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함양. 오도재.
28.
* 함양군 마천면 지리산. 오도재
길에서 길을 물어보았다 道上道問.......
왜 오도재라 하는것입니까.?
인오대사라는 스님이 이곳 함양땅에 붙어있는 산고개를 오르내리며
득도하였다고 해서 오도재라 한다카더라.
혹시 알어,?
나도 득도 할라나 오도재.............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오도재길이 들어간다.
옹녀와 강쇠선생의 무덤에 참배하고 올랐다.
지리산 제1문앞에는.......이런것들이 있다.
변강쇠선생과 옹녀 아줌마와의 야그는 아랫동네의 이야기이지만
오도재에 올라보니 고개마루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진또배기로구나
솟대.... 솟대는 마을공동체 신앙의 하나로 음력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올릴 때
마을의 안녕과 수호, 풍농을 위하여 마을 입구에 세운다.
솟대 위의 새는 대개 오리라고 불리며 일부지방에서는 까마귀·기러기·갈매기·따오기·까치 등을 나타내기도 한다.
풍수지리설과 과거급제에 의한 입신양명의 풍조가 널리 퍼짐에 따라
행주형 솟대에 돛대로서 세우는 짐대와 급제를 기원하는 화주대로 분화·발전되었다.
솟대는 형태를 기준으로 솟대·짐대·돛대·설대·새대·장승대 등으로 구분되고,
기능에 따라 수살·추악대·진목·소줏대·표줏대·효대 등으로 나누어지며. 동제와 관련해서는 당산·진또배기·
별신대·성황대, 세워진 위치에 따라서는 거릿대·갯대, 의인화를 기준으로 해서는
거릿대장군님·대장군님·당산할머니·당산할아버지·진또배기서낭님 등으로 구분된다.
오도재(悟道嶺)는 경남 함양군 휴천면(삼봉산 1176m)에서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고개로
정상에 지리산제일문이라고 하는 성문이 지어져 있으며 경사도와 굽이가 매우 급한 고개길이다.
오도재는 함양군 함양읍 구룡리에서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까지 12.1km 구간에 구절양장 이어진 고갯길이다.
오도재는 지리산으로들어가고 나오는 관문이다.
함양읍내나 거창 등 내륙사람들이 오도재를 넘어 지리산으로 향하고
지리산 사람들은 함양읍내 등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서 이 곳을 반드시 지나야 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까마득한 고갯길도 마다할 수 없는 사람들은
지리산 장터목은 경남 하동과 전라도 광양 등에서 나는 소금과 해산물 등을 구하기 위한 장터였다
함양읍내 등 내륙 사람들은 생활필수품인 소금과 해산물 등을 장터목에서 물물교환하기 위해 지역 특산물을
이고지고 오도재를 넘어야 했고. 반대로 벽촌 산골인 함양군 마천면과 휴천면 등 지리산 주변 주민들은
오도재를 걸어서 넘어 함양읍내에서 생필품을 구입해 왔다.
오도재를 밤늦게 돌아올 때면 호랑이 등 맹수가 무서워 한참을 기다렸다가 여럿이 함께 고갯길을 넘곤 했다.
지리산으로 향하는 첫 관문이다보니 옛날 산천유람에 나섰던 유학자나 고승들의 흔적도 오도재에 많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거유였던 김종직선생이 이 길을 넘어 지리산을 유람한 뒤
유명한 '유두류록'을 남기는 등 숱한 선비들의 애환도 이 길에 담겨 있다.
마천면 영원사 도솔암에서 수도하던 인오조사(1548~1623)가 이 고개를 오르내리며 득도했다고 해서 오도재란
이름을 얻었다고 하며. 오도재 정상은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은거할 때 중요한 망루지역이었고
임진왜란 때는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등이 이끄는 승군이 머물렀던 곳으로 전한다.
이 곳에서는 하봉~중봉~천왕봉~반야봉에 이르는 장대한 지리산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여기 오도재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어가는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