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 하동. 두방재.
302.
* 하동군 옥종면 두양길 158 -129
하동 두방재는 진주 강씨들의 성지이다.
특히 강민첨장군의 초상을 모시고 있는 곳이다 강민첨은 강감찬과 함께 거란군을 물리쳤다.
본관은 진주. 목종 때 문과에 급제했다.
1012년(현종 3) 5월 안찰사로서 문연·이인택(李仁澤)·조자기(曺子奇) 등과 함께
영일·청하 등지에 쳐들어온 동여진을 격퇴했다.
1018년에는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오자
은열공파는 은열공 강민첨을 중시조로 하는 파이다. 강민첨은 고려 광종 14년에 진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후손으로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평론가로 유명한 강세황(姜世晃)이 있다.
그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시·서화에 열중하였고,
영조의 권유로 61세에 들어서 관직에 나가 병조참의와 한성부판윤을 지냈다.
그는 한국적인 남종문인화풍을 정착시키고 진경산수화를 발전시켰고, 풍속화·인물화를 유행시켰다.
그의 제자가 바로 김홍도이다.
진주강씨(晉州姜氏)의 시조는
고구려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를 역임한 강이식 (姜以式) 장군이다.
수나라 문종이 고구려를 침략 하려고 무례한 국서(國書)를 보내오자,
"칼로써 대답하자"고 주장하며, 병마원수(兵馬元帥)로서 정병 5만 명을 이끌고 참전하였다고 한다.
요서(遼西)에서 수나라 요서총관 위충(韋沖)과 교전한 뒤,
임유관(臨谕關)으로 거짓 후퇴하였다가 다시 수군을 이끌고 바다로 나가
수나라 수군총관 주나후(周羅喉)의 30만 수군을 크게 격파하고 개선하였다고 한다.
각 파를 보면 강이식을 동일 시조로 하여 강계용(姜啓庸)을 중시조로 하는 박사공파(博士公派)가 있고,
강위용(姜渭庸)을 중시조로 하는 소감공파(少監公派), 강원용(姜遠庸)을 중시조로 하는 시중공파(侍中公派),
강민첨(姜民瞻)을 중시조로 하는 은열공파(殷烈公派),
강감찬(姜邯贊)의 아버지 강궁진(姜弓珍)을 중시조로 하는 인헌공파(仁憲公派)가 있다.
박사공파는 어사공파(御使公派)라고도 하며, 시중공파는 관서대장군파(關西大將軍派)라고도 한다.
인헌공파는 강감찬의 출생지가 금천(衿川)이라고 하여 금천(서울 금천구)강씨라고도 한다.
이곳은 은열공파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다.
강민첨 장군의 영정을 뵙고자 했으나 他性인 나에게는 허락을 아니 하더라
두방재는 강민첨장군의 초상화를 모신 사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