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2. 여주. 신륵사
493.
*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봉미산.
여기가 신륵사로구나.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살다가 가라 하네.
나옹선사의 시가 아닌가.
경기도 여주의 신륵사를 찾았다.
한번은 왔다가야하는 절집인것은 나옹선사를 기리기 위함도 있지만
신륵사에서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는 방법을 체험하고 싶었더라.
백년의 탐욕은 하루 아침의 티끌이로다
짧은 기간의 마음 수양이라도 천년의 보배로다.
신륵사로 들어간다.
고려 고종 때 건너편 마을에 나타난 용마가 걷잡을 수 없이 사나웠으므로 사람들이 잡을 수 없었는데,
이 때 인당대사(印塘大師)가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神力)으로 제압하였다고 하여 절이름을 신륵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는 절집이다.
남한강건너에 황포돗대배가 보인다
인당대사가 용마의 고삐를 낚아챈곳이 아닐까.?
이 절이 대찰을 이루게 된 것은 나옹선사가 이곳에서 갖가지 이적을 보이면서
입적(入寂)하였기 때문이란다. 나옹이 입적할 때 오색 구름이 산마루를 덮고,
구름도 없는 하늘에서 비가 내렸으며, 수많은 사리가 나왔고, 용(龍)이 호상(護喪:
초상 치르는 모든 일을 주장하여 보살피는 것)을 했던 일들이 그것이다.
3개월 뒤인 1376년(우왕 2) 8월 15일에 절의 북쪽 언덕에 정골사리(頂骨舍利)를 봉안한
부도를 세우며 이어저서 대대적인 중창이 함께 이루어졌다고 기록한다.
나옹선사가 심었다는 은행나무. 사실로 받아 들이고 싶다
이 은행나무위에 사진에서 보이는
관세음 보살님이 계시고 있다는 소개 사진이다.
좋은 인연들만 만나 나머지인생을 편안케 해 달라고 소원지를 붙혀놓고
관세음 보살님을 찾아 본다
친견의 의지이다.
찬찬히 둘러보니 속세의 온갖 때에 찌들은 내 눈에에도 믄가가 보인다.
이게 내눈으로 확인된 보살상이다
사진중앙에 한 형상이 확대된다.
썩은 고목이 절묘하게 형상으로 나타난것이다
놀라운 발견이고 친견이다.
다른방향에서 바라본 고사목.
가운데 하얀 나무가 ........ 관세음 보살님(?)이다.
나옹선사의 발길과 숨결이 남아 있는 절집이 바로 이곳 신륵사인것이다.
이 절은 고려 때부터 벽절[甓寺]이라고도 불렸다.
이는 경내의 동대(東臺) 위에 다층전탑이 있는데, 이 탑 전체를 벽돌[塼]로 쌓아
올린 데서 유래한 것이다고 한다.
이 근처에서 조그마한 기념석 한점을 가지고 왔다.
신륵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곳이다.
나옹의 화장지(다비장소)에 세워진 삼층석탑 옆에는 강월헌(江月軒)이라는 6각의 정자가 있다.
그 전에 지어진 것은 1972년의 홍수로 떠내려가고,
그 뒤 삼층석탑보다 조금 아래쪽인 지금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누각의 이름인 강월헌은 나옹의 당호인데, 그를 추념하여 이곳에 누각을 세운 것이다.
선사는 惠勤(혜근) – 이라고 불리우는 스님이다.
나옹화상이라는 호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보우와 함께 고려말의 위대한 고승이다
강월헌에서 바라본 남한강.
나옹선사도 바라 보았을 남한강 줄기이다.
청산은.... 창공은........
신륵사밖의 속세풍경이다.
절집이 있음으로 매상을 올리는 기념품 가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