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8. 홍성. 연안김씨 묘에서
588.
* 충남 홍성군 홍북읍 노은동.
노은동 가는 지방도 옆에 숨은듯 모셔진 무덤하나를 찾아 내었다
한 여인의 묘다
이 묘를 올라가면서 이름있는 여자들의 몆몆 생각이 나더라
살아생전 홍도는 어떤 가슴으로 살았을까.?
흑산도 아가씨는 무슨 마음으로 바다건너를 보았을까.
박달재에서 죽은 금봉이는 무슨 병으로 죽었을까.?
이 좁은 골짜기에 무덤 하나가 있다.
잡풀이 무성한 것을 헤치고 올라가니 묘비에는 연안 김씨라 적혀 있더라
여자가 남자와 함께살라하면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팔자가 펴인다.
물론 기본적으로 얼굴. 몸매. 학력. 가문. 재력이 따라줘야 양질의 남자를 만날수 있다.
결혼도 일종의 거래관계이다.
거래가 성사되고 안되고도 인연 이라면 인연이다.
처음에는 좋은 인연이었으나 결론은 더 이상 나빠질수 없는 악연이 되는 관계가
남여 사이라는 것이다.
연안김씨 김차산 처녀가 창녕성씨가문의 잘나가는 촉망되는 삼문총각과 혼인하고자 사주단자가
오고 갈 때만 해도 더 없이 설래고 부끄럽고 기대되고 행복도 했으리라
시아버지는 도총관이고 남편 성삼문 또한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김차산 처녀는 번듯한집으로 시집가는
행운의 처녀였건만.......
팔자가 싸납게 변하여 죽은 여인 김차산.............
여기 그의 묘비에는 성삼문의 처 연안 김씨라 적혀 있다.
성삼문이 38세를 일기로 능지처살로 생을 마감하자 시신은 갈기갈기 찢기어 흩어지고 아버지와 형제들,
그리고 형제의 자손들마저 집안의 남자들은 어린아이까지 모두 몰살당하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성삼문은 제를 올려 줄 사람조차 없었다
그때 선생의 부인인 김 씨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밤나무를 깎아 신주를 만들고 제사를 지냈다고 전한다.
당시 세종의 아들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는데 역적모의에 참가하여 공을 세운 공신들........
정권을 잡은 그들은 성삼문선생이하 사육신을 포함하여 되려 역적으로 몰린 사대부 집 여인들을
세조로부터 하사 받았다
그 공신이라고 하는 자들은 수양대군이 왕으로 추대한 전리품으로,
기생은 물론이고 아녀자. 반반한 처녀들은 물론이고 시집가는 여자도 붙잡아서 첩으로 만들기도 했다는데......
신숙주는 세종이 그렇게 안위를 당부한 단종의 비, 정순왕후를 달라고 청했으나 세조에게 거절당하기도 했다
단종을 잘 보필할 것을 세종에게 굳게 약속하고도 단종의 정비 정순왕후를 탐하니
이게 어찌 성리학을 배운넘이 할 짓인가
이것이 야사가 아니고 정사라면 권력. 돈 . 여자를 탐한 인간말종의 교과서가 아닌가.?
계유정난으로 그 많은 사람이 죽고 여자는 노비나 첩이 되고 말았다.
신숙주는 단종비 정순왕후 대신 조완규의 아내와 딸, 최면의 누나를 하사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숙주나물을 왜 숙주나물이라 하는가.?
배신의 나물이 숙주나물이라 말하면 또 만고 내 생각인가.
정인지는 김종서의 딸 숙희와 며느리를 세조로부터 하사 받았고
한글창제에 기여했다는 세종의 신하들이 친구나 지인들의 집안 여자들을 노비로 하사 받았으니.......
우정을 나누고 정사를 의논하며 한때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의 아내와 딸들을 첩으로 삼고 데빌고 살았다
남편의 친구나 부하 또는 상사의 노비로 전락한 사대부 여인들이 겁탈당하고
또는 종이되어서 종과 남자 노비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서 노비의 수를 늘려서 재산형성을 했다니
이 얼마나 비참하고 굴욕적인 삶이었던가?
이렇게 공신들 중에는 옛 부하의 며느리와 시어미, 그리고 딸들을 한꺼번에 하사 받거나
예전 상관의 여인들을 모조리 한 집안에 들여놓고 노비나 첩으로 삼는 경우도 많았다
경복궁 문지기로 있었던 무지렁이 한명회는 가문의 사대부집 여자들을 노비로 하사 받았다
기록에는 네 명의 첩이 있었는데 그중 두 여자가 포은 정몽주의 손녀였다
사촌 자매간인 그녀들이 한 남자를 상대로 첩살이를 한 것은 아닐까이다
그리고 한명회가 좌승지 벼슬을 하고 있었을 때 나이는 41세였다
그때 유성원의 아내 미치와 딸 백대, 그리고 이명민의 아내 맹비, 이징옥 첩과 딸 철금을 세조에게 하사 받았다
세조는 어머니와 딸을 한 집안에 노비로 보내서 첩을 삼게도한 왕이다
28세에 국방부장관격인 병조판서를 할 정도로 출충한 인물인 남이장군은
간신 유자광이의 역모 고변 사건으로 억울하게 신숙주와 한명회등의 고문으로 죽자
역모 사건에 연루된(?) 죄인의 여인들을 또 노비로 하사 받는다
한명회는 남이의 딸과 권람의 외손녀였던 남구을금을 노비로 하사 받았다
이때 한명회는 54세였고 남이장군의 딸은 10살 정도였다
칠삭동이 한명회는 수많은 여자 노비들을 하사 받고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리면서 73세까지 장수했다
지난날 천안에서 찾아본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묘지 앞에서 그렇게나 짖어대는 개소리가 새롭다
남이장군은 세종이 예쁘게 사랑한 누이동생 정선공주의 손자가 아닌가.
운성 부원군 박종우에게 보내졌던 성삼문 부인과 딸인 효옥은 12년 만에 사면을 받고 이곳 홍성 노은리로
낙향하여 살다가 이 무덤으로 후세에 역사의 비극을 전하는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