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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 481번길 21
세계문화유산을 찾아간다.
조선왕릉은 세계문화유산이니 다시 한번 만날것이야.
여주에서 세종대왕 릉과 효종의 왕를을 답사했기에 조선왕릉은 세번쩨이다.
여기서 먼저 융릉. 건릉이냐를 두고 어디로 먼저 가야하나로 다시 약간을 고심했지만.
건릉으로 먼저 발길이 닿았다
조선조 22대왕을 지낸 영조임금 이산의 릉이다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비정한 당쟁의 정치판에서 자기 아버지인 영조에 의하여뒤주속에 갖혀서 죽는
임오하변의 무서운 광경을 보고 어린 정조는 마지막까지 아버지 사도세자를 살려달라고 할아버지 영조에게
애원하니 영조는 "누가 얘를 데리고 들어오라고 했느냐. 데리고 나가라"며 쫓아냈다.
사도세자 사후 어머니 헤경궁 홍씨와 함께 외갓집으로 내려가지만 곧 혜경궁 홍씨와도 생이별해 궁으로 돌아간다.
이 때 사도세자의 생모인 할머니 영빈이씨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다고 하는데 영빈 이씨로서는
자식을 죽음으로 내몰았으니 그에 대한 죄책감도 겹쳐 손자에게 극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가장 정조의 인물상이라고 하는 초상이다
1762년에 사도세자가 비극적인 죽음을 겪자 먼저 죽은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에게 입적되어
왕통을 이었다. 1775년부터는 영조왕을 대리청정하여 국가의 정사를 직접 관장하였으며
1776년 영조가 죽자 25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25년간 재위하고 1800년에죽는다
할아버지 영조와 함께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임금으로 평가된다.
파란만장했던 정조의 생애는 후대에도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남겨 KBS 드라마 이산으로
이서진이가 연기한 인물이 정조이다.
즉위하면서 한 말이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 후 자신의 대리청정을 반대하던 척신들인 홍인한 정후겸등 정적들을 척결한다
그리고 정조가 글을 읽던 존현각까지 자객을 침투시켰다가 발각된 일이 있었는데 홍계능, 홍상길, 홍신해,
홍이해 등 남양홍씨들이 집단으로 연루된 모반이 드러나면서 일대 피바람이 불기도 했다.
홍계희 계열은 이미 홍인한이 사사되는 과정에서 타격을 입은 상태였고 이에 반발하여 사건을 일으켰다.
이 존현각 자객 사건은 강용휘 등의 자객들이 존현각의 지붕을 뜯고 잠입하려고 시도하다 발각되기도 했고
강용휘와 전흥문은 무사히 탈출한 뒤 재차 암살 시도를 꾀하여 들어왔다가 홍국영의 강력한 주장으로
삼엄해진 경비에 암살을 포기하고 궐의 뜰에 숨었으나 곧 발각되어 사건이 마무리가 된다.
이 사건으로 남양 홍씨의 홍계희 계열이 숙청되고 연루의혹이 있는 자신의 동생인 은전군 이찬을
사사해야 한다는 신하들의 요구에 직면했고 끝내 눈물을 흘리면서 사사했다고 한다.
세계문화유산은 가까이서 볼수가 없다.
세종릉. 효종릉. 단종릉. 모두 멀찍하게 떨어진 상태로 관람참배 해야 한다.
정조는 이후 1780년에는 심복이던 홍국영을 밀어낸다
사실 홍국영이 대놓고 토사구팽당할 짓을 했는데 왕이 자신을 믿고 의지하여 즉위 후에도 최측근으로 두었단
것에 기고만장해서는 나이 지긋한 신하가 와도 버르장머리없이 맞이했다고 한다.
자기 핏줄의 세자를 낳아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던 누이인 후궁 원빈 홍씨가 일찍죽자
효의왕후를 모함하고 정조의 섭생을 대놓고 반대하는 미친 짓을 했다.
심지어 정조의 조카인 상계군을 완풍군으로 삼고 자신의 조카라고 선포했는데
멋대로 왕의 조카를 데려와서 왕과 사망한 후궁의 양아들로 만든 것이다.
홍국영은 전횡을 부리다 동료였던 김종수 등이 등을 돌리면서 숙청된다
영조는 대단한 술군이었도 전한다.
근처의 팔달문 시장(남문 시장) 입구 쪽에 보면 정조가 술상 앞에 앉아 있는 동상이 있다고 하는데.
그 동상에 불취무귀(不醉無歸),
그러니까 '취하지 않으면 집에 못 간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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