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보고知고.

635. 금산. 고경명 의병장 비

한유(閑裕) 2025. 5. 3. 07:39

635.

*  충남 금산군 금성면 양전리 170.

 

선조란 자가 꽁무니를 빼시고 걸음아 날 살리라 하고 도망질을 했다나

일국의 왕이란 자가 저만 살겠다고 왜늠들을 피해 피난살이를 할때에

분연히 일어나서 의병을 모집한 그분은

1552년(명종 7) 사마시에 제1위로 합격, 진사가 되고, 1558년 왕이 직접 성균관에 나와 실시한 시험에서 수석하고,

곧바로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특전을 받았을 정도인 인물 고경명장군...

왜란의 와중에 패퇘하거나 도망친 관군을 모아 고종후(高從厚)·고인후(高因厚).

두 아들로 하여금 이들을 인솔, 수원에서 왜적과 항전하고 있던 광주목사(廣州牧使) 정윤우(丁允佑)에게

데빌고 가서 인계하도록 했다.

이어서 전 나주부사 김천일(金千鎰), 전 정언 박광옥(朴光玉)과 의논해 함께 의병을 일으킬 것을 약속하고,

여러 고을에 격문을 돌려 6,000여 명의 의병을 담양에 모아 진용을 편성하고

왜적을 격퇴하겠다는 출사표를 조정에 전달하도록 하고, 6월 1일 담양을 출발해 북상을 개시한다.

의병군이 태인에 이르렀을 때, 정윤우에게 관군을 인계하고 돌아온 아들인 고종후에게

다시 격문을 휴대하고 금구(金溝)·임피(臨陂) 등지에서 병기와 군량을 수집하도록 했으며

영남에서 호남으로 침입하는 왜적을 막기위해  전주에서 여산으로 진을 옮겨 이곳에서 두 아들

고종후·고인후와 합류하고는, 다시 호서·경기·해서 지방에 창의구국(倡義救國)의 격문을 돌리도록 하고는 

은진에 도달해 왜적의 동태를 살피고 있던 중, 황간·영동 등지에 있는 왜적이

금산을 점령하고 장차 전주를 점렬하고 경유, 호남을 아가리에 넣고자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의병장 조헌(趙憲)에게 서신을 보내어  금산의 왜적을 공격할 것을 제의한 금산에 도착하여,

방어사 곽영(郭嶸)의 관군과 좌·우익으로 진을 편성하여 피터지는 전투를 한다

이러한 와중에 겁을 낸 관군은 싸울 것을 포기하고 앞을 다투어 패주하므로 이에 사기가 떨어진

의병군마저 붕괴되고 말았다.

이때 만류하는 주위의 권고를 물리치고 “패전장으로 죽음이 있을 뿐이다.”고 하며 물밀듯이 밀려오는

왜적과 대항해 싸우다가 아들 고인후와 순절했다는 그분의 비각에 올랐다.

고경명 선생의 비에 관한 안내문을 읽는다.

옛 비석은 일제 강점기시절 1940년경 일본 경찰늠들이 부셔버린 것이라 한다

왜경에 의하여 절단난 비각 흔적이다

이 비각이 있는 일대에서 전사하였기에 긍세에 와서 1962년 다시 세웠다고 적혀 있다

선생의  묘역은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에 있다는데 

기회가 주어지면 찾아가서 참배하는것은 후손의 도리라 본다.

금산지구 전투에서 패했다

나이 60에 의병장으로 활동한 고경명 의병장에게  두 아들(종후, 인후)도 같이 참가한 걸 본 권율장군은

대가 끊어질것을 염려하자 고경명선생은  나라가 없어지면 대를 이은들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을 하는 순간에

왕이란 사람 선조는 꽁지가 빠지도록 도망질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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