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 경상북도 경주시 충효동 산7-10
경주에서 태종 무열왕의 묘를 지나서 북쪽으로 좀 올라가면 김유신장군의 묘가 나온다
그 묘를 후일의 여름에 찾았다
주차장에 걸려있는 간판을 보면서 먼저 원광법사가 설파한 세속오계를 살펴본다.
世俗五戒..... 600년(진평왕 22) 원광이 중국 수나라에서 돌아와 경북 청도군 운문산(雲門山)
가실사(嘉瑟寺)에 있을 때 사량부(沙梁部)에 사는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이 평생의 경구로 삼을 가르침을
원광법사에게 청하자,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
하라고 하는데 이것을 화랑오계라고도 한다
삼국을 최초로 통일한 대단한 장군 김유신의 묘로가는 길문에 흥무문이 있다
이 문을 통과하려면 입장료 1.000원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
김유신 장군의 묘가 보인다. 어떤 근거로 야그 하는지는 몰라도 이 묘가 김유신의 묘가 아니라는 학자도 있다카네.
야튼 김유신 그는 삼국통일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그가 태어난 충북 진천을 찾았을때는 겨울이었지만 그의 무덤을 찾았을때는 여름이었다.
김유신묘는 지름이 30m에 달하는 원형의 큰 무덤으로. 봉분 둘레에는 둘레돌〔護石〕을 두르고
그 외곽에는 바닥에 깐돌을 깔았으며, 돌난간을 둘렀으며. 둘레돌은 대체로 통일신라시대
왕릉의 둘레돌과 같은 양식으로서 벽석(壁石)·연헌석(緣軒石), 연대석(緣臺石)으로 짜여 있다.
둘레의 신상석은 모두 12개로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다.
신라태대각간김유신묘라고 적혀있다.
무기를 들고 있는 12지신상이 무덤 둘레를 장식하고 있다.
각기 지신상들이 자기가 의미하는 방향에서 둘레석으로 자리잡고 있다
나의 관심은 12지신상에 쏠린다.
봉분이외에는 지세를 가늠할수가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접고.......
내려와서 신도비와 숭무전으로 발길을 옮겼다.
김유신장군의 업적이나 무용담과 역사적 사실은 아는사람들은 다 알만큼은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다른방향에서 김유신의 가족관계를 좀 살펴보았다.
김유신(金庾信)의 부인은, 태종무열왕김춘추(金春秋)의 셋째 딸이다.
그를 지소부인이라고 하는데 그 지소부인이 누구냐하면 김유신의 누이동생이 낳은 딸이다.
김유신에게는 질녀이면서 부인인것이다. 요즘세상에서는 이해불가한 족보이다
김유신은 여동생의 사위가 되는 이상한 관계이지만 당시에는 문제가 없었다.
질녀인 지소부인과 김유신과의 사이에서 삼광(三光)·원술(元述)·원정(元貞)·
장이(長耳)·원망(元望) 등 아들 다섯과 딸 넷을 두었다고 한다
김유신은 김춘추의 사위이다
그럼 김춘추는 누구인가. 김유신의 여동생과 혼인하였으니 매제가 된다.
김춘추는 김유신 여동생의 남편 즉 김유신은 김춘추의 처남
김춘추는 김유신의 둘째 여동생과 결혼 그 후 첫째 여동생과도 결혼. 즉 김유신의 둘째 여동생은
언니의 형님. 김유신은 김춘추의 딸과 결혼. 즉 김춘추의 사위
김유신은 여동생의 딸과 결혼. 즉 여동생의 사위이고 매제의 사위가 된다
김유신 부인은 외삼촌과 결혼한것이고. 즉 엄마의 형님이 되는 형국이다.
한때에 선덕여왕이란 드라마가 방영된적이있다.
고현정이가 연기한 미실이란 여인네 이야기가 나오는데 .......
그 미실이란 여인의 이야기를 쫓아가다보면 당시 지도층의 족보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데
지금의 시각으로보면 개족보라도 그런 개족보가 없다.
무전 현판이 김대중 전대통령의 글씨로 남아있다.
중앙 종친회 고문으로 되어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5000만원 찬조했다고 적혀있다.
고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해김씨인것이다
참고로 같은 김씨이지만 김영삼 전대통령은 김녕김씨이다.
김해김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다문화가정이라고 한다.
허황후(허황옥)가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왔다고 하질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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