'로서 역사적 기원은 원화(源花)와 닿아 있다.

삼국사기에 '잘생긴 남자를 곱게 단장시켜 화랑으로 삼았다'는 기록을 보아

아름답다는 의미로 꽃(花)이라 불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해석에 의하면 화랑은 잘생긴것을 기본으로  즉 젊은 남자라는 뜻이 된다.

신라가 전국통일을 한 기본적 인재가 화랑이란 단체인 것이다

김해 금관가야의 마지막 산청에 누워있는 구형왕. 김구해의 증손자로, 관산성 전투의 김무력.

아버지는 진천시장을 역임한 김서현이고 어무이는 만명부인이시다

김유신은 진천의 옛이름인 만노군 태수인즉 지금의 군수인 김서현의 아들로 진평왕시절

진천읍 상계리 계양마을에서 태어난것으로 되어 있다.

팔공산 8부 능선에 있는 ‘중암암’은  은해사에서 4.8㎞ 거리에 있는

암자로 중암암(中岩庵)을 ‘돌구멍 절’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대웅전 내부 우측 벽화에는 중암암과 관련된 김유신 장군, 원효대사, 심지왕사의 초상이 나란히 그려져 있다네 .

김유신이  17세 때 화랑 시절 이곳에서 심신을 단련하며 마셨다는 석간수(장군수)가 있단다

김유신이 마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증명할길은 없는듯 하다.

팔공산 중암암을 인연으로 영천에서 화랑마을을 만든듯하다만 청통면 은해사하고는 거리가 멀다.

629년(진평왕 51) 신라의 임영리(任永里)·용춘(龍春)·백룡(白龍)·대인(大因)·

서현(舒玄) 등이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의 낭비성을 공격하여 김유신은 중당당주(中幢幢主)로 참전하여

신라군을 승리로 이끌어 5천여 명을 목베고

(...................이게 인간이 할 짓인가.?)

 

1천여 명을 사로잡는 전과를 올렸다고 한다.

이러한 짓꺼리를 화랑출신들이 자행했다. 하여 출세하여

김유신이 압량주 군주도 했다는데 영천과는 관련이 없다.

압량주는 ..........

지금의 경산시 전체와 대구시 수성구 고산 일대, 동구 공산·동촌·안심 일대였다는데..............

중암암을 빼고는 화랑스토리타운의 유래를 알지 못하였다.

 

어린것이>>>>>>>............

황당하지만 꿈은 환타지아로 아무렇게도 꾸어진다.

화랑설화마을이라해서 일반적인 마을(동네)로 착각할수도 있지만 

화랑설화마을은 일종의 테마공원이다.

아이들 데빌고 아이들 위주로 시간때우기 하려면 반나절 정도는 즐길수 있을것 같았다.

나는 여기서 시간을 때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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