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 경남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아이야.
조선군과 명나라전 사자들의 무덤도 있는 이곳은 신진리 성이다
임진왜란당시 사천 선진리에는 왜놈들이 성을 쌓고 주둔한 지역으로 아녀자 강간. 비적질. 살인. 방화등
별놈의 짓거리를 한 왜성이 있단다
유성룡이 쓴 징비록에 다음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倭亂終後,局慶尙道頻生密體毛猿鳴兒。
上驚而命慶尙觀察使告由。
而奏告曰,嶺南倭賊强姦極甚,朝鮮純血長去也。
왜란후 경상도에는 잔틀이 덮이고 원숭이와 흡사한 울음을 내는 아기가 태어 나는 일이 잦았다.
이에 주상께서 기이히 여기사 경상도 관찰사에게 연유를 알아 보라하니 아랫것들이 보고 하기를.........,
경상도는 왜적의 강간이 극심해 조선의 순수한 혈통이 끊긴지 이미 오래라고 한다는 내용이다
그만큼 왜놈들의 노략질은 극에 달해 있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사천 선진리에서는 벗꽃........
일본의 국화로 알려진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 계절이었다
또요또미 히데요시 그 개자식은 정유년에 조선을 다시 침공하면서 휘하 졸개들에게 말하기를 전라도를 점령하여
조선인간의 씨를 말려라고 명령한다
왜놈들을 이주시켜 자국의 땅으로 완전히 만들어 버리려는 수작인것이다.
몰살작전은 진주에서도 있었다. 키우는 가축까지도 남김없이 죽여버리는 초토화가 그것이다.
제1차 진주성전투에서의 참패로 위신이 손상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1593년 6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 등에게 복수전을 하도록 특별히 명령을 내렸다.
왜군은 6월 15일부터 작전을 개시하여, 18일까지 경상남도 함안(咸安)· 반성(班城)·의령(宜寧) 일대를 점령하고,
19일에는 3만 7000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진주성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진주성을 향해 총공세를 전개하려는 왜군에 대항하기 위해
관군과 의병은 물론 진주 주민들도 참여하였다.
관군으로는 경상우병사 최경회(崔慶會)·충청병사 황진(黃進)·김해부사 이종인(李宗仁)
사천현감 장윤(張潤) 등이 진주성으로 들어 왔고,
의병장 김천일(金千鎰)·고종후(高從厚)·강희열(姜希悅) 등이 의병들을 거느리고 진주성에 들어왔다.
그리고 진주 주민도 7만여 명이나 되었다만
아뿔사.......
당시 진주목사 서예원(徐禮元)은 원병으로 와있던 명나라 장수를 접대하다가
급히 전투에 참가하느라 진주성을 지휘할 채비를 갖추지 못한체 왜군을 맞이하게 되고 말았다.
따라서 진주성 전체를 지휘하는 장수는 오히려 의병장 김천일이 맡게 되는
임기응변적인 전투체제가 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진주성 안의 관군·의병·주민 모두 의기로 뭉쳤을 뿐
잘 훈련된 왜군에 대항하기는 처음부터 열세적인 입장에 있었다.
6월 21일부터 본격적인 왜군의 공격이 시작되면서 조선 관군과 의병, 주민들이 합세하여 대항하는 가운데
6월 27일까지 전투는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성 내에서의 관·군·민은 서로의 역할을 나누어 전투에 임하였다.
관은 편대를 나누어 군사들을 독려하는 역할을 맡고, 주민들은 전투를 잘 치르도록 성안의 흙 담을 높이는 작업과
돌을 무기로 나르는 작업을 하였으며, 의병들은 성을 넘으려는 왜군들을 직접 상대하여 무찔렀다.
그러나 왜군은 성벽의 밑바닥을 파서 성을 무너트리기 위해 성 밑을 파기 시작하였고,
6월 28일 불행히도 큰 비가 내려 성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이때 황진은 왜군의 탄환에 맞아 전사하였고, 이종인을 비롯한 군사들은 왜군이 성안에 들어오자
죽기 살기로 백병전을 벌였으나, 이튿날. 결국은 성이 함락되고 말았다.
성이 함락되자 왜군은 성안에 남은 군·관·민 6만 명을 사창(司倉)의 창고에 몰아넣고
모두 불태워 학살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축도 모두 도살하였다고 한다.
소개글은 이렇게 적어 놓았다.
조명 연합군이 왜놈이 차지하고 있는 선진리성을 공격하려 할때 이때에 조명연합군 진영에서 폭발물이 터지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되고 이 와중을 틈타서 기습한 일본군에 의해 조명 연합군은 대패하였고............
왜놈들은 이 전투의 전과를 본국으로 보고하면서 조명연합군의 코와 귀를 자르고
남은 시체를 선진리 성앞에다 묻었는데 그 악취가 심해서 조금 떨어진 이곳으로 옮긴걸로 되어있다.
조명총. 이 무덤이 조선군과 명나라군이 함께 묻혀있는 무덤이다.
조명군총의 뒤를 돌아서 선진리 성으로 발길을 옮겼다.
벗꽃잔치 준비가 한창이다.
이 역사적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먼저 봄을 맞이하려는 사람들이 꽃망울의 향기를 즐기고 있었다.
죽은 영혼들이 鬼가되어 맴돌고 있을 선진리성에도 봄은 오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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