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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 파주. 반구정

한유(閑裕) 2021. 5. 1. 07:44

550.

*경기도 파주시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190

 

청백리가 무어냐.

어찌하건 그는 청백리의 표본인지라 찾아 뵈었다

 

 

 

열린문으로 들어거 좌측으로 꺽으니...................

본관은 장수(長水). 초명은 수로(壽老). 자는 구부(懼夫), 호는 방촌(厖村).
황석부(黃石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균비(黃均庇)이고,

아버지는 자헌대부 판강릉대도호부사(資憲大夫判江陵大都護府使) 황군서(黃君瑞)이며,
어머니는 김우(金祐)의 딸이다. 개성 가조리(可助里)에서 출생하였다고 한다.

그옛날 조선시대의 정승이신 황희는

1376년(우왕 2) 음보로 복안궁녹사(福安宮錄事)가 되었다.

1383년 사마시, 1385년 진사시에 각각 합격하였다. 그리고 1389년에는 문과에 급제한 뒤,

1390년(공양왕 2) 성균관학록에 제수되었다고 적혀있다.

 

1392년 고려가 망하자 일정 기간 은둔생활을 하며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하였다는 야그도 있지만

1394년(태조 3) 태조의 적극적인 출사(出仕) 요청을 수용하여 성균관학관에 제수되면서

세자우정자(世子右正字)를 겸임하였다. 이후 직예문춘추관·감찰 등을 역임한다.

세자인 양녕대군(讓寧大君)의 실행(失行)을 옹호하다가도 파직 파직을 이어가다가

그 뒤 조정으로 복귀해 공조판서가 되었다.

그리고 평안도도순문사 겸 평양윤, 판한성부사를 역임하는등

예조판서에 이어 관찰사. 판우군도총제(判右軍都摠制).  대사헌>>>>>>>>>..........

세종대에는 의정부의 최고관직인 영의정부사로서

영집현전경연예문관춘추관서운관사 세자사 상정소도제조.

(領集賢殿經筵藝文館春秋館書雲觀事世子師詳定所都提調) 등을 겸대하였다는 분이다

 

벼슬이름이 길기도 해라.

이처럼 그는 왕을 보좌해 세종 대의 성세를 이룩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로써 조선왕조를 통해 가장 명망 있는 재상으로 칭송되었다.

1452년(문종 2) 세종묘에 배향되었다.

그리고 1455년(세조 1) 아들 황수신(黃守身)이
좌익공신(佐翼功臣)에 책록되면서

순충보조공신 남원부원군(純忠補祚功臣南原府院君)으로 추증되었다.

드디어 반구정에 당도하니......

임진강은 감시되고 있었다

함부로 허가없이 넘어서도 안되는 강이 임진강이다

청춘시절 군생활을 이곳 임진강과 함께한 추억이 솔솔했다.

갈매기를 벗삼는 정자라 해서 반구정이라 했나니...............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침착하였다고 전해지는 방촌선생

사리가 깊고 청렴하며, 충효가 지극하였고. 학문에 힘써 높은 학덕을 쌓았으므로

태종으로부터 “공신은 아니지만 나는 공신으로서 대우했고, 하루라도 접견하지 못하면

반드시 불러서 접견했으며,

하루라도 좌우를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할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상주의 옥동서원(玉洞書院)과 장수의 창계서원(滄溪書院)에 제향되고,

파주의 반구정에 영정이 봉안되었다.
저서로는 『방촌집』이 있으며, 시호는 익성(翼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