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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문경. 새재

한유(閑裕) 2018. 4. 20. 07:40

174..

* 경북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

 

 

누가 기다린대서 가본 길이 아니다 문경새재 게이트에서 내렸을 뿐이다

내리고 오르고는 순전히 낭인의 결정이다 경상도의 북부 끝자락에 있는 문경은 내륙지방이다

문경 세재에서 한양쪽으로 고개를 넘기만하면 충청도 괴산땅이다

문경새재는 임진왜란과도 관련이 깊은 곳이다.

새재는 경상북도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조선시대 영남과 한양을 잇는 제1대로였던 영남대로에 위치하고 있다.

‘새재’라는 이름의 유래는 매우 다양하다.

고갯길이 워낙 높아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둥 고갯길 주변에 새(억새)가 많아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라는 뜻이라는둥

하늘재(麻骨嶺)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의 고갯길을 의미하는 ‘새(사이)재’에서 연유했다는 둥

주장이 있고, 하늘재를 버리고 새로 만든 고개라는 뜻에서 새재라는 둥 그 이름에 얽힌 이름도 다양하다

 

조곡관이니 조령관문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이기도 하지만 영남지방과 서울 간의 관문이자

군사적 요새지인 문경관문(聞慶關門)은 고려시대 초기부터 ‘조령(鳥嶺)’이라 불리면서 수도 서울로 가는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되었다는 이길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상주에서 이일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을 격파하고 북상해온 일본군 제1군은 문경으로 향했다.

일본군이 서울로 가려면 조령, 죽령, 추풍령 세 곳 중 한 곳을 지나야 했는데 제1군은 조령, 즉 문경새재를 택했다.

한편 경주에서 북상해온 일본군 제2군은 이곳에서 제1군과 합류했다.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인 이곳 문경관문에서 합류한 고니시 부대(제1군)와 가토 부대(제2군)는

모두 이 관문을 거쳐 조령을 넘어 충주로 진격했다.

 

바로 이풍경앞으로 일본 왜놈들이 먼지를 일어키며 올라 갔을 것이다.

 

 

 

 

문경새재에는 문경사투리(?)가 있다

 

 

 

신립 장군은 당시 조정의 기대와는 다르게 조령에서 일본군을 막지 않고 주력부대를

충주 탄금대로 후진 배치하여 배수진으로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가 참패했다.

문경에서 충주로 통하는 제1관문을 주흘관,

제2관문을 조곡관 혹은 조동관(鳥東關), 제3관문을 조령관이라고 부른다.
영남지방과 서울 간의 관문이자 군사적 요새지인 문경관문(聞慶關門)은

고려시대 초기부터 ‘조령(鳥嶺)’이라 불리면서 수도 서울로 가는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1708년에 제2관문을 중창하고 이보다 남쪽에 있는 주흘관에 제1관문을,

또 북쪽에 위치한 조령관에 제3관문을 축조했다. 조령관은 고개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충청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이다.

그러나 신립은 문경새재에서 일본군을 막자는 김여물 부장 등 부하들의 건의를 무시하는

엄청난 판단착오를 하고 대신 이곳 조령산 능선에 허수아비를 세워 초병으로 위장하고

충주 탄금대로 이동하여 배수진을 쳤다가 몰살의 대패를 하고 만다

 

 

 

 

 

 

 

 

1592년 고니시 유키나가가 군사를 이끌고 문경새재를 넘기 전에

먼저 진안리에서 진을 치고 숨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가 천혜의 요새인 새재를 정탐할 때 선조 임금의 명을 받은 신립 장군이

농민 모병군(募兵軍)을 이끌고 일본군과 대치하고자 제1진을 지금의 제1관문 부근에 배치하고,

제2진의 본부를 이곳에 설치했다. 제2진이 진을 쳤던 곳이라 하여 ‘이진 터’라고 한다
한편 이곳에 있던 허수아비 조선군 머리 위에 까마귀가 앉아 울고 가는 것을 본 일본군은

조선군이 이곳에 매복하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확인 결과 조선군이 보이지 않으므로

저항 없이 새재를 넘어 충주로 진군할 수 있었다.

 

택리지에서 말했다

“조선 선비의 반이 영남에서 배출되었다”라고.......

문경새재는 영남과 기호 지방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옛길이다.

문경(聞慶)이라는 이름과 옛 지명인 문희(聞喜)에서 드러나듯 ‘경사로운 소식,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는

의미가 있었기에 그래서 영남은 물론 호남의 선비들까지 굳이 먼 길을 돌아

문경새재를 넘어 한양으로 갔다는 이야기도 있는

고개길이 이 길을 택하기도 했단다..

 

 

 

 

 

 

 

여행의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올라가다가 믄가가 보이면 사진으로 한장 남기고 내려오다가 보이면 또

한장남기는 내 마음대로의 자유는 나만이 즐기는 자유이다

 

 

 

 

 

 

 

 

궁예가 최후를 마친 바위.

 

 

 

문경새재를 넘는 산속에도 이런 저런 야그가 있다.