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보고知고.

104. 당진. 솔뫼성지.

한유(閑裕) 2017. 4. 7. 17:20

104.

*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108

 

충남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 신부 유적'은 천주교의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그의 증조할아버지 김진후,

작은할아버지 김종한, 아버지 김제준 등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았던 곳으로 전해진다.

1836년 작성된 김대건의 신학교 입학 서약서에는 그의 출생지가 '충청도 면천 솔뫼'로 기록되어 있다.

솔뫼는 소나무 숲이 우거진 산(松山)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으로 지금의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에 있다.

이곳에는 2004년 복원된 김대건 신부 생가와 1946년에 세운 순교복자비, 김대건 신부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주변에는 김대건 신부 기념관, 야외 성당 등이 있어 그의 발자취와 생애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솔뫼성지로 가는 길가의 아파트 담벽에 교황 프란치스코의 얼굴을 그려 놓았더라.

국가사적 제 529호로 지정되어 있다

 

나같은 무지렁이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혜아리지 못한다.

그래서 솔뫼성지를 방문한 사진으로 성탄을 축하하고자 한다.

각자의 마음속에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를 느끼고 기원하길 바란다.

고등종교에서 무속에 이르기 까지 나는 특정한 종교의 편견은 없다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부님이라고......

 

종교의 경계를 넘어 수많은 사람들이 경배하는데에 대해 분명한 이유가 있으리라 믿고

두손모아서 합장배례를 하였더라.

둘러본다.

 

12제자분들인 모양이다.

 

 

 

베드로

A.D. 64혹 67경(A.D.64 혹은 67)년 순교. 12사도 중 제1인자. 갈릴리의 어부 요나의 아들로,

본명은 시몬(Simon)이고, 그 자신도 어부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작 된 후 베드로(반석)라는 이름을얻고 수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랐다.

헤롯 아그립바 1세(->헤롯왕가 참조)에게 잡혔으나, 뒤에 피난하여 소아시아 및 안디옥에서 선교했단다

고대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그는 로마에서 얼마 동안 그리스도교단을 주재(主宰)하다가,

네로(로마황제)치하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특히 순교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로마에 큰 박해가 일어나서 모든 성도들이 잡혀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잡히기도 했다.

그때 베드로는 다른 성도들의 권면따라 로마성에서 도망쳐 나갔다.

그러는 도중에 그는 환상으로예수님을 만났다.

베드로는 이때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는 것이다.

 

요한

신약의 요한복음, 요한 제1, 2, 3서 요한 계시록의 저자로 알려진다.

형제인 야고보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 초기부터 함께한 세 측근자 중의 1인으로,

예수의 승천후에도, 초대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인물로 일했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유대 국내에서 전도하다가, 예루살렘이 주후 70년 로마군에게 멸망되자,

에베소에 가서 전도했는데, 도밑티아누스 (로마황제) 재위 91-96)의 핍박으로, 끓는 가마에 넣는 바 되었으나

이적적으로 튀어나오게 되어 그를 박해하던 무리가 놀라서 밧모섬으로 귀양보냈다고 한다.

요한은 여기서 계시를 받고, 수명대로 살다가 갔다는 것이다.

 

 

안드레

베드로의 형제로, 가버나움에 살며, 어부생활을 했다.

처음 세례 요한의 제자가 되고, 이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1의 제자가 되었다.

소아시아, 스퀴티아, 그리스에서 전도하다가, [안드레의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다.

안드레의 십자가는 X자형이다.

 

 

 

김대건신부님의 생가이다

 

 

 

 

 

 

 

 

 

 

 

 

 

 

 

 

 

 

 

 

 

 

 

 

성 안드레아 김대건 사제(1821-1846년)는 충청도 솔뫼의 구교우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비상한 재주와 굳센 성격과 진실한 신심이 드러났다고 한다.

15세 때인 1836년에 청나라신부인 모방 신부의 주선으로 마카오로 가서 신학을 공부하고,

1845년 1월에 귀국하였다가 다시 1845년 8월 17일에 페레올 고주교 집전으로  서품을 받아서 한국 최초의 신부가 된다

천주교(당시에는 서학이라 했다)선교활동을 하다가  1846년 6월 5일 밤에 순위도에서 체포되어서

고문과 형벌을 받은 김대건 신부는 사제생활 1년 1개월만인 1846년 9월 16일에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26세였다고 한다.

 

김대건 신부의 생가터를 솔뫼성지라 하는데 야외에 조성되어 있는 조형물들이며 전시된 여러가지 전시품들의 사진들이다.

기념관으로 들어가본다

 

 

 

 

 

 

김대건신부의 턱뼈라는데 모조품인것 같더라

김대건 신부의 머리카락

당시의 사형도구인 언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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