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보고知고.

535. 나주. 나대용 장군생가.

한유(閑裕) 2020. 12. 26. 22:49

535.

*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 오룡리

 

3일 휴무이지만 연말연시는 집콕하고 있어야 한다는 정부의 말에 따라서

착하디 착하게 따르며 있다가 뉴스마다 사니 못사니 아우성인지라

나라의 위기를 넘어 인류의 위기가 도래한것 같아서

살만큼 살은 나지만 심기가 불편하다

나라가 기우뚱거리고 풍전등화같은 위기에서 구해낼 처방을 기다리며

그놈의 역병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면서

전란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거북선이라는 위대한 배를 만든

나대용 장군의 생가 방문기를 정리한다.

 

당시 조선조에 왕이 왕답지 못하다.?

백번 말해도 틀림이 없는 인간 이균(연)은 선조라는 왕의 타이틀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대통령이 대통령답지 못하다?.  하면 어찌 되는가.?

그 나라의 백성은 편이 갈리고 먹고 살기가 힘들고 피곤한 나라가 된다

비겁하고 졸렬한 왕짓꺼리로 온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한 왕이 있다 그가 다시한번 선조이다

그의 이름은 李 鈞(이균)이다.

나라의 영도자인 왕이 왜놈들이 처들어 온다고 청와대를 버리고 도망질을 했다.

중종 왕의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왕이 된것으로

멸시와 지지기반이 약하고 정통성이 결여된것이라서

不足의 콤플렉스에다 열등감으로 왕질을 했나.?

한 나라의 왕이 부하인 해군 사령관에게까지 열등감을 느끼며 비겁하게 살아야 했나.? 

 

당시의 해군사령관이 이순신장군이 아닌가.

그분과 함께 오로지 백성의 안위를 위해  싸운분이 나대용 장군이 아닌가

그분의 생가를 찾았더라.

 

 

소충사이다

 

아이구야. 나주 문화재관리소 담당양반

소충사가 이리 관리가 부실해서야 돼겄나. 이자슥아.

 

풀숲에 우예 들어가서 참배나 할수 있것나 이 잡것아. 내심 소리 질렀더라.

 

이지스 항공모함을 능가하는 당시 최고의 전함인 거북선을 만든분이 나대용장군이라 하니

어찌 감사하고 고맙지가 않는가.?

 

나주의 문평에 그의 생가가 있기에 나주가 본관인가 했는데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시망(時望), 호는 체암(遞菴). 나주 출신.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여 한동안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를 지냈다고 적혀있다.

나주가 옛날에는 금성이라 했다하니 믄가 헷갈리는 느낌이다

 

그게 중요한가.?

나대용장군은 1591년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의 막하에 군관으로 들어가

거북선 건조에 참여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의 막하로 참전하여 여러 해전에서 공을 세웠다.

특히, 1592년 옥포해전에서 유군장(遊軍將)을 맡아 적의 대선(大船) 2척을
격파하고, 사천해전에서는 분전 끝에 총탄을 맞아 전상을 입었고

한산도해전에서도 재차 부상을 당하였다.

 

그 뒤 정유재란 때의 명량해전과 1598년의 노량해전에 참가하여 전공을 세웠다.

그와 같은 전공으로 1594년 강진현감으로 임명되고 연달아 금구(金溝)·능성(綾城)·고성(固城)의

현감을 역임하고, 전후에는 창선(鎗船)을 고안하여 만들었다.

 

1610년(광해군 2)에는 남해현령에 제수되어 해추선(海鰌船)이라는 쾌속선을 고안하여 건조하고,
1611년에는 경기수군을 관할하는 교동수사(喬桐水使)에 제수되었으나

전상이 도져 부임하지 못하고 1612년 1월 29일에 골병으로 영면했다.

 

생가이다.

 

그는 전공이 많은 수군장이며, 우리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탁월한
조선기술자(造船 기술자) 이다

대한민국이 造船强國이 된것은 나대용장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주영회장이 나대용장군이 만든 거북선......... .즉

오백원짜리 지폐에 도안되어 있는 거북선을 보여주고 배를 수주받은것을

시초로 하여 우리 나라의 조선소들이 세계에서 크게 이름나게 된것이라 전해지니 말이다.

현대. 대우. 삼성 造船三社는 나대용장군을 船神으로 모셔야 할것으로 사료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