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보고知고.

646. 합천. 운석충돌지

한유(閑裕) 2025. 5. 9. 15:26

646.

경남 합천군 대암산

 

경주 첨성대야말로 누가 뭐래도 별을 관찰하는 장소이다.

별이 믄가.?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섯불리 답을 말할수가 없다.

별이 빛나는 밤은 온갖 감성적 기운이 지배하는 우주인것이다라고 우문현답을

이곳 대암산 정상에서 정의해 버린다

우주는 그냥 끝이 없는 별밭공간이라고  합천 대암산에서 결정해 버렸다

 

그럼 운석[隕石]이 믄가.?

유성이 대기 중에서 다 타지 아니하고 땅 위로 떨어진 것을 운석이라 한다

그럼. 유성이 믄가.?

암석이나 금속 물질의 입자나 조그마한 조각이 지구 대기로 진입하여 증발할  하늘에 나타나는 빛줄기. 

또는 떨어지는 천체를 유성이라고 사전이 고로콤 말한다 

 

밤하늘에는 떨어지는 별을 두고 별똥별이라 한다

별똥별이 믄고하니 우주에  있던 물체가 지구의 대기권에 들어와 공기와의 마찰과 압축으로 말미암아 

빛을 내면서 떨어지는 운석이라고 정의하니 그말이 그말이다.

 

여기 이곳이 운석이 떨어진 곳이라 한다

백과는 이렇게 설명했다.

합천 운석충돌구는 약 5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의 끝자락 시기에

지름 약 200미터 크기의 운석이 충돌하면서 만들어졌다.

초계-적중 지역의 북동쪽 하늘로부터 초음속의 빛의 속도로 하강하여 

1400메가톤이나 되는 운석 충돌 에너지가 발생했고 약 7㎞의 구덩이가 만들어졌으며,

충격파로 뜯기고 밀려나간 바위들은 구덩이의 가장자리를 둘러싼 높은 산지로 남게 되었단다.

하니 내가 올라있는 이 대암산도 그리하여 생긴것이리라

구덩이는 호수가 되고, 최대 70m가 넘는 호수는  퇴적층으로 메꾸어지고  쌓아지니

분지가  되더니만 아래의 모습으로 사람들이 사는 면단위가 형성된것이다

사람들이 시추코어 조사 130m에서 캐낸 광물을  분석하니 운석 충돌에 의해 만들어진 원뿔암이 발견되었고,

142m 깊이에서 발견된 충격 각력암층의 사암에서 강력한 충격을 받았을 때 생성되는

평면 변형구조가 확인되는 석영광물입자를 확인했다.

국제학술지 ‘곤드와나리서치’에 등재되었고 합천 운석충돌구가 세상에 알려진것이다

 

지표면 70미터 아래까지 구덩이가 생겼을 정도의 충격파는 따마득하게 먼 옛날이 되었고

신라시대에 와서 전략적인 요충지로 대암산은 그 역활을 하게된다

합천은  삼한의 변한 중 가장 큰 고을이라 해서 대야성이라 칭하였다.

지금은 농촌지역의 인구감소로 소도시로 전락 했지만  백제와 접경지대로 군사 요충지로서

삼국 간의 항쟁이 격화되던 7세기에는 신라의 대백제 방어에서 최전선 역할을 했다.
642년 백제 의자왕이 대야성을 함락시키자 신라는 김유신으로 백제군을 공격하는 한편,

김춘추를 보내어 외교적 도움을 요청했다.

김춘추는 당 태종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대야성을 탈환했다.

661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킨 직후에는 이곳에 다시 주가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13년(태종 13) 지금의 이름인 합천으로 개칭되었다.

 

대암산정에서 내려다 보는 합천에는 대야성 함략이라는 역사 사연이 쪼매 그려져 있다

신라의 대백제 방어에서 최전선이 합천(대야성)지역이었는데

당시 김춘추의 사위인 김품석이란자는 이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김품석은 여러가지로

품행이 단정하지 못하고 근무태도가 불량했던 모양이다

대야성 함략의 원인제공은 김품석이 여자를 너무 밝히는것에 있었다고 봐도 될성싶다.

(여자 좋아하다가 망한 남자가 여기에도 있다)

김품석이라는 자가 검일이라는 자기부하의 마누라를 손봐버린것이다

겁탈인지 통정인지는 알수 없어도 사건은 그렇게 전개되었고 검일은 앙심을 품게 된다. 

 642년 8월, 백제 의자왕이 보낸 윤충이란 백제 장수가 침입해 오니 

김품석은 그 위세에 놀라 감히 반격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을떄에.

원한의 검일은 백제 윤충과 내통해 대야성의 창고에 불을 질렀고,

이를 본 백성들과 군사들은 동요하며 도망치니 품석이 놀라서 항복한다며 성문을 열고

항복한 신라의 병사들이 두손에 백기를 들고 먼저 성밖으로 나가는데.......매복해있던 백제의 병사들이

포로대우도 하지않고 일제히 공격을 해서 그들을 죽여버렸다.

이 소식에 김품석은  아내 고타소와 자식을 죽인 후, 자신의 목을 찔러 자결한다

결국 대야성은 함략된다

이때 함께 죽은 품석의 아내는 이후 태종 무열왕이되는 김춘추의 딸이었다

 

(김춘추는 딸의 죽음을 듣고 하루 종일 기둥에 기대어 서서 눈도 깜박이지 않았고,

사람이나 물건이 자기 앞을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김춘추는 원인제공한 사위 김품석의 인간 됨됨이는 생각지도 않고 원한을 가진다

이후 신라는 김유신으로 백제군을 공격하는 한편, 

김춘추는 당 태종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대야성을 탈환했다.

661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킨 직후에는 이곳에 다시 주가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13년(태종 13) 지금의 이름인 합천으로 개칭되었다고 하며

현재 이곳은 초팔성이라 전해 오는곳이다.

망루가 있는 자리에 초소쯤은 분명히 있었겠다 싶다

 

 

합천운석 충돌지가 훤히 보이는 대암산 정상이다.

여기까지 승용차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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