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 보은. 속리산 법주사.
267.
*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
조선 중기의 문인 백호(白湖) 임제(林悌)선생이 속리산을 보고 한마디 남긴말이다
도는 떠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도를 멀리했고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았으나 세속이 산을 떠났다고.......
‘속리’라는 이름은......... 신라시대의 고승인 진표스님의 발길이 이 산에까지 이르게 되었든 모양이다.
농민이 밭에서 소들이 밭을 갈고 있었는데 밭을갈고 있든 소가 진표스님을 보자
일하던 소가 스님 앞에 무릎을 꿇는것이 아닌가
이를 본 농부가 속세를 버리고 진표를 따라 입산하였다고 하여.......
사람들이 속세를 버렸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하니 속리산이다.
그 속리산 안에 명당터가 있는데 그곳에 법주사가 자리하고 있다.
속리산과 법주사에는 많은 설화가 전해지지만. 이 중 조선의 7대 임금 세조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진다
왕위를 찬탈한 후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인 세조는 깊은 마음의 병과 몸에 생긴 피부병으로 고생께나 한 모양이다.
사람을 파리잡듯이 죽여놓고........ 서 마음이 허했는가 심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세조는 속리산을 찾았다.
법주사 본찰에서 문장대로 가는 도중에 있는 복천암에서 세조는 지병을 치료하고자 기도를 했다.
살려달라고.........
3일간 기도를 하고 신미대사로부터 3일 동안 설법을 들은 후 샘물을 마시고는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지만. 몸의 피부병은 낫지 않아서 다시 오대산 월정사로 가서 병을 고쳤다고 하는것이다.
옛날부터 있던 솥.
철솥은 법주사 공얀간 근처에 있던것으로 규모는 높이가 1.2미터. 지름 2.7미터. 둘레 10.8미터 뚜께10센티이며 무게는 20톤에달한다고 한다,
쌀 40가마를 담을수 있는 이 철솥은 보물 14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은 높이 33미터 청동 160톤이란다.
국보인 팔상전이다
국보 제55호이다. 5층의 옥개는 네모지붕이며 그 위에 상륜부가 온전히 남아 있다.
1968년 해체 중수할 때 5층 도리에서 상량문이 발견되고 심초석에서 사리장치와 함께 동판에 새긴 글이 발견되었다.
동판 내용에 의하면 팔상전은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된 것을 1605년에 재건하고 1626년에 중수했다고 한다.
법주사의 주련들.....
법주사에 가면 큰 찻잔을 머리에 이고 있는 듯한 석상이 있다.
보은 법주사 석조희견보살입상(報恩 法住寺 石造喜見菩薩立像)은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통일신라의 보살상이다.
2004년 10월 7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417호 법주사희견보살상(法住寺喜見菩薩像)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희견보살이 모셔진 곳은 법주사와 월정사로 알려져 있는데 찻잔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솥으로 해섯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향로라 카더라.
사람들이 희견보살을 친견하면 큰 기쁨을 느끼고 몸과 마음의 병고에서 벗어나게 된다는데
희견보살은 과거세에 일월정명덕여래라는 부처님으로부터 법화경 설법을 듣고 현일체색신삼매를 증득하였다.
현일체색신삼매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여러가지로 몸을 나투는 신통삼매를 말한다.
희견보살은 미래의 중생을 위해서 자기의 몸을 향을 만들어 부처님께 공양올리고
그 공덕으로 사람들이 자기의 이름만 들어도 큰 믿음을 일으키고 자기 모습을 보는 이는
모든 고통과 병고에서 벗어나기를 서원하였다.
그리고 온몸에 향유를 바르고 향기나는 풀만 먹었다.
번뇌의 몸을 태워 공덕과 해탈의 향기가 되기를 서원하였다.
그는 욕망과 번뇌의 뿌리인 육신을 태워서 허공계에 향공양을 올렸다.
중생들의 해탈과 공덕을 위한 소신공양으로 그는 약왕보살의 신성한 몸으로 다시 환생하였다.
일체중생희견보살이 제 몸을 향으로 변화시켜 불태운 것이다
희견보살이 자기 몸을 불사른 것은 반야의 지혜로 일체가 공임을 깨달은 것이다.
희견보살이 자기 몸을 불사른 것은 몸에 대한 집착을 불태운 것이다.
속리산에는 법주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