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
*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20-1

한국 근대시사의 불후의 업적인 〈님의 침묵〉을 펴냈고, 한국 근대 불교계에서 혁신적인 사상과 활동을 펼쳤으며,
3·1독립선언에 민족대표로 참가하는 등 일제강점기의 혁명적인 독립운동에도 앞장섰다.
본관은 청주(淸州). 속명은 유천(裕天). 자는 정옥(貞玉). 용운은 법명이며
득도할 때의 계명은 봉완(奉玩), 법호는 만해(萬海 : 또는 卍海).이다
홍성군 광천읍 외곽도로 사거리에서 우회전, 천수만 방면으로 향해 가다보면 결성면 소재지가 나온다.
결성우체국 앞에 이르러 우측으로 심하게 굽은 도로를 따라가면 만해 한용운선생 생가다.
양옆으로 과수원들이 옹기종기 들어선 한가로운 길에다가 안내판도 잘 되어 있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 이르면 초가집 두어 채가 보이는데 바로 한용운 생가이다.
싸릿대 울타리로 복원된 만해선생의 생가는 초가지붕을 얹었으며 방2칸, 부엌 1칸으로 구성된 일자형 구조이다.
댓돌이며 툇마루가 한없이 정겹고 우물과 장독대를 돌아 집 뒤 야산 언덕배기를 올려보면 적송과 조릿대가 자란다.
슬쩍 방 안을 기웃거리자니 만해의 영정과 앉은뱅이 책상 하나가 쓸쓸히 방문자들을 맞이한다.
부엌 옆은 장작을 쌓아두는 헛간이고 사랑방 옆은 절구통과 맷돌이 보관된 헛간이다.
마당을 둘러보면 작은 연못과 정자가 들어 서 있다.
1879년 이곳 성곡리에서 태어난 한용운 선생은 6세부터 성곡리 서당골에서 한학을 배워 9세에 문리를 통달, 신동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26세에 강원도 백담사에 들어가 불문에 입도.
삼일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내면서 저항 문학에 앞장섰는가 하면, 불교개혁운동에 일생을 바쳤으며
1944년 6월 69세의 나이로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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