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보고知고.

430. 남해. 다랭이.

한유(閑裕) 2018. 9. 18. 05:40

 430.

* 경남 남해시 남면 가천리

 

제법 오래전의 사진이다,

컴퓨터 내 블로그는 창고로서의 역활을 단단히 하고 있다.

찾아 내었다 이 사진들을..........그리고 오늘 (2019.4.28.) 정리한다.

 

 

 

보물섬이라고 하는 남해에는 계단식 논으로 먹고 사는 마을이 있다
남해의 가천 다랭이마을은 바다를 끼고 있지만 배 한척 없는 마을이란다.

배가 없으니 당연히 바다로 나가서 물고기를 잡을수가 없다

그 이유는 마을이 해안절벽을 끼고 있는 탓이다.

방파제는 고사하고 선착장 하나도 만들 수 없다보니

마을주민들은 척박한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다랭이 마을에 처음들어와서 살기 시작한 사람들은 바닷가 언덕배기에 논을 만들고 밭을 만들었다

한 층 한 층 석축을 쌓아 만든 다랭이 논(명승 제15호)은 그렇게 태어났다.

가천 다랭이마을은  그렇게 생겨났지만 처음 자리잡은 사람들은 아둔하고 답답한 사람들이었거나

아니면 귀양와서 살았거나 역적으로 몰려 오갈때없는 사람들이 아니면

거지들이 버려진 땅을 일구지 않았나하는 만고 내생각이 생겨났다.

왜냐면 뒷산에서 이어진 경사도가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해사람들의 억척스러움이 묻어있는 다랭이 논이라고는 하지만

풍수적 논리로는 사람이 살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멍청하게 자리잡아 다랭이라는 논을 만든 덕택에 지금 거주하는 사람들은

관광객덕분에 먹고 산다해도 과언이 아니니 이걸두고 아이러니칼하다는 이야긴가 싶다

들쭉날쭉 자연이 생긴 굴곡대로 제 멋대로 생긴 논들로 구성된 다랭이는 남해군의 명소이다

언제부턴가 다랭이 사이사이로 산책로와 전망대까지 마련돼 있어 편안히 돌아볼 수 있다.

다랭이의 명물인 암수바위(경남민속자료 제13호)와 밥무덤, 구름다리, 몽돌해변 등을

돌아보면서 마을 유래를 살펴보면 나름대로 흥미가 있다.

 

 

 

 

'다랑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산골짜기의 비탈진 곳 따위에 있는 계단식의 좁고 긴

논배미'라고 설명되어 있으며 지역에 따라 '다랭이' 또는 '달뱅이'라고 불린다.

다랭이마을은 손바닥만 한 논이 언덕 위에서부터 마을을 둘러싸고 바다까지 이어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45도 경사 비탈에 108개 층층 계단, 10제곱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것부터

1,000제곱미터에 이르는 것까지 680여 개의 논이 있다고 하는데

작은 논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옛날 한 농부가 일을 하다가 논을 세어보니 논 한 배미가 모자라 아무리 찾아도 없기에

포기하고 집에 가려고 삿갓을 들었더니  밑에 한 배미가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우스개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이처럼 작은 삿갓을 씌우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논이라 해 삿갓배미, 삿갓다랑이 또는 죽이나 밥 한 그릇과 바꿀 정도로 작다 해서

죽배미나 밥배미로 불리기도 했다는 야그다..

 

 

 


벼와 마늘로 생계를 유지하던 다랭이마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9년으로  이 마을 출신으로 똘똘한 김종철 씨가 면장으로 부임하면서

마을 뒤쪽의 설흘산 등산로를 개발하면서부터이기 때문이다.

등산객들이 산에 올라 환상적인 경관을 보면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양반 덕택에 다랭이마을이 한국에서도 남해에서 가장 유명한 마을이 된것이다.

그양반이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는 몰라도 김종철이라는 면장의 공덕비는

분명히 만들어 주어야지않나 생각이다

만고 내생각이지만서도..........

 

 

 

 

 

 

 

 

2019년 현재에는 이벽화들이 사라지고 없을지도.........

 

 

 

 

 

 


이 암수바위는 신격(神格)이 미륵불로 변이되어서 숫바위를 숫미륵,

암바위를 암미륵이라 부르고, 합하여 미륵불이라 일컫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 영조 27년(1751) 이 고을의 현령 조광진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내가 가천에 묻혔는데, 우마(牛馬)의 통행이 잦아 일신이 불편해서 견디기가 어려우니

나를 파내어 일으켜 세워 주면 필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는 현령이 현몽에 따라

가천에 가서 땅을 파게 했더니 이 암수바위가 나왔다.

이에 현령은 암수바위를 미륵불로 봉안하고 논 다섯 마지기를 헌납하여

이 미륵이 발견된 음력 10월 23일을 기하여 매년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고 한다.

바다에서 북으로 100m 거리의 가천마을 최하단 100평 가량의 밭 모서리에

5m 간격으로 암수바위가 있다.

숫바위는 높이 580㎝, 둘레 250㎝로 발기한 남자 성기의 모양으로 서 있고,

암 바위는 높이 390㎝, 둘레 230㎝로 잉태하여 배가 부른 여인의 모습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다.

부정 없는 동민 중에서 제주와 집사를 선정하여 음력 10월 23일에 제를 올리는데,

미륵에 대한 제라 어육과 술을 일체 쓰지 않고 과일ㆍ떡ㆍ나물 등을

큰 그릇에 담아 제사을 차리고 지낸다.

 

 

 

 

 

풍수지리상 음기가 강한 곳에 남근석을 세워 음기와 양기의 조화를 이루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무덤을 여근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묘 앞에 세우는 망주석은 남근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이 둘이 결합해 자손들이 번창하고 복 받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아래에 있는 돌은 근처의 조경공사중에 나온돌이 아닌가 싶다.

 

 

 

 

 

밥무덤의 사진은 날아가고 없다. 없다고 해서 다른데서 퍼 올수가 없다

내 블러그는 내 사진들로만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리할 생각이니까.


다랭이마을에는 또 다른 특별한 민속자료가 있는데 바로 밥무덤이다.

밥무덤은 마을의 중앙과 동·서쪽 3군데에 있다. 중앙에 있는 것은

삼층탑 모양의 조형물로 밑변 180센티미터, 높이 162센티미터나
된다. 동쪽 언덕과 서쪽 언덕에 있는 것은 돌을 쌓아

감실 (사당 안에 신주를 모셔 두는 장(欌))처럼 만든 것이다.

밥무덤은 굴뚝처럼 생겼으며 제사를 지낼 때 밥을 정갈한 한지에 서너 겹으로 싸서 정성껏 묻고,

흙으로 덮은 다음 그 위에 반반한 덮개돌을 덮어두는 것이다.

제물로 넣은 밥을 쥐, 고양이, 개 등의 짐승이 해치면 불길한 일이 생기거나

신에게 바친 밥의 효력이 없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음력 10월 15일 주민들이 모여 마을 중앙에 있는 밥무덤에서 풍작과 풍어를 기원하는

동제를 지낸다음 하는 행사이다.

밥무덤의 또 다른 목적은 먼 거리 항해 등에 나갔다가 목숨을 잃어 제삿밥을 얻어먹지 못하는

혼령들을 위해 밥을 묻어둔다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오래전 에 방문한지라 요 할매집 에서 전을 부처 막걸리 한사발을 하였는데

2019년 현재. 이 할매가 아직 살아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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