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知고.

697. 창녕.대원군 척화비

한유 2025. 5. 28. 18:22

697.

*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1번지

 

창녕 만옥정 공원경내의 세번쩨 역사 스토리이다

대원군 척화비는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노량로183번길 27 에서도 만났고.

양산 상북면 소토리에서도 만난 대원군 척화비이다

자기 아부지 남연군의 묘를 독일 도둑늠 오페르트라는 인간이 금은 보화가 있을꺼라 추측하고는 도굴을 감행한다

하지만 도굴을 염려한 대원군 이하응의 선견지명에 쇳물을 부어 덮고 강회(회가루와 흙)을 섞어

밀봉한 묘이니 도굴은 실패한다

독일 도둑 오페르트라는 늠이 제 아무리 재간이 있다 한들 도굴은 불가함으로 끝을 낸다

하지만 즈그 아부지의 묘를 파 헤치는 파묘행위에 대원군은 꼭지가 돌아 버린것이다.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라는  12자를 새기고  그 옆에다

戒我萬年 子孫 丙寅作 辛未立(계아만년 자손 병인작 신미입)

나름대로 해석하면 서양  오랑캐가 나라 곳곳에 들락거리며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곧 잘 지내 보자는 것이고 화친을 하자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행동이니 알아서들 처신하라는 내용이고

“나의 만년 자손에게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운다.

요로콤 적혀 있다

대원군에게는 아버지이고 고종에게는 할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능지처참으로 斥和해 버리자고 간만에 부자간 의견일치를 본 것이다. 

하지만 1882년 8월 5일 고종은 “이제는 현실적으로 양늠들과 수호를 맺은 이상  척양(斥洋)비를

뽑아버리도록 하라.”고 척화비를 철거를 명하지만 임기가 끝나가는 고종의 래임덕 현상으로

현령들이 말을 잘 듣지 않았나 보다

현재 버젓이 서있는 척화비를 내가 발견한것만 해도 3개나 된다

역사적으로는 1866년(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략한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흥선대원군은

“서양 오랑캐가 침입해 오는데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 먹는 것이며,

그들과 교역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내용의 글을 지어 척화(斥和)했다고 한다.

여기는 창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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