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부안. 이매창묘.
190.
* 전북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 567번지
전라북도 부안군에는 매창공원이 있다.
기생이름을 따서 만든 공원이 또 있었는가.? 경상도 사람들이 듣기에는 전라도 부안이란
이름도 생소한 고을에 기생출신인 이매창을 위한 공원이다.
나라를 말아먹다시피한 선조의 아들인 광해군 때 가난과 병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전라북도 부안의 여류문학가인 매창...........
그는 부안의 인물이다조선 500년사 삼대여류라고 일컬어지는 매창 이 향금여사.
사람들이 매춘부와 기생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알고 있는 것이다
***별자리가 세겨진 조형물......매창공원......... 무었을 의미하는가.?
둘러보는 공원 한켠에 명창 이중선의 묘가 있더라
매창공원에는 생각지도 못한 또 한분의 여인이 누워 있었다.
같은 시기 인물은 아니지만 예술을 사랑하고 젊은 나이에 외롭게 죽어간 사연은 비슷하다.
명창 이화중선의 여동생 이중선(1901-1932)의 묘가 그 공원 한 쪽에 있다. .
이중선은 언니 이화중선과 함께, 자기만의 독특한 육자배기 가락과 흥타령 등으로 당시의 명창이었다.
갓 서른을 넘긴 나이에 어느집 골방에서 폐병으로 숨을 거둔 비운의 명창이었다고 한다.
매창공원에 있는 시들
시인 매창 이향금( 梅窓, 1573∼1610).
이매창은 전북 부안 출신이다. 부안군 사람들은 이매창을 자랑스러워 한다 결국에는
그를 위하여 아름다운 공원 하나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녀의 문학세계를 추스르고 더욱 향토문화를 꽃피우고 면면히
이어가기 위해서 매창공원은 만들어졌다고.......
16세기 조선 선조 때 부안 현리에서 이탕종의 서녀로 출생한 매창은 그가 태어난 해가
계유년이었기에 계생(癸生), 또는 계랑(癸娘)이라했다한다
닭띠생이다.
본명은 향금(香今)이었다.
어려서부터 한문을 배워 한문시에 능했으며,
거문고 연주에도 뛰어나서 그를 보려고 부안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한 인물중에서도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과 유희경이 있다
허균은 일종의 문우로서 매창을 만났고 유희경은 연인으로 인연이 되었다
서자출신 유희경은 강화도 사람으로 1545년에 태어났으니 매창보다 28세가 많았다.
그래도 그 때는 연인이 될수 있었던 모양이다
서자신분과 서녀신분이 만나 사랑이란것을 했다
그깟 나이는 허무한세상에서는 장애물이 아니었다서로 통하는바가 있다면........
봄비 내리고 배꽃이 비처럼 쏟아져 흩날리는 어느날 울며 헤어진 님을
추풍낙엽 지기까지 잊지 못하고 있는데 임은 천리 밖에 있고
외로운 꿈만 절절하다고 유희경에게 대한 심정을 노래 했다
변산반도를 가지고 있는 부안의 한켠에서 자신의 기구한 숙명을 시로 풀어낸 여류 시인 매창.
그가 비록 여자였다하지만 금쪽같은 시들을 남겨서 시대에서 돌출되어 이름을 남긴 매창 이향금.
그를 전라북도 부안군 서외리에서 만났더라
교산(蛟山) 허균(許筠, 1569~1618)을 대부분 이렇게 설명한다.
시대의 반역아요 이단이었다. 한 세기에 날까 말까한 천재적 시인이요
문사이자 최초로 국문소설을 쓴 작가였으며, 또한 유불선(儒佛仙)에 두루 통달한 학자였고
불 같은 의지를 지니고 현실을 뜯어 고치려던 개혁사상가였다.
이러한 것은 오늘날의 평가이지만 당시 그에게 붙여진 이름은 한마디로 ‘막된 인간’이었다.
허균은 대대로 고관직을 누리던 양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허엽(許曄)은 서경덕의 수제자격으로 높은 벼슬을 지낸 동인의 거두였으며,
그의 맏형 허성(許筬)은 임진왜란 직전 일본에 통신사의 서장관으로 다녀와서
일본 침략을 정확하게 예단한 인물로 알려졌으며,
그의 둘째 형 허봉(許)은 명나라에 다녀와 기행문 〈조천기〉를 쓴 인물로 유명했다.
또 누이는 여류시인 난설헌이었다.
굶고 떨며 사십 년 세월 길게도 살았내
묻노니 사람살이가 얼마나 되는가?
어느 날도 울지 않은 적 없네.
봄이라 마음 아픈 병이 아니라
단지 임 생각에 난 병이라네
인간세상 고통과 괴로움도 많아
돌아가 오지 않은 마음 때문이네
봄바람 불어오는 삼월 어느 때
곳곳에 흩날리는 떨어진 꽃잎
거문고로 상사곡을 타보나
강남 간 내 님은 오지를 않네
빈 방에 외로운 병던 이몸
외롭고 굶주린 인생 사십년이로다
묻거니 인생살이 몇 년인가
수건 마를날 없는 마음 속 회포여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도다
이화우는 배꽃이 흔날리며 비처럼 내리는 광경이 아닌가
꿈 깨니 비바람 근심스러워
세상길 어려움음을 조용히 읊어본다
들보 위의 은근한 제비는
어느날에야 임 불러 돌아올게 할까
왕이 왔던 천년사 쓸쓸히 어수대만 남았구나 지난 일을 누구에게 물으랴 바람결에 우는 학이 내려 앉는다
혹독한 이별이 한스러워 안방 문 닫으니
비단 소매엔 임의 향기 없고 눈물 얼룩 뿐이로다
혼자 있는 깊은 방엔 다른 사람 아무도 없고
마당 가득 내리는 보슬비는 황혼조차 가리운다
누가 세상 변화 심하다 하나
나는 인간사 듣는 것 원하지 않는다
술동이 앞, 한 잔 술 사양 말라
오릉의 공자들도 풀속 무덤에 누웠노라
서울 풍류객 있어
정담을 나누며 약속했는데
오늘 번복하고 이별하니
이별 술잔에 암담히 마음이 아프네
꿈 깨니 비바람에 서글퍼지고
행로난을 침울하게 읊어본다네
은근한 대들보 위의 제비여
어느날에야 임을 불러 오게하느냐
한 조각 꽃구름 이는 꿈
깨어나면 허망하여라
임과 만나는 따뜻한 누대는 그 어느 곳인가
날은 저물어 어둑한데 수심만 짙어지네
맨 아래 시비는 메창의 애인인 유희경의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