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보고知고.

371. 경주. 감은사지 문무왕릉. 신문왕릉.

한유(閑裕) 2018. 6. 14. 07:14

371.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외

 

신라의 왕들중에 성골의 왕에서 진골의 왕으로 내려온 이래로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문무왕이 나라를 더욱 굳건히하고 튼실하게 하려는 마음을 담아서

이 절을 짓기 시작했다고 하며 그의 아들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즉위한 이듬해(682)에 완공하고 감은사(感恩寺)라고 불렀다

이 절은 경주에서 토함산을 넘어 감포 앞바다에 있는 문무왕릉을 가다보면

길가의 언덕에 감은사지(터)로만 남아 있다.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아들이 문무왕이고 문무왕의 아들은 신문왕이다

 

 

 

 

 

신라 제30대 문무왕(文武王, 661∼681)은 태종 무열왕과 문명왕후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 문명왕후는 언니 보희에게 꿈을 싸서 옷고름사건의 주역인 김유신의 누이인 문희이다.
김유신의 큰누이동생 보희가 산꼭데기에서 오줌을 누니 경주가 물속에 잠기는 꿈을 꾸었는데....
이꿈을 동생에게 이야기하게 되고........ 동생 문희는 그 꿈을 사게된다
그래서 그랬나 문희는 당시 김춘추와 결혼을 하게된다
해서 낳은 아들이 훗날 문무왕이다
왕위에 올라서는 백제와 고구려를 통합한 실질적인 왕이 바로 문무왕이다.

 

무열왕의 이름은 춘추이고 문무왕의 이름은 법민(法敏)이고. 아들인 신문왕의 이름은 정명(政明)이었다

그 정명이 왕이되니 신문왕이다 신문왕 전설상의 피리로 알려진 만파식적이라는 이름의 피리가 있었는데.

문무왕 죽어서 해룡() 김유신() 죽어서 천신() 합심하여    시켜서 보냈다는

대나무 만든 피리이것 불면 온갖 소원 성취되어 국보 삼았다고 한다.

만파식적이 생겨난 전설을 살펴본바로......는 동해를 지키던 관리 하나가 감은사 앞바다에 거북처럼 생긴 섬하나가

움직이고 있다는것을 보고하자 감은사에 행차한 신문왕이 이견대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니

거북처럼 생긴 섬 하나가 물 위에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섬 꼭대기에는 대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는데, 해가 지자 서로 합쳐져서 한 그루가 되는 것이었다.

신문왕이 배를 타고 그 섬으로 갔더니, 용이 나타나서 하는말이 대나무를 잘라 피리(대금)을 만들어 불면

나라가 평안하다고 해서 신문왕은 그 대나무로 대금을 만들게 하였고, 이 대금을 '만파식적'이라고 이름 지었다

 

 

 

가을에......문무왕의 아들이 신문왕의 릉을 찾았더랬다 만파식적이 생각났다 혹시 저 무덤속에 함께 매장된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에 신문왕릉이 있다. 일설에는 효소왕릉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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